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 남의 몸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by Grace




나의 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키가 작다. 148센티에 41킬로니까 저체중인 셈이기도 하다. 꽤나 말라서, 여름이 되면 팔을 내놓는 게 조금 민망할 때도 있다. 정리해보자면, 난 키가 작고 왜소한 체형의 여성이다. 그런데 동안인 여성이다. 장을 보거나 택시를 타거나 하면 동안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27살인데 고등학생이냐는 말도 듣는다. 그러니 조금 전 정리한 말에는 몇 마디를 덧붙이는 게 맞다. ‘꽤나 어리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 왜소한 체형의 여성’.


나는 언제부터 나의 몸에 대해서 궁금해했을까? 왜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고, 남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을까? 그 물음의 답을 내려면 우선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중학생 때, 나는 내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남들보다 어리게 보여서 초등학생으로 보이거나 때로는 심하면 유치원생으로 보일 정도라는 게 비참했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창피하고 어디론가 숨고만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외모와 비슷한 체구인 것을 초등학생 때부터 동경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나 그 시절은 키 순서대로 서도록 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맨 앞자리는 늘 내 차지였기 때문이다.

내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어도 화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건 그 시절의 내가 품었던 오만이 이유이기도 하다. 또래 아이들이 벌건 틴트며 허연 비비크림 등을 바르는 것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어쭙잖게 어른을 따라 한다며, 참새가 황새 따라 하는 꼴처럼 여겼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에 그렇게 학교에서까지 자신을 꾸미려고 하고 자신을 표출하려 한 건 대단한 용기였을텐데. 지금은 더없이 부끄럽고 그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난 후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못생겼다, 너무 뚱뚱해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며 다소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매 점심시간마다 상추 몇 장으로 끼니를 대신하는 친구들을 몇 명이나 봤다. 그때서야 생각했다. 나의 마른 몸이나 작은 얼굴을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수도 있구나, 하고. 그리고 조금 궁금해졌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마른 몸이나 하얀 피부, 작은 얼굴, 발간 입술, 큰 가슴과 넓은 골반 등은 언제부터 미의 기준이 되었던 걸까.


왜 사람은 남과 나를 비교하게 될까? 이에 대해서 언젠가 관련된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갈구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는 거라고. 그렇다면 고등학교 시절의 그 애들은 자연스럽게 남을 부러워하게 된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제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남자 친구, 아버지, 어머니 혹은 친척까지. 모두가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했고, ‘내가 정말 그런가?’ 싶었던 그들은 점차 그걸 사실이라 믿기 시작하며 자신을 고치기 시작한 것이다. 남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싶어서. 사실은 그게 정말 자신을 위해서 하는 다이어트나 화장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 경우를 몇 번이고 봤다. 내 친구 한 명도 그중 하나였고, 그가 외모로 자신을 상처 주는 것을 아니라며 말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는 조금 덜하게 되었다. 비록 술을 마실 때 매 번 주민등록증을 내밀어야 하는 게 다소 번거로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얼굴이 다른 사람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게 때로는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거창한 무언가에 이용했던 건 아니다. 그냥 가끔 무거운 걸 들어야 할 때 같은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또래로 보이는 것보단 좀 더 어린 후배로 보이는 게 유리하다는 걸 이용했을 뿐이다. 종종 무거운 짐을 3층까지 번갈아가며 들어줬던 동기에겐 지금도 고맙다.

하지만 콤플렉스는 얼굴에 대한 것만 있진 않았다. 오히려 성인이 되고 여타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 다니는 걸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어려 보이기만 하고 자라다 만 나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취향이 이상한 사람일 게 분명해’. 내가 나를 말할 때 ‘자라다 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처음엔 자학개그의 느낌으로 했던 말이었지만 점차 반복하다 보니 정말 내가 자라다 말아서 아무도 날 좋아해 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쓰지 않기로 했다. 그만둔 이후로도 그런 생각은 멈추지 않았고,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 수식어는 내 가슴속에 조그만 가시가 박힌 것처럼 잊을만하면 따끔거리며 존재를 알려온다.


20대 초반의 나는 연애가 인생에 있어서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했고, 중반의 나는 연애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내가 겪어보고 싶지는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20대 후반의 나는 연애가 해보고 싶긴 하다. 하지만 이런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실패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주로 그들의 몸에 대한 품평 때문이거나 성격차이 때문이었다. 혹은 소위 말하는 ‘연인은 이래야 해’ 같은 것들을 거부했다가 헤어지게 되었다거나. 나는 모르는 다른 여러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난 사람을 만나서 감정 소모하는 게 싫다. 그래서 연애가 하기 싫었던 것도 있다. 무엇보다 누군가 내 몸을 만진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좋은 기분이 들진 않는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이미지하고 상상해봐도 똑같다. 내가 내 몸을 아끼는 마음이 그다지 들지 않는데 누군가 아끼고 보듬으며 사랑한다는 게 상상이 될 리가 없다. 누군가 말할 수도 있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냐고. 스킨십은 해봐야 아는 거 아니냐고. 일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에 비유한다면 음식을 꼭 먹어봐야만 맛을 아는 건 아니지 않나. 그게 맛이 없을지는 냄새로도 알 수 있는데 굳이 먹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한창 우울감에 빠져있을 때, 내 몸을 망치는 방법을 제대로 알았다. 식사는 대충 그때 먹고 싶은 것으로 때우거나, 고열량의 당으로 대체했다. 초코바라거나 음료수 같은 것 말이다. 물도 잘 마시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정확히는 일어나지 못한 것이지만 아무튼) 그러다가 어느 날 빈혈이 왔고, 식도염이 생겼다.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그대로 살았다면 내 건강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은 하루에 그래도 식사 두 끼는 먹으려고 하고, 물을 하루에 1리터씩은 마시려 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과 홈트레이닝으로 몸을 깨운다. 더는 내 몸에 튼살이 있건, 색소침착이 있건, 내 다리가 O자로 휘어있건 신경 쓰지 않는다. 튼살이 있는 건 내가 크면서 갑자기 몸무게가 늘어서 생긴 거고, 색소침착은 팔꿈치나 무릎이 자주 쓸리면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인 데다, 내 다리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O 자였다. 내가 이런 건 누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내가 잘못해서도 아니다. 그냥 난 이렇게 생겼고, 더는 누구와 비교할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어차피 비교한다 해서 내 외모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게 내가 원하는 외모도 아닐 테니까. 난 내가 생긴 그대로가 좋다. 코가 낮아도, 쌍꺼풀이 뚜렷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난 내 몸이 좋다. 그래서일까, 당신도 당신의 몸을 좋아한다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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