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기력 없음

우울과 기력 없음에 대하여

by Grace




슬퍼하고 좌절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우울에 대해서다. 장기화되는 코로나로 인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상담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이미지도 개선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의 반응은 썩 긍정적이지 못하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우울증? 너무 유난 떤다.’ 혹은 ‘에이, 그게 뭐 우울해. 그렇게 따지면 내가 더 우울했지’ 등이 있는데, 나는 이와 같은 반응을 맞닥뜨리면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 기력을 더 빼앗기는 느낌이라 지친다.

‘기력이 빼앗긴다’는 말을 듣게 되면 대부분은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다른 사람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행위를 수행할 열정과 체력과 정신력이 없는 상태’를 ‘기력이 없다’고 한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우리한테 주어진 에너지가 있다면 그 총량을 거의 다 써가는 느낌이다. 나는 주로 언성을 높이거나, 내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때, 내가 무언가를 수행해야 하는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힘들 때 ‘기력이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찾아온 다음엔 어김없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우울’이라는 이름의 반갑지 않은 손님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쉽게 자리를 뜨는 법이 없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 싶으면 분위기가 밝아졌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면 우중충하고 칙칙하고 때로는 감정이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아서 힘들다. 나는 우울과 각종 감정이 나를 덮치는 순간을 ‘검은 파도가 밀려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울감이 심해지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심해에 있다고 표현한다.

심해에 있을 때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우울에서 비롯된 무기력이라는 막을 두르고 심해에 가라앉아 있으면 뭍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고 싶어 진다. 수면 밖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고 싶고, 나에게 돌아오는 연락도 받고 싶지 않다. 그저 모든 게 힘들고 무서워질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관계는 점차 멀어져 연락이 끊기게 된다. 이것이 내가 밟은 우울의 절차이다. (다른 사람의 경우엔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나와 다르게 훨씬 일찍 나아져서 관계 회복도 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왜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기를 멈추지 못하는 걸까? 아빠에게 물으면 보나 마나 내가 게을러서 그런 거다. 그만하면 될 걸 왜 이유를 따지냐. 고치려고 안 하니까 그런 거라고 할 게 뻔해서 묻고 싶어도 묻지 않았다. 선생님께 여쭈면 다른 대답이 나올까. 모르겠다. 밥을 굶으면 뼈 마디가 아프고 물을 안 마시면 어지럽고 씻지 않으면 간지럽고 따갑고 신경이 곤두서는 걸 알면서도 나를 괴롭히기를 멈출 수가 없다. 내가 무기력하기 때문에, 내가 우울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모르겠다. 난 누군가를 탓하는 것에 지쳐버렸다. (...)

그냥 날 괴롭히는 게 마음이 편하다. 고치려고 하는 것보다 나를 방치해버리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런 걸지도. 나를 낫게 하려고 하는 것보다 방치하고 외면해버리면 편하니까. 사실은 그게 더 힘들어지는 길이라는 걸 알지만.’


-2021년 10월 24일 오전 6시 58분의 일기-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은 그렇다고 하자. 그럼 그대로 수면 위로는 올라오지 않을까? 아니다. 나는 수면 위로 올라와 뭍이 어떤지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수면에 비친 나의 모습이 흔들리는 것처럼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다. 완전히 나아지는 법은 없다. 우울은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의사 선생님이 완치되었다며 퇴원해도 된다고 하는 것처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수면 위로 올라오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단순노동이 있다.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게 되면 우울할 틈이 없다. 청소 같은 단순노동은 더욱 좋다. 두 번째는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를 만나 웃고 떠들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 마지막은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잠을 자는 것. 충분히 잠을 자고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면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나의 경우엔 표시를 해보자면 3>2>1의 비중으로 살았던 것 같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선택도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닫을 필요까진 없다. 그저 웅크려있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내면에 솔직하게 귀를 기울이고, 수면 위가 궁금해지면 새로운 것을 한 번 해본다는 느낌으로 살짝 내어 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