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친구는 각별하다. 사람마다 의미나 마음속 비중에 차이가 있겠지만, 나에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정도이다. 때로는 쓰고 매운 직언으로 엇나가지 않도록 나를 바로 잡아주었고, 때로는 달콤한 칭찬으로 말라버린 자존감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아마도 친구들이 이 글을 본다면 너무 미화된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친구의 반가운 얼굴과 함께 비를 맞으며 언덕길을 달리던 날, 깔깔거리던 우리의 웃음소리 같은 것들을. 지금은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한 추억과 무언의 지지가 나와 함께 했기 때문에 힘든 일이나 여러 시선들에 견딜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우리는 살아가며 여러 관계를 형성한다. 각자가 포함된 공동체 속에서 노력하지만, 사람이 얽힌 일은 마음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그게 친구이든, 직장생활이든, 어떤 관계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관계는 어렵다. 나도 쉬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좁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관계에 대한 여러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관계는 어느 한쪽이 우위에 서 있으면 안 된다. 서로의 눈높이가 맞지 않기 때문에 우위에 선 사람이 상대를 업신여길 가능성이 있고, 상대는 날이 갈수록 자존감이 깎여 힘들어할 것이다.(직장생활의 경우엔 앞서 말한 예시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관계는 평등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지속 가능성이 올라간다. 쉽게 말해, 서로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그어놓고 적절히 다가가도 되는 만큼만 걸음을 옮긴다. 목소리가 닿는 정도면 충분하다. 처음엔 큰 소리로 외쳐야 닿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다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게 관계 지속의 첫걸음인 배려이다.
나에겐 두 명의 오래된 친구가 있다. 두 사람 모두 나와 13년을 알고 지냈지만, 여전히 우리 사이에는 좁은 선이 남아있다. 그 선은 우리가 지키는 암묵적인 규칙이다.
친구여도 예의를 지킨다. 지나친 장난은 치지 않는다. 실수하거나 잘못한 것은 바로 사과한다. 강요하지 않고 불편한 것은 바로바로 말한다. 서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면 구태여 먼저 묻지 않는다. 친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먼저 의사를 묻는다. (다른 사람에게 멋대로 얘기했다가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이게 우리의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 규칙을 모든 관계에 적용한다. 다소 빡빡하다, 친구 사이인데 뭘 이렇게 따지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친구라는 친밀한 관계일수록 더욱 선을 잘 그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규칙 덕분에 아직까지 우리는 제대로 싸운 적이 없다. 서로에게 쌓인 불평불만도 없고, 적절한 선을 지키기 때문이다.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비결이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사회에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고, 말 그대로 아직 사회초년생인지라 해줄 말이 전무하다. 하지만 관계란 다 비슷한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험은 얕지만, 말해보자면 ‘동료와 지나치게 가까워지지 말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인 것 같다. 우리는 사회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 회사 동료가 아니더라도 각종 동호회나 따로 공부를 한다면 학원 동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마음이 잘 맞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 마음도 주고 돈도 맡기다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다. 각종 관계 가운데 우리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친근하게 지내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서로의 갈 길을 갈 줄 아는 어른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