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과 걱정의 사이

시선에서 느끼는 불편함에 대하여

by Grace




일 년에 몇 번 정도 어머니의 지인을 만날 때가 있다. 아주 친한 친구는 아니었으나 이따금 얼굴을 볼 정도의 사이였던 얼굴을 보게 되면 변함없이 듣는 말이 있다.

“힘들지?” “잘 지내고 있니?”

단순한 걱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단 번에 알 수 있다. 그건 나를 향한 걱정이 아니라 동정이다. 어머니를 사별해 아버지와 둘이서 살게 된 20대의 젊은 딸에 대한 동정심. 나는 이따금 마주쳐야 하는 그들의 눈빛이 싫었다. 검은 눈동자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힘든 사람’이라는 낙인이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때로는 비참했고, 착잡했으며, 무기력했다.

그냥 안부 삼아 묻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이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몇 번이고 반복되고 변하는 바가 없으면 그건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하지 않을까? 일 년에 몇 번, 때로는 몇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에 나를 보면 어머니가 떠오른다며 같은 곡을 반복 재생한 것처럼 다를 바 없는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건 아무리 걱정이라 해도 무언가 이상하다.


그들은 분명 어머니의 좋은 친구였을 것이다. 때로는 함께 여행도 다니고, 학창 시절 이야기를 재잘재잘 거리며 회상하고, 각자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나의 어림짐작이다. 어머니에게서 친구라고 소개를 받았을 뿐, 나는 그들이 얼마나 친밀한 관계였는지 짐작할 수 없다. 짐작이 가는 바도 없고.

나의 그들에 대한 호칭은 기본적으로 ‘~이모’로 고정되어 있는데, 종종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다르게 부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분명 귀에 들어오는 건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석 자 중 두 글자가 맞는데, 다른 수식어가 붙는 것 같은 기시감을 지울 수가 없다. 어딘가 익숙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느낌이다. 나는 그것을 ‘상처 입은 자존심’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들의 미묘한 동정 어린 태도로 인해 상처 입은 나의 자존심이라고.


그날도 변함없이 어느 이모 한 분을 만나러 아버지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기억자로 꺾여 다리를 아래로 내리는 형태의 식당이었다. 자리에 앉고 안부를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이모의 손이 가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직감했다. ‘아, 무언가 준비하셨구나.’ 그리고 그것을 받아 집에 돌아와 열어봤을 때. 아, 그때 느낀 것들을 채 다 글로 적어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감정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봉투 안에 든 돈을 보고 가장 먼저 감사함이 떠오르긴 했지만, 뒤이어 비참함과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뒤섞여 더는 그 종이 쪼가리를 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20대 중반이 되었음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정확히는 못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있다는 것, 수입이 없다는 것, 인간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때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해서 그런 생각이 앞섰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저 기분 탓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내가 느낀 비참함이 흉터를 너무 깊게 남겼다. 언제고 다시 볼 수 있을 만큼.

이전부터 자존심만 높아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잘 못 받는 편이었지만,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더욱 다른 사람의 도움을 순순히 받기 어려워졌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와 식사를 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생선 가시를 발라내기 어려워하는 걸 보다 못한 친구가 젓가락과 접시를 가져가 생선 살을 발라주었다. 우선 고맙다고 말하며 밥을 먹긴 했지만, 식사 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도와달라고 하지 않은 이상, 답답해 보여도 맘대로 도와주지 마.”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사소한 도움도 받아들이지 못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내가 그렇게 속이 좁았나,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어머니 사별 후), 함께 조별과제를 하던 언니가 “조금 쉬는 게 어때? 이번 조별과제 자료 조사는 내가 할 테니까.”라며 호의를 베풀어주려 했는데 그게 썩 내키지 않았다.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할 것처럼 말하는 듯이 들렸다. 결국 이 경우에도 위에서 했던 답과 같은 말을 돌려줬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게 헤어지긴 했지만, 그런 도움 정도는 순순히 받을 걸 싶기도 하다. 실제로 나는 힘들기도 했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문서를 정리하는 게 어려웠으니까.

한 번은 교수님이 나를 불러서 힘들지 않으냐고 넌지시 묻는 경우도 있었다. 분명 걱정일 텐데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이제는 이모들이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친구가 별다른 말 없이 도와주려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다. 내가 어려워 보일 때 다른 사람이 편의를 봐주려는 것도 어느 정도 타협하며 받아들일 수도 있다. 기분이 상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느끼거나, 상대의 말을 곡해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전까진 고슴도치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다가 되려 더 힘들어했었는데, 지금은 누군가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한 번은 상담을 하러 갔을 때, 선생님께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시선에 노출되기 마련이죠. 불편할 수 있어요. 아마도 지금은 시선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점차 마음이 건강해지면서 남을 탓하거나 자신을 책망하는 일도 없어졌다. 나를 향한 시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해 지레짐작하지 않는다. 더 이상 동정과 걱정의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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