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고 얕은 것 (2)
해외 드라마를 보면 부모 자식 간에 통화하는 장면에서 "사랑해요, 안녕히 주무세요."같은 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실제로 한다고 생각하면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똑같이 낯간지럽고 어색하다. 한국 문화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느끼는 바를 말하면 좋을 텐데, 그것이 미덕으로 여겨지지 못하니 때로는 아쉽기도 하다.
나는 그런 애정 표현에 낯설어하는 한국인 중에서도 비교적 말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을 잘하는 편이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건 솔직하게 말하면 여전히 낯간지럽지만, 친구들에게는 허물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는 왜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봤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바로 부모님 세대가 요즘 세대보다 더 표현을 잘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표현방식을 성장하면서 그대로 물려받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말 한마디 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부모님 때문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 또한 그런 문화에서 자라면서 표현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억압된 환경에서 자랐다면 비단 우리보다 더 했을 것은 명료하다. 아마도 예상이지만, 그들은 반대로 애정표현을 낯설어하면서도 듣고자 하는 욕구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해요"라는 말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제멋대로인 상상이다.
표현방식을 물려받았듯, 나는 부모님에게 많은 것을 받으며 성장했다. 의식주는 기본으로, 시기에 맞춰 적절히 필요한 교육과 아이에게 어떤 환경이 더 좋을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주기 위해 함께 놀러 가는 것 등 부모님의 아이를 위한 노력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나는 그 모든 노력이 제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애정이 있으면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관심이 가면 자연스레 노력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애정의 법칙'이라 말하고 싶다.
부모님에게 많은 것을 받지만, 망각은 자연스레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의 일부를 잊게 한다. 그중에는 부모님과 함께 공원에 놀러 가 우연히 동물을 본 것, 열이 팔팔 끓어 나를 업고 응급실까지 달려갔던 부모님의 땀에 젖은 등, 학교 운동회에서 캠코더로 나를 집요하게 찍었던 것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모두 듣고 보면 부모님에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겠지만, 나는 잊고 만 기억들이다. 우리의 탄생과 때로는 죽음까지도 지켜보는 당신들은 우리가 많은 것을 잊어버리는 게 섭섭하진 않을까? 내가 부모라면 섭섭할 것 같다. 하지만 곧 아이의 성장한 모습을 보며 납득과 약간의 체념도 느낄 것 같다. 이 또한 나의 제멋대로인 상상일 뿐이다.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본 경험이 없으니까.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 한 가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굉장히 두리뭉실한 목표라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목적에 가까운 목표를 처음 가지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좋고 비싼 DSLR 카메라를 산 뒤 우연히 보게 된 흑백 사진 전시회에서 본 아이의 눈을 확대하여 찍은 사진을 보고 생각했다. 그 전시회의 관람비가 모두 기부금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직도 무슨 주제의 어떤 사람의 전시회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뚜렷한 것은 머릿속 문장 하나뿐이었다.
그럼 나은 세상을 위하여 내가 한 노력은 무엇이 있는지 묻는다면 구체적으론 아직 없다.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보다 직접적으로 내가 가진 능력을 이용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내 능력으로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무척 뿌듯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겐 의외일 수도 있다. 나는 아무리 유명인이라 해도 그가 어떤 가십거리에 올랐으며 어떤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지, 사실은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지 않다. 그저 그는 그의 삶을 살 뿐이고, 나는 나의 삶을 살 뿐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던 것과 다르게 굉장히 개인주의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도 나는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몇몇은 나를 이기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나대로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다른 사람은 그의 삶을 살도록 관여하지 않으며 존중할 수 있어서 좋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종종 오해를 한다. 개인주의적이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에는 관심도 없을 것이라고. 비슷하지만 조금 오류가 있다. 나는 개개인에게 관심이 없는 것일 뿐, 인류 전체를 위한 일에는 관심이 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없지 않다. 오히려 사랑하기에 더욱 선을 명확하게 그어놓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왜 궤변이라 생각하는지 되묻고 싶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개인주의적인 이기심이라면, 당연히 인류 전체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도 그 사랑의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이 사랑은 이만큼, 저 사랑은 이만큼,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