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것에 대하여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는가? 영화 라붐에선 "어려운 건 마음보다 그걸 입으로 말하는 거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나는 말재주가 서투른 관계로 입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내가 좋아하는 향기와 어떤 순간,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 글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향기를 맡는 걸 좋아한다. 하나 둘 모으던 향수가 대략 40개는 넘겼다. 내가 맡은 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즐기지만, 항상 표현에서 가로막히곤 한다. 향긋하다는 표현은 단순히 글로 적는 표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가 어렵다.
내가 느끼는 향긋함, 지금 마시는 커피의 향 같은 것들을 온전히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전할 수 있을까. 패션프루츠, 망고, 코냑, 럼, 파인애플, 자두, 애플 진저, 초콜릿으로 이루어진 감각*을 말로서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이 좋은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다.
클래식에 비유해보자. 곡의 첫 시작을 시큼한 맛이 강렬하게 알리면 그다음 구간까지는 럼인지 코냑인지 모를 향이 매끄럽게 다음 구간까지 이어준다. 마지막은 초콜릿이 제 존재감은 드러내되 은은하게 마무리 짓는다.
또 무슨 향이 있을까. 여름날 밤에만 불어오는 향이 있다. 나뭇잎이 짙어지는 습기 어린 내음이다. 베란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바람을 느끼면 차분해진다. 여름이 도래했음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종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선물하곤 한다. 먼저 선호하는 향을 물어보고 향수를 고른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말투, 즐겨 입는 옷 등을 기준으로 어울리는 제품을 선택한다. 향수를 선물하고 나면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그 향을 연상하게 된다. 향으로 사람을 기억하는 셈이다.
시더우드 앤 모스를 뿌리면 가장 먼저 삼나무 향이 나고, 그다음으로 머스크 향이 따라온다. 나는 이 향을 맡으면 대표적으로 두 사람이 떠오른다. A의 경우, 편백나무향을 좋아한다고 해서 삼나무향이 떠올랐다. 논리 정연하고 차분한 그에게 잘 어울리는 향이라 생각한다. B는 머스크 향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를 만날 때면 늘 같은 향수를 뿌리곤 한다.
나는 향기로 많은 것을 기억한다. 시간, 사람, 순간 등등. 당신에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향이 있는가? 그 향은 어떤 향인가?
기억은 개인적이지만 같은 향을 맡으면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 특별한 향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전달해보는 것은 어떨까?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떤 순간들이다. 가로등 불빛이 닿는 곳 외엔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세상, 약간의 습기 어린 풀내음, 풀벌레 우는 새벽의 적막함. 이 모든 수식어는 내가 사랑하는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적막과 서늘함으로 세상이 잠들었음을 알리는 시간대를 사랑한다.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드는 순간의 매력은 한 문장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이다. 지금 이 순간(6월 23일 기준 새벽 1시 37분)에도 타자를 두드리면서 어떻게 하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내가 느끼는 밤바람의 서늘함을 어떻게 하면 더 생동감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 문장력이 채 미치지 못해 아쉽다.
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핸드폰을 본다. 자는 사이 연락이 왔는지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리며 메일함을 열어본다. 그날의 일정을 쭉 정리한 다음엔 일기나 원고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그때 즈음이면 연락이 오고, 그럼 나는 좋아라 하며 받는다. 혼자 작업하는 게 외로울 때 함께 하는 작업 메이트의 연락이다.
하루를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함께 시작해 함께 마무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는 연락을 자주 한다. 나는 이 친구와 조잘거리며 하루 일정을 소화하는 게 즐겁다. 그 순간순간이 좋다. 혼자 아무 말도 없이 방에 틀어박혀 노트북을 두드리는 것보다 웃고 떠들며 하루에 무엇을 했는지 체크하는 것이 훨씬 보람 있다. 하루를 잘 살았다는 느낌이 들어 서로 연락하기를 멈추기 어렵다.(물론 쉬고 싶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 채근하지도 않는다. 다만 연락하면 좋을 뿐이다)
나는 연락을 통해 하루하루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하루 계획을 세우게 되고, 내일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오늘의 목표를 다 이루지 못했다면 이만큼 했다는 걸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내일은 이만큼 해야지, 라며 내일의 나를 응원한다. 적어도 친구와 주고받는 연락을 통해 하루를 무기력하고 게으르게 보내지 않게 되어 좋다. 실질적으로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할 말이 없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답할 거리가 있다. 예전과 다르게 나는 드로잉도 하고, 컬러링 북도 채우고, 책도 읽고, 글도 쓴다. 때로는 영상도 만들고, 영어 공부도 하고, 친구와 일본어로 대화도 한다. 이젠 운전면허 공부도 할 테니 적어도 백수라서 할 말이 없는 건 아닌 셈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비 오는 날에는 재즈를 들어요’라는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쌉싸름한 오렌지 나무향 핸드크림을 바르고, 베르가못 향수와 좋아하는 티 퍼퓸을 두 번 뿌린다. 갓 내린 커피를 호호 불어 한 모금을 머금으며 밖을 바라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변하지 않는 나의 루틴이다.
때로는 비 오고 흐린 날이 우울해서 싫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아버지는 이런 날이면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서 좋다고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베란다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방울을 보는 것도, 문을 닫고 있어도 유독 습기로 가득한 실내 공기도, 흐리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비 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비 냄새를 맡으면 비가 내릴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는 것. 내일 있을 일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 모르는 일이 나를 기다린다는 상상에 가슴 부풀어 잠이 드는 것. 어쩌면 아버지에게 그 모든 것들은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나 혼자 멋대로 생각해본다.
또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좋다. 집에 혼자 있을 때와 다르게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 힘을 나눠 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평소보다 텐션이 높아진다.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행복하다.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으면 기분이 배로 좋아진다.
나는 친구나 지인과 만나도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같은 공간에 함께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하다. 비유하자면 안정감에 온몸을 맡긴 채 푹신한 소파 위에 드러누워있는 느낌 같다. 한 번은 친구와 집에서 만났는데, 서로 핸드폰만 하며 놀다가 카톡으로 심심하다고 서로 말하고선 왜 앞에 있는데 카톡으로 말하냐며 동시에 낄낄거린 적도 있다. 그런 소소한 순간도 좋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속 추억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리라 생각하면 괜스레 행복주머니가 더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을 떠올리면 기운이 없다가도 조금이나마 힘을 얻고는 한다. 아마도 단순한 추억에서 조금 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자그마한 순간순간이 쌓여 내일의 내가 하루를 조금 덜 불행하게 살 이유가 된다. 왜 행복하게 살 이유가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행복한 기억보다 불행한 기억을 더 강하게 기억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행복한 일보다 불행한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덜 불행하게 살 이유’라고 표현한 것이다.
당신에게는 덜 불행하게 살 이유가 있을까? 어떤 순간을 좋아할까? 쏟아지는 비처럼 궁금증이 쌓여간다.
마지막으로 음악에 대해 말해보자면, 나는 클래식을 좋아한다. 클래식 외의 장르에도 관심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음악은 클래식을 가장 좋아한다. 얼핏 보기에는 틀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오히려 그 틀 안에서 선율의 변화를 주고, 타건을 섬세한 조절 하여 곡의 해석을 드러내는 등 '그들이 건반 위 뛰노는 방법'을 눈을 감고 느끼고 있다 보면 즐거운 마음으로 가슴이 한가득 차오른다. (물론 '뛰노는 방법'을 위하여 수없이 많은 시간을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며 노력했겠지만, 나는 감히 '건반 위에서 뛰논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문단을 쓰고 있는 지금도 조성현 님과 손열음 님이 새로 발매하신 'Shumann, Reinecke, Schubert'라는 앨범의 네 번째 수록곡인 '1. Allegro'를 듣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에 들판이나 숲길을 걸으면서 음질 좋은 헤드셋으로 볼륨을 한껏 키워서 듣고 싶은 곡이다. 왜 이걸 이제야 듣게 되었나 싶을 정도로 좋아서 이 곡을 듣게 해 주신 두 분을 아주 힘껏 끌어안아드리고 싶은 심정이다.(두 분이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위에서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취미가 음악 감상이니 새삼스레 말하기도 이상한 일이긴 하다. "저 취미는 음악 감상이에요."라고 말하면 모두가 '아, 노래 듣는 거 좋아해서 취미가 된 거겠구나.'하고 생각할 텐데. 내 입으로 말하면 왠지 모르게 조금 멋쩍고 민망하다.
그런데 좋아하는 음악을 말하면 반응이 달라진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답하면 대부분의 답은 갑자기 거리감을 느끼듯 '어어... 그렇군요.'라거나 '취향이 고상하시네요.'로 정해져 있다. 하도 듣다 보니 이젠 익숙한 레퍼토리다. 나는 그게 일종의 편견이라 생각했다. 나 같은 20대 청년은 클래식은 듣지 않고 힙합과 팝에 열광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편견. 청년 다섯이 있으면 그중 셋은 팝을 좋아하고, 하나는 힙합을 좋아하며, 나머지 하나는 클래식 혹은 재즈를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은가.
클래식을 좋아한다면 교양 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교양 있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클래식은 곡의 흐름을 머리로 이해하려 하니 어려운 것이지, 뒷이야기를 보면서 들어보면 이해하기 쉬운 장르이다. 오페라에 이야기가 있듯이, 클래식에도 이야기가 있다. 다만 그것이 활자가 아니라 음표로 옮겨져 선율을 이룰 뿐이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클래식이 좋다. 이유는 앞서 말했듯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완벽을 향해서 끝없이 노력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백조가 물 밑에서 사실은 헤엄을 열심히 치고 있는 것처럼, 드러나지 않는 우아한(때로는 강렬한) 겉모습 뒤에는 그들의 노력이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한 음 한 음을 새겨듣게 된다.(김겨울 작가님도 '아무튼, 피아노'에서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유로 이를 꼽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에게 좋아하는 것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이전에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여전히 말로 하라면 말을 더듬거릴지도 모른다. 다만 글로 쓰라면 이제 할 이야기가 있다. 내게는 좋아하는 향기와, 순간과, 음악이 있다. 그게 나를 살게 한다. 삶의 원동력이 된다.
*콜롬비아 호르헤 무산소 발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