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특히 동양이나 서양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한 때의 기분이 아니라 곱씹어 근거를 갖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을 평가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듣는 사람 역시 잘 분간해야 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도 나라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술책은 대규모 전면전이 아니었다.
오히려 충신을 간신으로, 혹은 간신을 충신으로 평해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는 반간계(反間計)의 심리전이었다.
우리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정확히 좋은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듯이 사람에 대한 평가 역시도 잘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공자는 40을 불혹(不惑)이라 말했고 혹자는 이를 ‘세간의 평에 미혹되지 않고 사람을 바로 보기 시작한 것’이라 풀이하기도 한다.
이렇게 제대로 사람을 보는 눈이 실수를 줄이고 그만큼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능력을 갖추고자 평판이라는 안정적인 장치를 활용한다.
그런데 리더가 덕을 갖추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만일 당신이 출중한 인품과 수양을 쌓았다면 당신과 마찬가지로 우수한 인품을 갖춘 직원들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리더로서 필요한 인품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만큼 훌륭한 이들이 잘 다가오지 않고 직원들의 지지와 관심을 얻지 못한다.
동성상응 동기상구(同聲相應 同氣相求) 즉,‘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는다’라는 말이 있다. 즉 유유상종이라는 뜻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분명 덕이 있는 다른 사람의 인정과 지지를 얻는다. 열악한 환경에서는 정의를 지키는 덕인이 배척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덕이 있는 사람에게 이끌려 그와 행보를 같이 하게 된다.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고, 진정성은 통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이다.
위의 구절은 본래 『주역』에 나오는 글귀인데,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끼리는 서로 통하여 자연스럽게 뭉치게 된다는 뜻이다.
율곡은 이 글귀를 인용해 “내가 학문에 뜻을 두고 있으면 반드시 학문하는 사람을 찾을 것이고 학문하는 사람도 나를 찾을 것”이지만, “학문한다고 말하면서 잡객들과 떠들며 세월을 보낸다면 좋아하는 바가 학문에 있지 않은 것”이라고 하여 동류끼리 어떻게 모이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따라 사귀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다.
결국 사귄다는 것은 ‘서로 사이가 가까워지도록 어울리는’것을 말한다. 같은 소리일 때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일 때 서로 찾는 것처럼 좋은 사람과 사귀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동호회(同好會)라고 한다. 요즘은 동아리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예전에는 구락부(俱樂部)라고도 했다.
모두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는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면 서로 응하고 찾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비슷한 부류의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과도 비슷하다. 그렇기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성장하고 싶으면 나 자신이 먼저 덕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