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파도가 밀려온다

상실에 대한 이야기

by Grace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란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부모님에게 크게 혼이 난 날, 홀로 길을 잃어버린 날, 스스로 노력해 좋은 결과를 맞이한 날 등등. 그런 순간은 수없이 많겠지만 가장 크게 남는 기억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때라고 생각한다. 상실의 순간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다양한 크기의 돌들이 태산을 이루듯, 작고 큰 상실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상실은 때로는 개인적인,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면 고민을 거쳐야 하는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상실'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내 안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대체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준비가 되지 않으면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 무게를 나누려면 이 정도의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상실은 소화하기 어려운 감정이니까.

나에게 상실은 비통한, 슬픈, 그리운, 참담한, 원망스러운, 비참한, 허망한……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라게 느껴진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존재하듯, 모든 감정이 조금씩 섞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의 상실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연락을 받았을 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귓가에는 어디로 오라는 숙모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는 새하얗게 물들었고, 심장박동이 귀에 들릴만큼 쿵쾅거렸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교통카드를 챙겨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또 갈아 타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동안 나는 이상할 만큼 덤덤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 말고는 어떠한 감정의 요동도 없었다. 검은 저고리, 검은 한복 치마, 검은 양말을 차례대로 입고, 상주를 의미하는 완장을 차고 난 내 얼굴은 창백했다. 입술은 말라서 부르터있고, 생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보기 싫어서 거울에서 시선을 돌렸다.

시종일관 오는 조문객을 맞이하고, 눈물짓는 그들을 위로하며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냈다. 삼일 째 되는 날, 발인실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본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슬며시 손을 잡았다가 바로 놓았다. 고무보다도 못한 감촉의 피부. 생전 살아있던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화장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진 얼굴. 생전에 한 번도 그렇게 화사하게 꾸민 적이 없었는데. 앞서 느낀 충격을 뒤로 미뤄둘 만큼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은 곱고도 고왔다. 식구들이 차례대로 마지막 한 마디를 하고, 내 순서가 되어 얼굴을 보고 입을 뗀 순간, 왈칵 울 수밖에 없었다. 발인식을 마치고 돌아와 나를 기다리던 친구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다시 울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더랬다. "우리 엄마 정말 예뻤어…." 어머니는 정말 예뻤다.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사진이 있지만,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앞으로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건강하던 시절의 어머니의 얼굴만 봐도 모자란데 그 얼굴을 볼 이유가 없으니까. 상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상실의 마무리는 그렇게 맺어졌다. 안녕, 하며 눈물짓고 작별인사를 하면 정말 그 순간으로 끝인 걸까? 아니다. 상실은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남들의 당연하게 흘러나오는 부모님에 대한 투정, 아버지를 지탱해야 한다는 부담감 등 힘든 것들은 많지만, 그중 제일가는 것은 채워져 있으나 비어져버린 자리를 정리하는 것이다. 저 자리에 누워있었는데, 이 옷을 좋아했는데, 이 꽃을 좋아했는데 등등…. 다양한 미련이 남아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 이건 내가 입고 싶으니까, 라며 한 벌, 이건 내가 간직하고 싶으니까, 라며 한 개씩 모아두면 어느새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볼 수 있다. 마음속에 치우지 못한 미련 덩어리가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높이 쌓여있다. 그렇게 산더미 같은 미련과 남은 찌꺼기까지 모두 정리하는데 총 4년이 걸렸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를 치르는 도중의 아빠의 얼굴을 기억한다. 탈력감인지, 무기력인지 모를 창백함으로 물든 낯빛. 무슨 감정인지 모를 검디 검기만 한 눈. 이틀간 아무것도 안 먹어서 아빠가 걱정스러워 한술이라도 뜨고 오라며 등을 떠밀어도 안 먹었던 것.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울음소리를 토해내던 아빠를 기억한다. 그 울음소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단순히 슬픔이 아닌, 복잡한 감정의 홍수 같은 무언가.'


-2021년 10월 14일 새벽 5시 1분의 일기 중.-




미련을 모두 정리하고 나면 우리의 마음은 원래대로 돌아올까? 아니다. 상실은 떠나간 자리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에 존재한다. 비유하자면 마음에 남는 흉터라고 할 수 있다. 약을 바르고 딱지가 떼어져 새살이 돋아도 이따금 따끔거리며 제 존재를 알려온다. 골치 아프기 짝이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로소 골칫덩이였던 상실을 제 그림자 정도로 여길 수 있게 된다.


상실은 저마다의 기억을 남긴다. 나의 경우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국화와 한복이 싫어졌다. 특히 하얀 국화는 더욱 싫다. 상주가 되어 거울을 보던 창백한 낯의 내가 떠올라 검은 한복은 더더욱 싫었다. 어느 날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철릭 원피스를 봤는데, 검은색인데도 싫지 않아서 새삼스러웠다. 혹시 입어보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어보니, 그냥 원피스로만 느껴졌다. '아, 나 이제 괜찮구나.'라며 무심코 안도했던 것 같다. 그게 1년 전의 얘기니까, 5년 전 장례식부터 회복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나와 같은 상실을 겪는 사람은 세상에 아주 많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면 이 과정이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이라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실을 통해 사람은 성숙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과정 속에서 각종 감정과 고통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성숙해지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상실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지만,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환하던 밤길의 불이 하나둘씩 꺼진다. 언제 꺼질지 모르고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밖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몇 개는 꺼져있고, 조금 더 지나면 모든 불이 다 꺼져 눈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나는 상실 후의 슬픔을 이와 같이 비유한다.

죽음 앞에 사람은 혼란의 극치에 이른다. 나는 남겨진 사람의 심리를 잘 안다. 내가 경험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갑작스럽고 변덕스러운 폭풍 같다. 잠시 생각 안 하고 잘 지내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 예상도 못한 순간에 불쑥 떠올라 눈물이 폭포처럼 흐르게 한다. 사소한 일상에 사소하지 않은 힘듦이 머물러 그냥 넘어갈 수 없게 한다. 예를 들면 지인의 부모님에 대한 불평불만이나, 나는 잔소리해줄 어머니라도 있으면 좋겠다, 부럽다 등등. 별에 별 생각이 다 든다.


장례를 마치고 정신없이 몰려오는 공허함에 숨 막혀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얼른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하고 바쁘게 사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분으로선 앞서 경험했기 때문에 나름의 삶의 지혜를 알려준 것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단지 그 말대로 실행하지 못했을 뿐이고, 내가 그러지 못한 이유를 자책하지는 않는다. 난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모두가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발이며 손이며 머릿속까지 옭아매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덩굴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하지만 알면서도 행동으로 바로 옮길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생각이 들지 않도록, 이전에 반복하던 일상으로 돌아가 상실 이전처럼 일상을 반복한다. 그러면 서서히 누군가를 잃은 빈자리와 바뀐 일상에 익숙해져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방법 자체는 간단하지만, 실행 과정은 결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주변인의 협력과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그의 감정이 혼란스러울 수 있음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며 공감해줘야 한다. 그래야 계속 흐리기만 한 날에서 벗어나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같은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겠나.


한창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갈피를 못 잡고 물속 깊은 곳으로 잠기기만 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어언 4년이라는 시간을 물속에서 보냈다. 그 안에 있으면 내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힘들면서도, 물 밖의 세상이 두려워 헤엄을 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힘든 일이 있으면 잠시 눈을 돌리고 싶어 하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슬픔과 우울감 속에 잠겨있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엉망이 되어가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단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만큼의 에너지가 나에게 없었던 것뿐이다.


준비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생각보다 빨리, 누구는 생각보다 늦을 수도 있다. 그 기준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슬픔을 극복하는 원리는 비슷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상실에 대해 슬퍼해도 좋고, 좌절해도 좋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비로소 한 발을 더 내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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