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고 얕은 것 (1)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사랑이란 게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건 줄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인 줄은 몰랐어.”
문장 그대로, 현실의 사랑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다. 내가 경험한 사랑은 물감이 서서히 번지듯이 어느 순간 물들어 있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면 주인공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한 연출이 명확하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 언제부터 좋아했어?” “언제부터 좋아했어.” 같은 문답이 오가는 것은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언제 사랑에 빠졌는지 모르게 어느 순간 좋아하고 있는 것이 보통의 사랑이다.
사랑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니 멋쩍어서 할 말을 고르게 된다. 가장 보편적으로 다뤄지는 주제임에도 어렵다고 느낀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내가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그럼에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내가 경험한 사랑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였을 것이다. 같은 반이었고, 내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몰래몰래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씩씩하게 손을 들고 발표를 하던 모습이 참 멋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뛰어다니는 그 애의 환하게 웃는 얼굴은 흐릿하지만 선명하게 기억난다. 쉬는 시간에는 반 애들과 너 나 할 것 없이 활기차게 반의 끝에서 끝을 누비며 뛰놀던 게 보기 좋아 나도 함께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먼 곳으로 전학을 가버려 말을 걸어볼 기회도 없어졌지만.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는데 양해 바란다. 벌써 10년 하고도 몇 년 전 얘기다 보니 흐릿할 수밖에 없다.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이른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풋사랑에 가까웠던 것 같다. 동경과 비슷한 수준으로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첫사랑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나는 가장 먼저 영화 ‘러브레터’의 하늘하늘한 하얀 시폰 커튼이 생각난다. 다음으로는 새하얀 구름이 새파란 하늘을 부유하는 여름날이 떠오른다. 대체로 청량하거나 아련한 이미지이다.
향에 대해서 생각해봐도 비슷한 것 같다. 여운이 길게 남는 향이나 상큼한 시트러스 혹은 코튼 계열의 향을 연상하게 된다. 내 첫사랑은 그렇게 여운이 길게 남거나 청량한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신기할 뿐이다.
포털 사이트에 첫사랑에 대한 향기를 검색해봤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첫사랑이라는 단어에서 연상하는 향은 사과, 라일락, 복숭아 등의 달콤하거나 상큼한 향이라고 한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미화되기 마련이라고 하니, 첫사랑에 대한 기억도 미화되어 그런 연상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차분하고 매사에 논리적이며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 그는 늘 좋은 향이 났고, 약속 시간에 일찍 나오는 게 버릇이었으며 두 손으로 뭔갈 만들어내기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처음엔 무척 어려워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친해졌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거리가 멀어진 다음에서야 그를 사랑했음을 자각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알지도 못하는데 고백하기도 애매했고, 무엇보다 그럴 용기가 없었다. 아마도 그는 모를 것이다. 내가 좋아했다는 건 만약 이 책을 읽는다면 알겠지.
사랑의 열병은 오래갔다. 반년이었나. 그렇게 오랫동안 누군가를 꾸준히 떠올린 적도, 그렇게까지 사랑을 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아니, 그런 지독한 사랑이 처음이었다. 이런 게 바로 첫사랑이 아닐까. 어렸을 때의 어설픈 풋사랑이 아니라 열병같이 오래가는 것.
되돌아보면 나는 늘 실수 투성이었다. 그의 앞에선 그를 곤란하게 하는 실수를 저지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각하지 못한 상태였어도 늘 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단 생각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그와 나는 같은 게임을 했고, 같은 취미를 가졌고, 같이 다른 사람과 차를 마시는 걸 좋아했다. 공통점이 많은 만큼 차이점도 많았다. 나는 논리적이지 못했고, 감정적이었으며, 지금은 아니지만 시간 약속을 잘 못 지키는 편이었다. 그는 다양한 게임을 즐겨했고 직접 그림을 그리고 요리도 하는 등 취미가 많았으나, 나는 음악 감상을 제외하면 취미가 없었고 게임이라곤 하나만 했었다. 그래서 늘 대화 주제가 적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게임 얘기 말고는 없었다. 가끔 최근에 들었던 음악이 좋았다는 얘기를 했던 정도일까.
열이 최고로 올랐을 때 이런 글을 썼었다. ‘말하고 싶다. 말이라도 붙이고 싶다. 하다못해 날씨가 좋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다. 그냥 말 한마디가 너무 그립다. 만나고 싶다. 그냥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간절했었다. 글을 쓰고 나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온갖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여 눈물로 흘러내리는 건 차마 글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감정 중에는 사랑이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은 후회와 원망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고, 당당히 나서지 않은 과거의 나를 원망했다.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냐고 하면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책망하겠는가. 단순히 나 혼자 좋아했을 뿐인데. 그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건 명확한 사실이다.
눈물이 날 때면 심규선 님의 ‘화조도’라는 노래를 들었다. 그중 가사의 일부가 정말 큰 위로가 되어 그 부분만 몇 번이고 들은 적도 있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사랑을 구하지 말 지어라’ 가사 한 줄을 붙들고 서서히 잊어가려 노력했던 것 같다. 일부러 그를 떠올리려 하면 다른 생각을 하려 하고, 일상을 일부러 바쁘게 유지하려 했다. 자신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눈물 나는 몸부림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반년이 지나고 나서는 더는 그가 생각나지 않았다.
열병이 지나간 자리엔 더욱 성숙해진 내가 있었다. 신기할 따름이다. 그토록 나를 힘겹게 몰아붙이던 게 나를 성숙해지게 하다니.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고통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거름이 된다고. 그 말대로인 것 같다.
누군가는 사랑이 달콤하고 씁쓸한 것이라 하지만, 나에겐 향긋하고 씁쓸한 커피 같았다. 어쩌면 그가 커피를 닮았기 때문일지도. 그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지난날의 추억 속 한 사람으로 남을 걸 생각하니 조금 재밌다. 만약 알게 된다면 그가 어떤 얼굴을 할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