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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Apr 10. 2021

각본 실습, 내 인생의 첫작품 쓰기

1. 들어가며

"머릿말"


드라마 PD라는 직업을 가진 덕분에 제게는 20년 남짓 실력 있는 드라마 작가들과 함께 각본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진지하고 성실했으며 고된 라이브 방송 환경 속에서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습니다. 작가들은 드라마 한편이 끝나면 이 세상을 떠날 사람들처럼 식음과 수면을 삭제해가며 글을 썼기 때문에 제 눈에는 그들이 자신의 수명과 대본을 맞바꾸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에 화려하게 꽃피고 있는 멋진 드라마들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고통의 동굴 속에서 외롭게 대본과 싸워온 위대한 극작가들의 생명과도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봄 사이, 저는 여의도에 있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드라마 작가 전문반 과정의 강의를 맡았습니다. 교육원의 작가 과정은 총 4학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세 번째인 전문반 과정은 드라마를 기획하고 대본을 선택하는 연출자들을 선생으로 삼아 예비극작가들의 작품을 코칭하도록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예전에 제가 대학에서 했었던 이론 위주의 작법 강의와는 달리 매우 실제적인 웍샵 과정이었습니다. 제 반에 편성된 스물세 명의 예비극작가들은 5개월 동안 60분짜리 단막극을 두 편씩 써내야 했고 저는 작품의 아이디어부터 시놉시스, 대본 완고 작업까지 학생들의 작품 집필 전 과정을 코칭해야 했습니다. 그 5개월은 빡빡한 창작 일정으로 인해 예비극작가들에게도 저에게도 쉽지 않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우리 반 예비극작가들은 하나같이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창작했고 저 또한 마흔 편이 넘는 새로운 이야기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강의를 위해 사전 준비를 하면서 예비극작가들에게 극대본 저작의 레퍼런스가 될 만한 작법서들을 두루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시중에 출시된 유명한 작법서들은 추상적인 원칙을 기술해 놓은 번역서들이 대부분이었고 방송국의 단막극 공모나 시나리오 공모를 통해 입봉(방송 데뷔) 해야 하는 우리나라 드라마 예비극작가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각본의 노하우를 담은 책은 한 권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의 첫 작품을 쓰고 싶은 예비극작가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이 될만한 각본 실습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20년 넘게 수많은 드라마 작가들의 곁에서 친구가 되어 경청하고, 토론자가 되어 반박하고, 파트너가 되어 아이디어를 보태고, 가끔은 악랄한 반대자가 되어 대본의 길을 막아서기도 했던 연출자로서의 경험과 이번 강의의 기록을 토대로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누구든지 제 가이드를 따라 쓰기만 하면 60분~120분 분량의 극대본 한 편을 완성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실질적인 예시와 집필의 노하우를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저는 추상적인 원칙을 나열하기보다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전술들을 상세히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책이 극대본 쓰기를 시작한 예비극작가들과 학생들, 또 극대본 집필에 도전해보고 싶은 일반인 누구에게나 요긴한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 저는 제 수업에 참여했던 한 학생의 작품 <착한 악마>를 원작으로 삼아 각본  실습을 해나갈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원작 사용을 허락해준 임정한 작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했었던 제 코칭의 내용에 따라 <착한 악마>를 새롭게 집필하면서 극대본 완성의 전 과정을 예시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또한, 저는 각본의 각 단계(키워드-로그라인-액션 아이디어-시놉시스-씬시놉시스/트리트먼트-대본 초고-대본 완성고)마다 예비극작가들이 궁금해 하는 집필 방법(노하우)을 최대한 상세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의 안내에 따라 차분하게 자신의 작품을 집필하신다면 자기도 모르게 인생 첫 작품에 ‘끝’자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을 <각본 실습 혹은 위대한 데뷔 : 내 인생의 첫 작품 쓰기>로 정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매력적인 데뷔작을 세상에 발표하고 언젠가 세계적인 극작가가 되실 예비극작가 여러분들의 첫 집필 여행을 안내하는 유능한 가이드가 되면 좋겠습니다. 


 2021년 3월 

서교동 작업실에서 김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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