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엇을, 어떻게 써야하나?
챕터 1. 무엇을, 어떻게 써야하나?
극대본을 쓰고 싶어 하는 예비극작가들이 처음 마주하게 되는 질문은 ‘무엇을 써야 하나?’와 ‘어떻게 써야 하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첫 번째 질문은 ‘이야기 선택의 기준’을 알고 싶은 것이고 두 번째 질문은 ‘극대본 집필의 방법(노하우)’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질문은 작가로 사는 한 평생 질문하고 씨름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예비극작가들이 이 질문을 ‘완전히 해결한 후에’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문제에 좀 더 쉽게 접근할 방법은 없을까요?
먼저 ‘무엇을 써야 하나?’라는 질문은 ‘무슨 사건을 써야 하나?’로 바꾸어 생각해 봅니다. 60~120분 정도에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TV 단막극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이하 ‘극대본’으로 통칭함)를 쓰기 위해서는 극의 결정적 중심 사건을 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은 이야기의 가장 큰 기둥을 세우는 작업인데요, 각본 작업은 이 ‘결정적 중심 사건 정하기’를 끝낸 후 극의 시작과 중간의 모든 이야기가 그 사건을 향해서 달려가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중심 사건이 주인공 인생의 극적인 전환점이 될 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은 주인공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거나, 주인공의 운명을 바꿔놓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또, 주인공의 인생을 그 사건의 전과 후로 나눌만한 사건이라면 더더욱 좋습니다.
또, 결정적 중심 사건을 전후로 주인공이 겪는 상황 변화의 폭은 클수록 좋습니다. 주인공이 중심 사건을 통해 지구를 구했다거나(히어로) 나라를 구했다거나(역사) 범인을 잡았다거나(범죄) 사랑을 이루었다거나(로맨스) 외계인을 만났다거나(SF) 악마가 되어버렸다거나(공포) 챔피언이 되었다거나(액션) 원수를 찾아 복수했다거나(복수극) 가족과 화해했다(드라마) 같이 사건 전후의 변화가 큰 사건을 선택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더불어 사건 전후 주인공의 심적 변화의 폭도 클수록 좋습니다. 이 말은 작품이 끝난 후 주인공이 놀랄만큼 성장했다거나, 이전엔 몰랐던 아주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다거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거나 하는 내적/심적 변화가 동반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질문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정답이 있습니다. 2400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책 <시학>에서 말한 ‘시작과 중간과 끝의 3막 구조’가 바로 그것인데요, 이 구조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기서결’이라고 우리가 배웠던 바로 그 3막 구조입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어떤 사건 하나가 시작되고 증폭되다가 폭발해서 결말에 이르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에 여러 사건을 나열하지 말고 ‘이야기 하나에 하나의 사건’이 처음과 중간과 끝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처음과 중간과 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극적인 중심 사건이 없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엄마가 해주신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학교에 갔다가 점심에 보온통에 든 따듯한 도시락을 까먹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도 엄청 맛나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참 행복한 하루였다.’ 같은 일기 형식이나 ‘태리는 이랬고 고은이는 저랬고 솜이는 안 그랬는데 나는 별생각 없었다.’ 같은 에피소드 형식의 글은 극적인 구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시작과 중간과 끝은 있는데 중심 사건이 없거나 사건이 있더라도 별다른 진전 없이 나열만 하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누군가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다’, ‘극적이다’라고 느낄 때는 우리도 모르게 학습되어있는 이야기의 극적 3막 구조의 존재를 감지하고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결말을 기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이 ‘극적인 3막 구조’에 적합한 이야기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이 ‘극적인 3막 구조’로 정리되지 않는다면 극대본으로 쓸 만한 얘기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예비극작가 여러분이 ‘극적인 3막 구조에 어울리는 결정적 중심 사건’을 정할 수 있다면 이제 여러분은 각본 작업을 시작할 준비가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선택할 때 꼭 알아야할 금기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로, 자신이 쓰려는 작품이 다른 작품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흉내내는 작품이라면 쓰지 않기를 권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원작의 대본을 그대로 받아써 보는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됩니다. 두번째로 다른 영화와 드라마에서 여러번 본 적이 있는 반복적인 사건은 쓰지 않기로 합니다.(단 유사한 사건이라도 새로운 관점과 해석이 있다면 써도 좋습니다.) 세번째로 여러분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결말이 뻔히 보이는 이야기이거나 다른 작가가 이미 써버려서 신선함이 소진되어버린 소재의 이야기라면 마찬가지로 제외하도록 합니다. 사람들은 동어 반복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완전히 새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내가 지금 쓰고 싶은 이야기는 극적인 3막 구조를 가지고 있고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롭고 매력적인 이야기이며 극적이고 결정적인 중심 사건을 가진 이야기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제 극대본을 쓸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각본 작업을 한번 시작해볼까요?
각본 실습 1) 아래 질문에 소리를 내어 정확한 단어들로 답해봅시다.
1. 내가 지금 쓰려는 이야기의 결정적 중심 사건은 무엇인가?
2. 내가 지금 쓰려는 이야기는 극적인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지고 있는가?
3. 그렇다면 그 시작과 중간과 끝은 무엇인가?
4. 내가 지금 쓰려는 이야기는 새로운 소재이거나 새로운 해석이거나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