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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16. 2020

점점 부모님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첫 심부름의 기억



처음 겪는 모든 일련의 사태들에 실수 투성이던 나의 20대, 그리고 첫 직장. 그 사이에서 많은 청춘들이 겪어봤을 법한 경험이 나에게도 하나 있다.


입사 1개월 차. 집에 중요한 서류를 두고 나와버린 나는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황급히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복작거리는 로비 한복판에서 수많은 인파를 뚫고 나타난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하다.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행여 구겨질까 가슴에 서류를 꼭 품고 있으시던…. 자리를 오래 비우면 눈치가 보일 것 같아 미처 점심은 드셨는지 여쭤보지도 못하고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당시 사무실 한 면은 통창이었고 엘리베이터도 유리로 되어 있어 도로변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류를 꺼내 한참 확인하고서야, 나는 고개를 들어 겨우 한숨을 돌렸다. 그러다가 창밖을 바라보는데 도로변에 아직 어머니가 계신 것이다. 


그때가 아마 가을이라 제법 쌀쌀해졌던 걸로 기억한다. 사무실에만 있던 나도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어머니는 반팔 차림이었다. 그때 택시라도 잡아드릴 걸… 지금까지도 후회하는 일이다. 분명 어머니가 먼저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바로 뒤에서 나타나 얌체같이 택시를 뺏어 타던 어떤 이의 모습은 여전히 얄미워 죽겠다. 한참 창밖을 바라보고 있은 뒤에야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예전에 첫 심부름 할 때의 기억이 나는 것이다.




'죠스바' 하나에 단돈 100원 하던 시절.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다 보니, 그때 기억나는 것들 역시 손에 꼽는다. 그런데 별것 아닌 기억 중 어마어마하게 선명히 남은 장면이 있다. 유난히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 그런 장면.


내가 언제부터 심부름을 다닐 수 있었는지 정확한 시점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심부름의 기억'은 명확히 그날이다. 


우리 집은 4층이었다. 건너편에는 슈퍼마켓을 비롯해 몇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상가라기보다는 전통시장의 느낌에 가까운 모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출동하기 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물건 이름을 말해주시면 나는 그걸 커다란 도화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 적었다. 어렸을 때는 글자를 작게 쓰지 못했다. 그래서 작은 메모지에 쓸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거대한 글자의 나열을 접고, 한번 또 접어서 주머니에 넣은 뒤 나는 집을 나섰다. 


어린아이의 심부름은 어른들보다 몇 배는 더 오래 걸리는 법이다. 이게 어머니가 말씀하신 떡이 맞는 건지, 내 앞에 보이는 게 양파인지, 아니면 대파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다. 그나마 가장 강력한 무기인 '질문공세'가 있다. 덕분에 여러 조력자들을 만날 수 있는 편인데 그때 나의 심부름도 늘 그러했다. 내가 맞게 고른 건지 도화지를 가리키며 아저씨들에게 재차 여쭤보기 일쑤, 계산하기 어려운 것은 웬만하면 카운터 아주머니들께 부탁했다. 그렇게 심부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막 배우기 시작한 달성의 뿌듯함이랄까.


여기서부터가 내가 명확히 기억하는 장면의 시작이다. 

집으로 총총 걸어오는데 내 시야의 위아래 모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파트 1층 현관 앞에 나와있던 아버지, 4층 베란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던 어머니의 모습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 장면이 됐다. 


그때 나는 '죠스바'를 정말 좋아했었는데, 100원을 들고 가서 사 먹는 그 아이스크림의 맛은 정말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그런 기쁨과는 뭔가 조금 다른, 행복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때부터 서서히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 


4층은 나에게 꽤 높고 먼 곳이었지만 어머니의 함박웃음은 또렷하게 보였다. 

아버지는 살짝 미소를 보이셨지만 그 너머에 보였던 큰 웃음을 나는 안다. 




그런 부모님이 요즘 들어 점점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픈 곳이 늘어나는 모습들 때문에 내가 하는 잔소리가 늘어나는 것 같다.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술자리를 줄이셨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굳이 떨어져 있는 자식들 챙겨주시겠다고, 사람들 북적거리는 곳에서 장도 그만 보셨으면 좋겠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온갖 반찬 다 가져다 놓았으면서 왜 당신들은 끼니를 대충 때우는지 답답하다.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라는 전염병에 모두들 걱정 한가득인 요즘이다. 그러나 나는 연세가 있는 부모님 걱정이 제일 크다. 


얼마 전에는 최근 늘어난 업무 때문에 무리를 했던 탓이었을까. 몸이 아팠던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아침 댓바람부터 죽을 싸오셨다. 고맙기도 했지만, 출근길 교통체증에 굳이 여기까지 멀리 오신 길목이 더 신경 쓰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가버리셨는데 나는 베란다에서 어머니가 가시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그 옛날 심부름을 떠나던 나는, 오직 앞에 보이는 가게들만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내가 나가고 아버지가 나를 쫒아오고 계셨는지, 어머니가 베란다에서 나를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요즘 가끔 생각하는 게 있다. 꽤 긴 시간 동안 다녀왔을 어린아이의 심부름, 다 커서 어색한 넥타이 차림으로 처음 출근길을 나섰을 때에도, 우리 부모님은 뒤에서 참 조마조마했겠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차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을 때 겨우 식탁에 앉았다. 

보온병에 담겨 뜨끈뜨끈한 죽을 퍽퍽 퍼먹으면서 다시 걱정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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