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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Feb 29. 2024

목숨 건 일본 화물트럭과의 야간 라이딩

일본종주 13일차 : 니이가타~유자와

  비가 오는 하루는 니이가타에서 머물렀고, 이제 다시 심기일전하여 떠날 채비를 했다. 이제 이곳을 끝으로 해안도로에서 도쿄 방향으로 가는 내륙 도로로 향해야 했다. 특히 도쿄로 가는 길에는 군마 현의 큰 산맥 하나를 넘어야 했는데, 고도가 자그마치 1000m였다. 서울~부산 국토종주에서 가장 높은 이화령의 600m보다도 훨씬 높았다. 과연 내가 자전거로 1000m의 산을 넘을 수 있을까? 


아침에 트렁크백에 짐들을 정리하고, 옷가지를 옆에 달린 가방에 구겨 넣던 도중 지퍼가 허무하게 터져버리고 말았다. “하…” 왜 여정 중에 항상 이런 일은 자꾸 일어나는 걸까? 제발 단 하루만이라도 평화로울 수는 없는 걸까? 애초에 중국산 만 원짜리 트렁크백이었으니 내구성을 기대하는 내가 바보였을지도 모른다. 이걸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하던 도중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라 호텔 로비의 직원에게 달려갔다. “혹시 가위 하나 있나요?”하고 가위를 빌려 왔다. 지퍼 양쪽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세 개의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가져왔던 케이블타이를 양쪽 구멍으로 통과시킨 후 조여 묶자, 완벽하게 케이블 타이로 여닫을 수 있는 가방이 완성되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정말 자전거 여행에 케이블타이를 추천해 주었던 사람에게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왔던 여정 중에도 여러 번 케이블타이를 요긴하게 썼다. 텐트, 침낭 등을 넣어 자전거 앞에 매단 프론트백이 기본 끈으로 고정이 잘 안 될 때에도 케이블타이로 묶자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머리를 쥐어짜서 무슨 짓이든 하게 되는구나, 갖가지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다.



니이가타에서 내륙으로 가는 길 역시 큰 도시는 거의 없었고, 별 볼 일 없는 시골 산지의 국도 길이 예정되어 있었다. 어제 비를 흩뿌린 먹구름이 아직도 니이가타 현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오른쪽 하늘은 맑은데, 왼쪽 하늘은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어제 이후 비가 그쳤다고 생각하고 오늘 다시 라이딩을 출발한 건데… 오전 10시 즈음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면서 페달을 밟다가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쫄딱 젖을 것 같아 대충 앞에 보이는 창고인지 버스정류장인지 모를 곳에 몸을 피신했다. 사실 그곳에는 몇몇 이 외곽지의 공장 지대에서 일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비를 피해서 피신해 있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그중 한 명이 내게 자전거를 쳐다보며 물었다. 


“오늘은 유자와까지 가려는데… 지금 일본 종주 중이에요.”


“우와, 그래? 어디에서 왔는데?”


“홋카이도의 왓카나이에서 왔습니다.”


“이야! 들었어? 이 사람 홋카이도 왓카나이에서 왔대. 미쳤네, 대단해.”


너스레를 떨며 그 사람은 주변 동료들에게 나를 치켜세웠다. 나는 연신 감사합니다, 하고 하하하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얼마 뒤 소나기가 잦아들자 나는 응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그냥 내가 좋아서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것뿐인데, 어딜 가든지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일본인들의 친절함과 나를 향한 응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름 모를 도시들을 지나치며, 가끔 편의점에 들러 에너지를 보충하면서 하염없이 페달을 밟았다. 핸들을 쥔 손가락이 또 욱신욱신 아파왔다. 가시였다. 아직 아키타 현에서 다쳤을 때의 손가락에 박힌 가시들이 남아 있었다. 하루 쉬면서도 왜 아직 그걸 다 제거하지 않았냐고? 웬만한 가시들은 전부 뽑았지만, 사실 사진을 보면 아시다시피 이게 대체 가시인지, 가시를 뺀 자국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면서 핸들을 꽉 쥘 때, 피부 깊숙한 곳을 쿡쿡 찌르는 통증이 느껴질 때서야 ‘아, 이 손가락에 가시가 있구나’라고 판단을 해야만 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마트에 들러서 바늘을 구입했다. 함께 있던 실은 필요가 없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저 가시를 뺄 바늘이 필요할 뿐이었다. 


마트에서 산 빵을 하나 입에 집어넣고, 손가락을 바라보며 외과의사가 수술을 집도하듯 세심하게 바늘로 피부를 조금씩 파냈다. 하나를 뽑았다! 또 다른 새끼손가락의 가시는 뽑다가 도중에 포기했다. 이제 남은 가시들은 다 깊숙이 박히거나 크기가 작아서 빼기 어려운 가시들이라 시간이 꽤 걸렸으므로 하나로 만족해야만 했다. 가시 하나 뽑자고 몇십 분씩 시간을 지체하기 어려워 일단은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점심을 지나 오후까지도, 동해바다를 달릴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말 그대로 볼 게 없었다. 그곳은 정말 무미건조한 바닷길이었다면 이 쪽은 무미건조한 내륙길이다. 차라리 바다가 있었던 동해안 길이 그나마 나았지 싶다. 논길이 나오기도 하고,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마을을 지나기도 하고… 이럴 때는 정신을 쏙 빼놓고 소위 정신줄을 놓은 채 밟아야 한다. 꼭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노래도 5, 6시간씩 듣다 보면 귀에 물린다. 오후 4시쯤 지나가는 길에 하교하는 듯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줄줄이 보였다. 노을 햇살과 함께 미디어에서만 보던 교복을 입고 시골길을 하교하는 남녀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꼭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만 같았다. 저 학생들은 쫄쫄이를 입고 달리는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한적한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니 별난 사람으로 보며 키득거리지 않을까? 사실 아무런 관심도 없겠지만.


나는 오늘도 머무를 숙소를 미리 잡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오랫동안 캠핑을 하지 않아 오늘은 캠핑을 해야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에서 두 번 캠핑을 한 이후로, 혼슈에 온 10일 정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캠핑을 하지 않았다. 이럴 거면 대체 왜 주렁주렁 자전거에 무거운 캠핑 장비들을 달고 타고 있는 거지? 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반드시 캠핑을 하리라, 다짐하고서는 계속해서 지도앱으로 캠핑장들을 알아보면서 달렸다.




사족을 붙여 종주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실 일본에서 캠핑을 하며 자전거로 돌아다니기는 매우 매우 어렵다. 대부분 돈을 아껴야 하는 라이더들이 공원이나 휴게소의 주차장에 캠핑을 하곤 하는데, 사실 공원에서 캠핑하는 것은 엄연히 따지자면 불법, 잘 봐주면 무법이다. 그렇지만 사실 시골 공원은 해가 지면 거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남에게 피해 줄 일도 없기 때문에 어두울 때 자고, 해가 뜨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철수하면 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난 그럴 깡은 없었다. 애초에 정말 만약 관리인이 나타나 '여기서 자면 안 됩니다'라고 으름장을 놓는 순간 그 이후의 리스크를 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공식적인 캠핑장은 대체로 다 산지에 있다. 그래서 그 캠핑장에 가려면 몇십 킬로를 경로에서 벗어나야 했다. 게다가 유료 캠핑장이 많다. 무료 캠핑장의 경우 며칠 전 전화예약은 필수다. 샤워실 유무도 확인해야 한다. 아무튼, 캠핑장 하나를 가는 데에 너무나도 체크해야 할 사항이 많다. 


(그래서 블로그에 따로 열심히 정리해 두었다)

https://blog.naver.com/ywhfrv/223244262844




어쨌든 점점 하늘이 푸르스름해져 가는 오후 5시가 지나갈 때부터 나는 라이딩을 멈출 종착지를 정하지 못해 소위 ‘후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자야 하지? 사실 몇몇 후보지들도 이미 지나간 상태였다. 90~100km 사이에서 멈추기에 너무 적게 달렸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 내 욕심 때문이었다. 160km를 달려버린 탓이기도 했다. 160km를 달린 이후로 하루 100km는 성에 차지를 않았다.


어젯밤에 보였던 100km 부근의 가장 싼 2천 엔의 호스텔도 이미 마감이 되었는지 지도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지도에서 보이는, 아직 1시간 정도는 더 가야 하는 20km 떨어진 입장료 1000엔의 유료 캠핑장을 가기로 결정했다. 1시간이면 야간 라이딩을 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돌아가려면 20km를 돌아가야 했고, 앞으로 가려면 20km를 더 가야 했다. 


캠핑을 하기 위해 드러그스토어에 들러서 핫팩도 구입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한국은 해 질 녘이 긴 느낌이라면 정말 일본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드러그스토어에서 5분 정도 쇼핑을 하고 나와도 바깥의 명도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목적지인 유자와로 가까워질수록 국도에 달리는 차량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도로 양쪽에는 인도도 없었고, 갓길에는 자라난 수풀 때문에 달리기도 힘들어 흰 차선 끝에 겨우 대롱대롱 매달린 듯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왕복 2차선에 오고 가는 차가 너무 많았다. 깜깜한 국도에 대형 화물 차량들이 굉음과 함께 내 옆을 휙휙 스쳐 지나갔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이런 길을 달리지 않을 것이다. 운전자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가야만 했다. 


 

어느새 숙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거의 2~3km만 더 가면 점찍어둔 캠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2km도 내게 마지막까지 엿이라도 날리는 것처럼, 오르막길이었다. 정신도 피폐해졌고, 다리도 피폐해졌다. 기진맥진하며 개처럼 페달을 밟고 언덕길을 밟아 꾸역꾸역 올라갔다. 이때 국도로 가는 길보다 1km 짧은 작은 샛길이 지도에 보여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이려고 어둡지만 한 번 가보자 하고 갔다가 정말 불빛 하나 없이 앞이 새까매서 식겁하고 다시 국도로 돌아왔다. ‘여기서 죽으면 진짜 아무도 내가 어디서 죽은 지 알 수 없을 거야. 그래도 이제 500m밖에 안 남았는데 1km를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500m 남았어도 이런 길로는 절대 못 가...


캠핑장은 온천에 딸려 있었는데, 통상적으로 캠핑장은 예약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평일이라 이런 시골에 예약이 찼을 리가 없을 것이다,라는 지레짐작과 함께 온천에 무턱대고 찾아온 것이었다. 안 되면 그 문제는 그 후의 내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하지만 캠핑은 가능했다. 온천 문을 열고 가서 “혹시 예약 없이 바로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나요?”라고 묻자, 호텔 직원은 된다고 이야기했다. 앗싸.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이용료는 5000엔입니다.”


뭐? 바깥에서 텐트 치고 자는데 무슨 호스텔보다 가격이 비싼 거야? 그리고 구글 리뷰에 분명 1000엔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1000엔은 말 그대로 ‘입장료’였고, 각 사이트의 이용료가 따로 있었다. 사이트 이용료가 4000엔이었던 것이다. 멘붕에 빠진 나는 차마 5000엔을 내고 캠핑을 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질 않아 터벅터벅 온천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이 온천이라 샤워도 가능하고 정말 최적의 위치였는데… 그래도 6000엔은 아니었다. 나는 어플을 켜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주변 숙소를 살폈다. 낡은 일본식 다다미 싱글룸을 제공하는 6000엔의 숙소가 한 군데 있었다. 사실 아까도 보았던 곳이다. ‘이 정도 방이면 4000엔이어야지, 너무 비싸다…’라고 생각하고 무시했던 곳이었지만, 지금 상황의 나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10초 뒤에도 예약이 마감될까 봐 얼른 예약하기를 눌렀다.


조금만 더 가겠다는 내 욕심 탓에, 캠핑으로 돈을 아끼려던 욕심 탓에 반대로 결국 4천 엔을 더 내고 숙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숙소는 겨우겨우 업힐을 타고 왔던 3km를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이럴 거면 왜 여기까지 왔나, 밤길을 3km 밟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너무 어두운 탓에 초조함과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Rental Ski’라고 앞에 쓰여 있던 숙소는, 이곳 근처가 스키장으로 유명해 겨울 시즌에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10월이었기에 내가 들어가자, 정말 말 그대로 휑한 로비에 꼭 오늘 이 건물에서 나 홀로 묵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주인이 나와 나를 맞이하고 체크인 절차를 밟은 후, 이용 안내를 받고 2층의 방으로 걸어 올라갔다. 



작은 다다미 방에는 작은 TV와 작은 책상, 그리고 욕실은 공용이었다. 공용 욕실에는 나름 작은 탕도 있었다. 상처에 딱지가 단단히 앉아 이제는 뜨거운 물에 닿아도 아프지가 않았다. 탕에 몸을 뉘이자 자전거를 타느라 힘든 몸, 그리고 오늘은 덤프트럭과 야간라이딩을 하느라 힘겨웠던 정신의 노고마저도 싹 물에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목욕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서 일기를 썼다. 오늘 같은 다이내믹한 하루에 내가 느낀 고통과 감정의 오르내림을 잊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었다. 예약을 미리 안 해두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바로 내일 숙소까지 예약을 마친 것은 물론이다. 내일은 이제 군마의 1000m 산맥을 넘는 날이었지만, 계산 상 내일 군마만 넘으면 하루 뒤 도쿄에 드디어 갈 수 있었기에 불안과 설렘이 공존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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