목숨 건 일본 화물트럭과의 야간 라이딩

일본종주 13일 차 : 니이가타~유자와(104Km)

by 루로우


니이가타에서 비를 피하며 심기일전을 다졌다. 니이가타에서부터는 해안도로가 아닌 도쿄 방향으로 향하는 내륙을 달려야 했다. 특히 도쿄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군마 현의 오르막은 고도가 자그마치 1,000m였다. 서울~부산 국토종주에서 최고 오르막인 이화령의 600m보다 훨씬 높았다. 과연 내가 자전거로 1,000m의 오르막을 넘을 수 있을까?


트렁크 백에 짐을 정리하고 옆가방에 옷을 억지로 구겨 넣던 도중 갑자기 지퍼가 터져버렸다. “하….” 왜 항상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 걸까? 제발 단 하루만이라도 평화로울 수가 없는 걸까? 애초에 요즘 유행하는 중국발 앱으로 구입한 만 원짜리 트렁크 백이었으니 내구성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을지도 모른다. 이걸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도중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호텔 직원에게 가위를 빌려 와서 지퍼 라인을 따라 양쪽으로 일정한 간격의 세 개의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가져왔던 케이블타이를 양쪽 구멍으로 통과시켜 조여서 묶자, 완벽하게 케이블타이로 여닫을 수 있는 가방이 완성되었다.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머리를 쥐어짜서 무슨 짓이든 하게 되는구나. 누구인지는 몰라도 정말 자전거 여행에 여러모로 요긴한 케이블타이를 추천해 주었던 사람에게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니이가타 이후에는 대부분 작은 도시들 뿐이라 별 볼 일 없는 국도가 이어졌다. 어제 비를 흩뿌렸던 먹구름은 아직도 떠나지 않고 니이가타의 하늘 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늘을 반으로 가른 듯 오른쪽은 맑고 왼쪽은 먹구름이 드리운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름 모를 도시들을 지나치며 가끔 편의점에 들러 에너지를 보충하면서 하염없이 페달을 밟았다. 점심을 지나서 오후까지도, 동해를 달릴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지루함을 견디며 달려야 했다. 그곳은 정말 무미건조한 바닷길이었다면 이쪽도 바닷길만큼이나 단조로운 내륙의 길이었다. 사진을 찍어도 이곳이 어디였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전형적인 교외 풍경. 오히려 다시 생각해 보니 바다가 보이던 동해안 쪽이 그나마 나았지 싶다. 논길이 나오기도 하고,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마을을 지나기도 하고…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아야 한다. 꼭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을 하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노래도 몇 시간씩 듣다 보면 질릴 지경이라 노래도 끈 채 라이딩을 하곤 했다.


핸들을 쥔 손가락이 욱신욱신 아파왔다. 아직 아키타에서 다쳤을 때 손가락에 박힌 잔가시들이 남아 있었다. 하루 쉬면서도 왜 아직 그걸 다 제거하지 않았냐고? 웬만한 가시들은 전부 뽑았지만, 남은 상처를 보면 이게 대체 가시인지, 가시를 빼고 남은 상처인지 분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핸들을 꽉 쥘 때, 피부 깊숙한 곳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질 때야 ‘아, 이 손가락에 가시가 있구나’라고 판단해야 했다.



점점 하늘이 푸르스름해져 가는 오후 5시에도 구체적인 종착지를 정하지 못해 마음을 졸이기 시작했다. 100킬로를 달렸을 때에도 근처에 값싼 게스트하우스가 있었지만, 멈추기에는 너무 적게 달렸다고 생각해서 지나쳤다. 결국 내 욕심 때문이었다. 이전에 160킬로를 달려버렸던 기억 때문에 하루 100킬로는 더는 성에 차질 않는 것이다.


오랫동안 캠핑을 못해서 이번엔 꼭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홋카이도에서 두 번 캠핑을 한 이후, 혼슈에 온 10일 동안 단 한 번도 캠핑을 하지 않았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무거운 캠핑 장비를 자전거에 매달고 다니는 걸까? 자전거에 매달린 짐들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유자와 근처에 몇몇 캠핑장이 보이길래 가능하면 그곳으로 가자고 생각하고 페달을 밟았다. 점점 어둠은 짙어져 가고 아직 1시간 정도는 더 가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갈 만한 후보로 꼽은 숙소는 모두 지나쳐버렸기 때문이다.


유자와에 가까워지자 국도에 달리는 차량이 급격히 늘었다. 가급적 차로를 피하고 싶었지만 인도도 없었고, 갓길은 자라난 수풀이 우거져 있어 최대한 차로 가장자리에 붙어 힘겹게 라이딩을 이어갔다. 깜깜한 국도 위에서 굉음과 함께 대형 화물 차량들이 한 뼘 거리로 내 옆을 휙휙 스쳐 지나갔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이런 길을 달리지 않을 것이다. 운전자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이런 도로 한복판에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3킬로만 더 가면 점찍어 둔 캠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2킬로마저도 신은 내게 마지막까지 시련을 안기려는 듯 경사진 오르막길을 올라야만 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탁한 숨을 헉헉대며 언덕길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우여곡절 끝에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은 커다란 온천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온천에서 샤워도 할 수 있는 너무 좋은 위치라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온천 건물로 들어가 카운터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저, 캠핑을 하려고 왔는데… 오늘도 캠핑장 이용이 가능할까요?”


“아, 네. 가능합니다. 이용료 1,000엔에 구역료 4,000엔, 총 5,000엔입니다.”


뭐? 바깥에서 텐트 치고 잔다는데, 가격이 무슨 게스트하우스보다 비싼 거야? 구글 리뷰에 분명 1,000엔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1,000엔은 말 그대로 ‘이용료’였다. 사이트마다 4,000엔의 이용료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멘붕에 빠진 나는 차마 바깥에서 자려고 피 같은 5,000엔 지폐를 꺼낼 수가 없었다. 3,000~2,000엔 숙소를 그렇게 많이 제치고 온 건데… 힘이 빠진 채 온천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숙박 앱을 켜서 다시 주변 숙소를 살폈다. 공용 욕실, 낡은 일본식 다다미 싱글룸을 제공하는, 6,000엔의 숙소가 한 군데 있었다. 사실 아까도 보았지만 ‘이 컨디션에 6,000엔이라니 너무 비싸다’라고 생각하고 무시했던 숙소였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10초 뒤에도 예약이 마감될까 봐 얼른 ‘예약하기’를 눌러 결제를 실행했다.


이전의 값싼 게스트하우스에서 멈췄더라면. 캠핑으로 돈을 아끼려던 내 욕심 탓에 반대로 결국 4,000엔을 더 내고 숙박하게 되었다. 그렇게 힘겹게 오른 3킬로를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이럴 거면 왜 여기까지 왔나… 3킬로를 밟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너무 어두운 탓에 초조함과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Rental Ski’라고 앞에 쓰여 있던 숙소는, 이곳 근처가 스키장으로 유명해 겨울철에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지가 수북이 쌓였을 것 같은 휑한 로비가 펼쳐졌다. 오늘 이 숙소에 나 말고 손님이 있기는 한 걸까? 카운터에서 주인이 나오고 체크인 절차를 밟은 후, 간단히 이용 안내를 받고 2층에 배정된 방으로 걸어 올라갔다. 작은 다다미방의 작은 TV와 작은 좌식 책상, 그리고 덮을 수 있는 이불이 방에 있는 전부였다.


다행히 상처에는 딱지가 단단히 앉아 이제는 뜨거운 물에 닿아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욕탕에 몸을 뉘자 자전거를 타느라 힘들었던 몸, 그리고 오늘은 덤프트럭과 야간 라이딩을 하느라 힘겨웠던 정신의 노고마저도 싹 물에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목욕 후 방에 돌아와 일기를 썼다. 오늘 하루의 생생한 고통과 감정의 기복을 잊기 전에 기록해 두고 싶었다. 미리 숙소를 잡아두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몸소 실감하고 바로 내일 숙소까지 예약을 마쳤다.


내일은 이제 군마의 1,000m 오르막을 넘는 날이었다. 산을 넘다가 시간을 지체해 또 오늘처럼 야간 라이딩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내일 군마만 넘으면 하루 뒤엔 드디어 도쿄가 눈앞이었기에, 가슴엔 불안과 설렘이 동시에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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