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책에 대한 이야기
종종 ‘나 때문이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아니고, 예전 이야기이다. 주로 친구가 싸울 때, 친구가 ‘나'와 싸울 때 등의 갈등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모든 것이 잘 안 된다고 느꼈다. 그럴 때일수록 생각의 전환을 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됐다면 진작 나의 모든 인간관계는 훨씬 좋아졌을 것이다. 결국 그 친구와는 화해하는데 실패했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
자책은 나를 좀먹는 벌레와 같다. 조금씩 마음의 긍정적인 부분을 갉아먹다가 어느 순간 돌이켜보면 꽤 많은 양을 먹어치워 회복이 더디게 한다. 그 예시로, 모두가 나를 책망하는 것 같았고, 모든 관계에서 멀어져야만 해결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머니는 친구와 싸웠다고 말하면 공감해줄 뿐 조언은 해주지 않았고, 아버지는 공감보다 먼저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다가 나와 싸우기만 반복했다. 모든 게 좋지 않다고 느꼈고, 결국 나는 모든 대화 주제에 대하여 입을 꾹 다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아진 게 있었는가, 하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그 후부터 집 안에는 적막만이 흐를 뿐이었다. 부모님이 뭐라도 말을 걸면 히스테릭한 대답만 돌아오니 대화가 이어질 리가 없었다.
학교생활이라 해서 나아진 것은 없었다. 가정이라는 하나의 사회가 위태위태했는데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멀쩡했을 리도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 복 받은 걸지도 모른다. 적당히 생활하는데 어려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각각 뛰어난 지식을 가진 현명한 부모를 두어 제대로 된 길만 걸었다면 미드 'Suit'의 레이첼 제인처럼 꽤나 학식 있는 어른으로 자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완벽한 모습 너머 안쪽은 그렇게 완벽하진 않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나는 늘 부모님의 관심을 갈구하느라 급급했다. 어머니의 반지를 책장 위 화분에 숨기질 않나, 아버지 방 벽에 멋대로 낙서를 하질 않나....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에게는 꽤나 이해할 수 없는 말썽꾸러기였을 것이다. 기억하고 계실까? 어쩌면 모를 일이다. 벌써 십 년 하고도 몇 년 전 이야기이니 잊고 계실지도.
애정과 관심을 나누는 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애정이 있다면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관심에 메말라있던 나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했다. 하지만 친한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었고, 그저 같이 놀아주는 아이들만 몇 명 있었다. 그 마저도 아이들이 시혜적인 태도로 '내가 너랑 놀아주는데, 당연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을 해서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앞서 말했듯 애정이 있다면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스스로에게 관심이 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니, 자신에 대한 생각은 많이 했지만 애정이 없었다. 낮은 성적의 시험지를 받아 들고, 부모님께 혼이 나고, 조별과제를 하며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 소통에 대하여 남몰래 펑펑 우는 등.... 실패라는 조각칼은 내 마음속 자신을 조금씩 깎아냈다. 한 번 실패를 거듭할수록 '나'는 지우개처럼 숭덩숭덩 잘려나갔다.
결국 내 상태는 작년 9월을 기점으로 최악을 찍었다. 9월 15일의 일기를 보면 이렇게 적혀있다. '나는 뭐든 할 줄 모르는 열등감의 덩어리이다. 나는 뭘 해도 못하고, 뭘 해도 결국 도망쳐버리는 한심한 겁쟁이이다. 노력할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다. 아버지에게 기생하여 자신의 이익만 누리려 하는 기생충이다. 나조차도 왜 살아가는지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줄 리가 있겠는가. 진심으로 한심하고 무력하다. 죽고 싶다.'
이 시절은 나를 사랑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다들 멀쩡한데 나는 멀쩡하지 않은 것이 자꾸만 비교되었고, 남들은 다 자기 할 일 하면서 부모님에게서 경제적 독립을 이뤄 당당하게 사는데, 나는 부모님에게 빌붙어 지내는 게 창피하고 비참했다. 괜찮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척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럴 때 나에게 위로가 된 것은 오로지 음악이었다.
음악만이 나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생각했다. 상태가 좀 좋아지고 나서 깨달았다. 사람에게는 마지막 피난처가 있어야 한다. 정말 궁지로 몰리고 몰려 끝에 다다르기 직전, 나조차도 되돌아볼 수 없을 때. 그럴 때 나를 떠올리게 해주는 피난처가 없으면 안 된다.
피난처를 어떻게 찾으면 되고, 또 그게 나의 피난처라는 걸 어떻게 알까?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정확히는 사람마다 다 정답이 다르기 때문에 확답을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들 저마다의 '느낌'이라는 건 있으니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음식, 음악, 책 혹은 다양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나는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럴수록 깎여나가 좁고 상처 입기만 했던 '나'의 세상은 넓어지고 점차 회복되기 마련이니까.
'남들은 앞서 달려가는데 나는 한참 뒤에 뒤처져있고, 이제 막 기초부터 시작한 입장에서 열심히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게으름 피우는 게 뼛속까지 배어있어서 성실하게 한 가지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게 뭔지 잊어버릴 정도인 게 너무 속상했다. 그런데 내가 그거에 속상해하면서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더 속상했다. 해결되는 게 없어서 울고 나니 허망하기만 했다.'
-2021. 03. 13. 일기 중-
'불행한 것엔 질렸다. 세상에 불행하고 우울한 것들은 너무나 흔해 빠져서 더는 보고 싶지가 않다. 난 그냥 그저 행복하기만 한 것이 보고 싶다. 내가 힘들고 불행하고 우울한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더 한 괴로움을 얻거나 느끼고 싶지 않다. 필사적으로 회피하고만 있다. 소설도, 노래도,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도 모든 것에서 조금이라도 어둡거나 그늘진 무언가가 느껴질 것만 같으면 바로 외면해버리고 뒤로 가기를 눌러버리는 것이다. 난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힘들다. 사실은 알고 있다. 늘 알고 있다. 난 안 괜찮다.'
-2021. 09. 16. 일기 중-
'나'의 세상은 꽤 좁다. 그와 비례하게 인생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범위도 좁다. 음악, 웹소설 읽기, 게임을 제외하면 재미있는 것이 없다. 영화도 드라마도 책도 잘 안 본다. 필요하면 보는 정도. 아버지는 세상을 좀 넓게 보라며 나를 채근하셨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가 변하지는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기준으로 어제(6월 15일 기준) 친한 남 작가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취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정말 취미고 목표였다면 열심히 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걸 되돌아보니 구식 근성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렁설렁 취미를 가질 수도 있는데.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나한테 박하게 굴 수가 있구나.
어쩌면 그게 왜 박하게 구는 거냐며 의아할 수도 있다. 생각은 개인의 자유니까.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에게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물론 우리 아버지가 보시면 전혀 아니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래야 해, 저래야 해.'와 같은 기준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자신을 자책하고 고치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달라진 점이 있으면 용납하질 못한다. 그건 자신에게 정해둔 목표와는 다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틀을 설정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틀에서 조금만 선이 삐져나오면 용납할 수 없어 끝내 지우고야 만다. 그럴 때의 나는 다소 강박적이다.
한 번은 엉엉 울며 나를 자책하고 아버지에게 내가 이상적인 딸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가 돌려줬던 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뭘 잘못했다고 울어.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너한테 미안해야지. 네 인생인데."
지금 생각해도 참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뒤엣말이 앞섰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으로선 아무래도 괜찮다. 그 일을 통해서 적어도 나에겐 아버지라는 절대 배신하지 않을 아군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내 기준에 맞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