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와 블로그 마케팅에 회의감을 느끼고, 브런치 작가로 등록한 것은 2015년 7월이었다.
네이버 쪽에서 활동하면 좋겠다며 마케터들이 자주 말했었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고 또 다른 곳으로 간 것이다. 브런치에는 글을 연재하면 소속이나 직업을 적는 프로필 공간이 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유명 프리랜서부터 젊은 CEO까지 현재 직업에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공존했었던 시절이라서, 평범한 나는... 그래서 항상 위축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2월, 그동안 쉬고 있었던 키보드 커뮤니티를 카페에서 다시 시작하고 활동하면서 조금이지만 글을 작성하며 시작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지쳐있던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새로운 키보드를 매번 알려주시는 카페 분들과 키보드에 열정적인 유튜버분들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하곤 한다. 그래서 8월에는 키보드 모임을 진행하고 글로만 접했던 키보드를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다양한 배열의 키보드를 가졌던 '나'였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키보드에서 느껴지는 리니어함과 정숙성... 그리고 조금은 사치처럼 느껴지는 고급화에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과거에도 CNC로 가공된 금속 하우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키보드 내부를 절연체로 여러 가지 넣어봤던 시절과 다르게 일반화되고 체계화돼서 개인의 취향이 세분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GMK계열(구:체리이색사출)이 천대받는 시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고급 키캡으로 자리 잡은 부분에서 유행이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경쟁사들도 많아지고, 저렴한 키캡들도 자기만의 특징이 생겼다고 느껴진다. 이제는 원한다면 돈을 많이 쓸 수도 있고, 조금만 쓰고도 키보드 취미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수집한 키보드가 100대를 넘겼다고 알게 된 것은 신문사와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였다.
"그동안 모아 온 키보드가 몇 대가 되시죠?"라는 말에서 세어보지 못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날 밤, 갖고 있던 키보드를 손으로 세면서 이미 100개를 이미 넘겼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미 수집병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에는 두 개의 창고가 있다. 하나는 내가 자주 열어보는 키보드를 쌓아두는 공간, 다른 하나는 구한 키보드를 보관하는 공간이다.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낡고 오래된 집이지만, 이러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부분이다. 분명 이사를 자주 가거나 누군가와 일찍 결혼이라도 했다면이것들을 서둘러 처분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100을 채웠던 공간과 비슷한 공간이 또 생기면서 200에 가깝겠구나 추정만 해본다. 그래서 하나의 키보드를 더 구입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자주 만지지 못하는 키보드도 그만큼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요즘은 타자기를 수집하는 분들과 빈티지 오디오를 모으는 분들의 글을 자주 읽는다.
원하는 제품을 찾기 위해서 고물상처럼 물건을 찾아다니는 내용부터, 부탁하고 의뢰해서 수리를 하다가 직접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왠지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분야에 계신 분들은 수년만 넘어도 엄청난 대가가 돼버린다고 느끼면서도, 반대로 자신은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처럼 느껴진다. 알고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빈티지 키보드 조금, 내가 좋아하는 조립 구성 조금, 내가 가진 키보드에 대해서 조금... 이 외에는 아는 게 전혀 없는 기분이 든다. 이마저도 나보다 경력이 긴 컨테이너급 수집가들에게 언제나 밀린다. 이제 와서 필코나 해피해킹, 리얼포스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내가 취미를 시작했을 당시에 자세히 알려주던 그들은 지금도 키보드를 만지고 있을까? 내가 활동한다고 알려지면 예전처럼 멋지게 무언가를 알려줄까? 그런 생각으로 이곳저곳에 키보드 사진들을 올려본다.
오랜 고민 끝에 브런치에 드디어 소속을 결정했다. 자칭이라는 부분을 빼고 띄어쓰기도 안 돼서 그냥 "키보드수집가"라고 넣어봤다. 200대 수준에서 수집가라니... 1000개급 이상을 갖고 계신 분들이 보면 비웃을 일이다. 그래도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몇 가지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지금도 헤비급으로 모으는 분들에게 "ㅇㅇㅇㅇㅇ 키보드 판매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연락이 온다. 이 분은 어디서 내 키보드를 본 것일까? 과거에 나를 알았던 분들은 내가 키보드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서 연락을 주지 않는 걸까? 괜한 외로움과 조금은 허전한 마음이 답변을 채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