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것

Prologue

by Grace




아침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나는 대략 7~8시 정도면 잠이 깬다) 잠옷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베란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아침의 상쾌하고 서늘한 공기를 맞이하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게 나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루틴이다.


나는 현시점을 기준으로 말하면 백수이다. (만약 출간 후를 기준으로 말하면 작가겠지만, 내가 스스로 작가라 칭하는 건 적응이 안 될 것 같다)

백수의 삶은 느긋하고, 게으르고, 무계획할 것 같지만 아니다. 매일의 반복되는 루틴이 있고, 매일 정해두는 해야 할 일 목록이 있다. 나는 매일같이 디자인도 하고,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들며 하루에 할 일을 정해놓고 하나씩 체크해나간다. 물론 루틴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백수가 된 이유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회사에서 잘려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아파서, 취직을 아직 하지 못해서 등등. 그것들이 잘못한 일이냐고 묻고 싶다. 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들은 그저 잠시 멈춰있을 뿐이다. 걸어갈 길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길은 찾았으나 휴식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와 사연이 있는지 일일이 알 수 없어 아쉽지만, 나는 가능한 만큼만 멈춰있으라고 하고 싶다. 다시 걸어갈 수 있게 된다면 차근차근히 발을 내딛으면 좋겠다. 그렇게 삶을,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원한다.




'7시 반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내려와 베란다 문을 열고 초를 그 아래에 놓아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좋은 향이 나라고.

8시엔 커피를 가지고 와 베란다에서 컬러링 북을 했다. 어디선가 탄 내가 나서 누가 아침을 태웠나 보다,라고 생각을 흘리며 컬러링 북에 집중하니 아침에 적당히 생각 비우기 좋은 것 같다.

나카무라 유리코의 음악은 참 지브리의 배경 음악처럼 여운이 남으면서도 선율이 깊다. 그래서 난 그의 곡들을 사랑한다.

나뭇잎이 바람결에 스치며 스스스스 소리를 내며 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숨이 탁 트인다. 너무 좋다. 완벽한 하루의 시작이다.'


-2022년 6월 14일 아침의 일기-




종종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당장 근 1년의 목표가 아니라, 10년, 30년까지의 장기 목표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주제이다. 나는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장기 목표는 없고 단기 목표는 있어요." 그러면 이런 질문이 돌아온다. "그런 거 말고, 멀리 까지 바라보는 시야를 키워야지. 장기 목표는 없어? 10년 이상 되는 것." 그럼 나는 앵무새가 되어 정말 없다고 답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질문한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할 말이 없어져 다른 주제로 말을 바꾼다. 아니면 언성을 높이며 싸우거나.


꼭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걸까? 그게 꼭 장기 목표여야만 하는 걸까? 나는 목표가 있다면 그게 오늘 하루 동안 지킬 투두 리스트이건, 일주일 동안 지킬 위클리이건, 일 년의 목표이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야를 넓게 가지면 좋을 것이다. 시야가 좁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혜안도 생길 것이고, 미래를 대비해 필요한 능력을 갈고닦는 시간도 가질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나에게 주어질 보상(장기 목표의 장점)보다 내가 나에게 주는 보상(단기 목표의 장점)에 더 주목하고 싶다.

당장 자신의 발 앞이 낭떠러지인 사람에게 멀리 보라 하면 가능할까?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몹시 불안정해 나 하나를 간수하기도 벅차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식사를 끼니마다 챙기는 것도 힘들었고,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도, 하루에 한 번 씻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생각해봤다. 발 앞으로 한 걸음만큼의 거리 만이라도 나아가 보는 것을 목표로 정해 보면 어떨까? 하루에 숨을 일정한 박자로, 고르게 쉬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안 되나?

내가 일전에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멀리 떨어진 곳 말고 가까운 곳을 먼저 간다고 생각하고 목표를 설정하면 돼요."

그 말대로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저 먼 곳을 비출 수는 없지만, 내 발 밑 정도에는 촛불 불빛이 닿을 것이다. 그럼 닿는 만큼만 걸으면 된다. 그 이상이 가능해진다면 성큼성큼 걸으면 될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삶의 목표는 자기가 정하는 거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경험 상 노력할 수 있는 시기는 따로 있으니 한 번 정도는 멈춰 있어 보기를 권장한다. 한 번뿐인 삶이지 않은가.


20대인 것치고 나는 비교적 아날로그에 익숙하다.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고, 핸드폰 기능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무심코 친구에게 먼저 묻는 버릇이 있는 신기한 청년이다.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하나 설치하려고 하면 한참 동안 설치 설명서를 들여다보고 몇 번이고 삭제와 설치를 반복해야 그제야 성공할 때도 많다. 그래서 요즘 같이 뭐든 빠르게 변하는 세대와 다르게 느리게 흘러가는 아날로그가 편하다. 지지직거리는 턴테이블의 LP판, 깔짝깔짝 거리는 타자기 소리, 약간 거친 감촉의 누우런 종이책. 그 특유의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분위기를 사랑한다.

우리 집은 특이하게 나보다 아버지가 훨씬 신세대 같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유행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뭔지, 드라마가 뭔지, 최근 개봉한 영화는 무엇인지 등의 정보를 어디선가 알아오신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만 한 번도 여쭤본 적은 없다.

반대로 그런 면이 있지만, 아버지도 어려워하는 게 있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핸드폰의 글자가 작아서 크게 확대하는 법을 물어보는 것, 컴퓨터의 마이크가 켜지지 않아서 나를 부르는 것. 그럴 때면 나는 아버지의 해결사가 되어야만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그 순간 아버지를 도와드릴까? 반대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언젠가 MBTI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다. 나는 관습형이 높게 나오던 것이 기억난다. 제법 그럴듯하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익숙한 것이 편하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말로, 도전을 썩 즐기지 않는다. 새로운 취미를 가지려고 도전해봐도 오래 지속하지를 못한다. 익숙한 것 외에 진득하게 좋아할 만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틀과 규칙이 정해져 있는 것을 선호한다. 사다리 타기처럼 이럴 때는 이런 방식, 이럴 때는 이렇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처럼 규칙이 세부화 되어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좋다. 창의성은 떨어지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것이 좋다. 시대에 뒤처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이런 게 좋은걸. 정말 급하면 그 때라도 노력하겠지, 하고 대책 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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