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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Aug 31. 2021

내 집에서 나보고 나가라는 불청객

"제가 왜요...?"

최근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늦은 밤 우리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별안간 나보고 "이 동네에 오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아주머니의 작은 시츄가 시종일관 짖어대는 탓에, 저 말을 알아듣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런데 아무튼 듣고 보니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 앞으로 이곳에 오지 말라니. '띠용!'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나에게 그 아주머니는 "요즘 분당이 왜 이렇게 됐나 몰라!" 따위의 말까지 덧붙였다. 


그녀는 내가 타지에서 온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자초지종을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이렇다.


요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근처에 살고 계신 부모님 댁에 가족끼리 모이는 일이 많다. 사실 동생과 나는 각자 독립한 지 오래다. 그러나 서로의 집이 부모님 댁에서 10분 내외밖에 되지 않는, 그야말로 여전한 한 마을 주민이다. 그래서 각자 재택근무가 있을 때에는 부모님 댁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다가 저녁까지 먹고 다시 귀가하곤 한다. 


우리 집은 내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줄곧 강아지들을 키웠다. 그리고 여전히 개를 여럿 키우고 있다. 이 귀여운 녀석들과 같이한 세월만 벌써 십수 년이다. 당연히 그간 떠나간 친구들도 많고 말이다. 아무튼 요즘은 강아지들의 산책 역시 쉽지가 않다. 특히 대형견의 견주 입장에서는 더욱 신경 쓰이는 일이 많다. 아무리 우리 개가 순하기로 자부한다고 한들, 어떤 분들에게는 분명 공포일 수 있으니 가족들 모두 웬만하면 산책 때마다 꽤 긴장을 하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시국에는 웬만하면 동네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애견 놀이터라던지, 동네 공원도 자주 다니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돌아봤자 동네 한 바퀴다. 그것도 매우 늦은 심야시간대 혹은 이른 새벽녘뿐이다. 주말같이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그냥 마당에서 열심히 놀아주고 있다. 


이날도 밤이 깊어서야 부지런히 문 밖을 나섰다. 그리고 짧은 산책을 마친 뒤 우리 집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을까. 멀찌감치서 통화를 하고 있는 그 아주머니와 조우했다. 나와 우리 개를 보고 왈왈 짖어대는 그녀의 반려견 때문인지 그녀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 우리 개는 짧은 목줄로 내 옆에 있었는데, 끈도 하지 않은 그녀의 시츄가 끊임없이 짖어대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정말 오랜만에 본 용기 있는 시츄였다.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우리 개는 누군가를 함부로 물거나 짖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저 이렇게 태어난 우리의 덩치를 탓하며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저만치 옆으로 피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데 우리를 계속 쫓아오는 시츄를 가만 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이내 이쪽으로 뛰어왔다. 그러더니 시츄를 들어 올리며 다짜고짜 내게 쏘아붙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큰 개를 데리고 이 시간에 그렇게 돌아다니면 어떡해요!"

"...네?"

"앞으로 이 동네 오지 마세요! 어휴 정말 요즘 분당에 이상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그녀가 쏟아낸 말들을 듣고는 퍽 황당했다. '꿈인가?'라는 생각에 참 뭐라고 대꾸도 못할 지경이었다. 일생을 여기에서 살아온 나는 타지인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이곳을 침투한 '이상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녀는 이윽고 그 시츄를 근처에 주차해두었던 자신의 차에 태워버리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며칠을 동네 바깥에서 그녀와 그녀의 차가 있나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후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우리 동네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지인들이 꽤 포진해있다. 마을 내에 몇 세대 되지도 않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라 그렇다. 주변에 이따금 물어보기도 해봤지만 누구도 그녀에 대해 알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나는 '타지인에게 타지인 취급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녀가 본래 이 동네 사람이었는지, 혹은 이곳에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이 있어서 잠깐 방문한 인근 동네의 사람인지, 혹은 기타 어떤 연고가 존재하는 사람이었는지, 나로서는 뭐 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그녀가 덧붙인 말은 대관절 무엇이었을까. 

정말 우리 동네가 변하기라도 한 걸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녀가 말하는 것이 비단 외관만 두고 한 말은 아닌 것 같고. 

때아닌 궁금증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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