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표현하는 방법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가? 나는 말과 글, 행동, 눈빛 등 다양한 것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옷차림으로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정해진 방식은 없다. 그냥 마음에 드는 대로 입고, 꾸민다. 그게 얼마나 선명한 색이건, 노출이 있건 상관하지 않는다.
(물론 시간과 목적, 장소에 따라 꾸미는 정도를 절제해야 할 때도 있다. ‘내 마음대로’라고 했지만 그 정도도 지키지 않을 만큼 안하무인은 아니다)
한동안 꾸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가 꾸미는 것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기 때문은 아닌지, 원하지 않는데 꾸미는 건 아닌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어느 누구에게 보여진다 하더라도 변하는 건 없다.
만약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싶어 그 사람의 취향에 맞도록 꾸민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그에게 맞추진 않을 것이다. 나에게 꾸민다는 건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꾸밈’이라는 행위가 코르셋처럼 느껴지진 않는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최근엔 비와 더위가 반복되면서 습하고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반팔도 입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거진 이번 여름의 절반은 끈나시와 반바지를 주로 입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히려 즐겨 입던 옷을 입지 못하게 되어 아쉽다. 어떻게든 햇빛을 피하려 했지만 내 생활패턴 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론 피부가 꽤나 많이 타버려서 어울리는 색이 바뀌었다. 이전에 자주 입던 조합이 안 어울리게 되었다. 입술 색깔도 베이지에 가까운 누드톤이 어울렸다면 지금은 쨍한 레드 계열이 더 잘 어울린다.
이렇게 내 취향은 유행보다 나에게 어울리는가가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취향은 변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10대의 나와 20대의 나를 비교해보면 즐겨 입는 옷,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패턴, 소재 등 차이점은 무수히 많았고, 자세하게 파고들면 옷의 핏, 미세한 색 차이, 신발의 착용감이나 모양, 굽 높이 등 끝도 없었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버린 옷이 얼마나 많은지 여러분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20대 중반에서 후반에 접어들 무렵 어머니가 즐겨 입던 스타일을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붉은 노을 질 적에’의 첫 번째 문단) 이전에는 짧은 치마, 찢어진 청바지, 화려한 프린트의 티셔츠와 강렬한 원색 모자 등을 즐겨 입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차분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옷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건 오롯이 내 취향이다. 다른 누구의 선택도 아닌 나의 선택.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진 않는가? 내가 어떻게 보일지, 혹여나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오해를 받을까 걱정한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나는 워낙에 지금껏 여러 시선에 두들겨지며 단련되어서 지금은 무뎌졌지만, 그렇지 못한 당신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을 드러내는 게 망설여지고, 한 발 내딛기가 두렵다면 딱 자신의 그림자 끄트머리 1mm 만큼만이라도 드러내 보면 어떨까. 1mm만큼의 용기가 당신을 더욱 자신감 있게 드러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