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질 적에

나의 개인적 추억 이야기

by Grace




슬픔에 눈물짓던 날이 지나가면, 그리움에 잠기는 나날이 찾아온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꽃이나 즐겨 입던 옷 스타일, 노을 지는 하늘, 식물원 같은 것을 보면 자연스레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어느새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다. 즐겨 입는 옷이 화려하지 않고 단색의 단정한 셔츠나 슬랙스가 되었고, 전처럼 무심하게 내뱉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생각한 다음 말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짧은 숏컷의 파마머리였던 당신과 비슷하게 숏컷에 파마를 하고, 일기를 종종 쓰셨던 것처럼 나도 일기를 쓰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은 부모를 닮아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더니, 참 잘 들어맞는 말이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 단지 내를 산책했던 날이 생각난다. 그날은 유독 날이 따뜻하고, 어머니의 몸 상태도 좋아 모처럼 밖으로 나섰다. 늦여름 즈음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남아있는 열기에 나는 조금 더울 정도였지만, 어머니는 긴팔에 숄을 걸치고도 춥다고 하셨다. 내가 어머니께 보여드리려 각종 꽃을 발견하는 족족 찍어대면 어머니는 "그걸 찍지 말고, 나를 찍어"라고 하셨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말대로 어머니를 향해 렌즈를 돌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나중에 별세한 후 나와 아버지가 어머니를 그리워할 때를 위하여 찍어두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 사진은 지금도 내 외장하드의 가족 폴더에 고이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열더라도 폴더 속 건강한 어머니의 모습만 보고, 그 시절의 사진 속 어머니는 보지 않는다. 건강하고 생기 넘치던 모습을 기억하기에도 벅찬데, 힘들어하시던 모습만 떠올리고 싶진 않다. 어머니도 그건 바라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뒤늦게 떠오른 궁금증이 나에게 의미를 찾기를 종용하기에 얼른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봤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하지만 나에게 그리움은 조금 다른 의미이다. 때로는 정석 그대로 다가오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잔잔하게 여운을 남긴다. 마치 붉은 노을이 질 적에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제각각 다른 그리움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학창 시절,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아주 잠깐 뿐이지만 소중한 순간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소소한 그리움이 많다. 내 속의 조그마한 그리움 주머니에 하나둘씩 곱게 포장해 넣어두어 언제든 원하는 때에 꺼내서 들여다보곤 하는데, 그중 하나를 말해보고 싶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금강산에 간 적이 있다. (정확히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갔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낯선 곳에 가서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국경 근처에서 금지물품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신분은 확실한지 등을 살피는 검사 절차가 있었던 건 기억한다. 온몸이 빳빳이 굳을 만큼 긴장한 사람들과 굳은 표정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지금 생각하면 그건 긴장감이었던 것 같다)에 여권을 얼굴 옆에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한껏 펼친 채 멀뚱멀뚱 검사관을 바라봤었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은 어머니와 아버지 나잇 대였을 것이다. 우리 일행 중에서 나만큼 어린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종종 어리광을 부리거나 소란스럽게 굴려고 할 때면 모두가 안절부절못했다. 우리는 정해진 곳만 볼 수 있었고, 소란을 피우면 붙잡히거나 국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금강산에 오를 때,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내 신발이 말썽이었다. 신발 밑창이 완전히 떨어져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떻게 하겠는가. 편의점도 없던 시절이고, 매점을 찾자니 있을 리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고무줄을 구해 신발을 동여매는 것뿐이었다. 나는 결국 그 상태로 부모님과 함께(정확히는 일행과 함께) 산에 올랐다.


산의 중턱에 이르렀을 때, 내려다봤던 풍경을 아직도 기억한다. 저 멀리 보이는 경치가 내가 아는 모습(그 시절의 서울)과는 너무나 달라 그저 신기하고 가슴이 벅찼다. 그때 찍은 사진은 인화해서 내 앨범 속에 고이 넣어뒀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산 중턱에서 우리 가족 셋이서 찍었던 사진도. 종종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나를 자랑할 때 "금강산도 올랐었다"라며 언급하신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쩌면 나와 같이 아버지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에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3, 4학년 즈음일 때의 이야기다. 나는 한창 학교에서 하는 과학실험에 푹 빠져있었다. 얼마나 빠져있었냐면, 집에서도 같은 실험을 하고 싶어 할 만큼 푹 빠져 어머니와 아버지께 조를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다. 일반 장난감도 아니라 비쌌을 텐데) 감사하게도 같지만 다른 것(학교에선 유리로 된 실험 도구와 스포이드로 실험했지만 이 경우엔 플라스틱이었던 것 같다)으로 실험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셔서 집에 있는 락스나 린스 같은 것들로 실험했던 기억이 난다. 조그마한 종이가 락스에 닿으면 색이 변하는 게 뭐 그리 신기했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반짝반짝 빛냈더랬다. 그러다 락스를 엎어서 어머니께 혼이 났었다. 그럴 만도 했다. 피부에 엎었으면 크게 다칠 뻔했으니까.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던 걸 모르고 철 없이도 더 실험하게 해 달라며 떼를 썼었다. 지금의 내가 한 마디 해준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만 떼쓰고 수학 공부나 해, 이 철없는 것 같으니."

늘 되돌이켜보면 나의 기억 속 도서관에 기록되어있는 소중한 추억들은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미련을 부른다. 후회보다는 아쉬움에 생각해보는 다른 선택지에 가깝지만, 상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어 혼자 머리에 담아두고 만다. 주변에 있는 누구에게 말해본들 나와 100%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온전히 나만의 아쉬움이니까. 그저 고이 마음속에 잘 간직해둔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있을 때는 아쉬움이 덜 하도록 노력해보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다.


생각해보면, 지난날의 내가 이렇게 에세이를 집필하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한창 우울하던 시기의 내가 지금처럼 상태가 나아져 웃고 울고 떠들며 감정이 풍부해진 나를 보면 뭐라 생각할까? 부러워할까? 그때의 나는 상상도 못 할 자신을 보고 있으면 문득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잘 지내니? 그렇게나마 답장 없는 편지를 보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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