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알고리즘'을 본 적 있나요?
'사과하는 법'을 검색하신 아버지
한 번은 멍청하게도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출장 중 어디엔가 놓고 온 듯한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 것이다. 그 와중에 거래처에서는 연락이 빗발쳤고, 여러 약속들 때문에 꼭 전화가 필요한 상황. 요즘은 스마트폰 대여 서비스도 많지만 당시는 연휴였다. 어디에도 문을 열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선뜻 자신의 휴대폰을 빌려주셨다. 가지고 가서 얼른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오라는 것이다.
당신은 연락이 올 곳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루를 아버지의 알고리즘과 함께했다.
클라우드에서 비상연락망만 받아 들고 급하게 저장한 뒤 하루 동안 아버지의 전화기를 사용한 것이다. 종일 숨 가쁘게 통화도 마치고, 여러 약속들도 무리 없이 소화했다. 그러다 이제 막 귀가하는 지하철에 올라 한숨을 돌리던 찰나였다.
요즘 블루투스가 대세인데 여전히 아버지는 줄로 된 이어폰을 선호하신다. 검은색 껍질이 약간 벗겨진, 낡은 이어폰을 줄줄 감아 함께 빌려주신 게 기억나 가방을 뒤적였다. 아버지는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실 때는 주로 유튜브와 포털을 활용하셨다. 유료 음원 서비스는 사용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다음 카페 앱이 있는 걸 보니 요즘은 산악회 활동도 모바일로 소식을 들으시나 보다.
여러 앱들을 지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선뜻 빌려주시기는 하셨으나, 어쨌든 아버지의 폰이니까 사용을 마구 할 순 없었다. 그나마 유튜브와 포털 앱이 사용할 수 있는 전부다. 돌아오는 지루한 길에서 나는 익숙하게 앱을 열었다. 첫 페이지에는 아버지가 자주 들으시는 트롯 따위의 음악이 가득하리라 예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남자 지갑 추천', '젊은 남자 코디' 등의 관련 영상이 주를 이루는 걸 봤다. 최근 본 영상에는 심리학 관련된 내용도 있고, 역시나 조금은 트롯 가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 우리 아버지가 요즘 패션에 관심 있나? 하며 검색을 하기 위해 돋보기를 눌렀다.
재빨리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이나 검색했으면 좋았을 것을….
인간의 눈은 참 좋아서 그 순간 나타난 최근 검색어들이 한눈에 찰칵 머리에 찍혀버리고 말았다.
30대 입사 선물, 아들 선물, 회사 꼰대 등의 키워드를 제치고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사과하는 법', '사과 잘하는 법'이었다. 얼마 전 나는 잘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당시에도 내 지인의 대다수가 반대하던 곳으로 이직을 한 것이다. 다들 만류했던 이유는 여럿 있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아마 이전의 직장은 '남들이 다 아는 회사', 지금은 '남들이 잘 모르는 회사'였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추측한다.
치기 어린 도전정신으로 문득 저지른 나의 행동에, 아버지는 퍽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한 동안 갖가지 이유를 들어 나를 설득하려고 하셨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한 동안 어색한 기류가 부자간에 흐를 무렵 시의적절하게도 내 생일이 다가왔다. 아마 그래서 '선물'과 관련된 키워드를 검색하셨나 보다. 그러다 보니 알고리즘이 '요즘 젊은 남자'들의 코드까지 아버지를 이끌었을 것이다(이렇게 열심히 검색하셨지만 결국 아버지의 선물은 넥타이와 셔츠였다).
그리고 그 선물과 함께 동봉된 아버지의 길지 않은 편지는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다. 이제 보니 그 짧은 몇 문장이 참 귀엽게 느껴졌다. 이 편지는 검색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진심을 녹인 건 아버지 당신이지만...
손이 불편하신 아버지 글씨를 보고 남들은 심한 악필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삐뚤삐뚤 그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려고 꽤 오랜 시간 앉아있었을 모습을 안다. 나 역시 아버지를 닮아 그 문장 하나하나를 옮겨 적거나 누구에게 소개하기는 퍽 어렵고 남사스럽게 느껴진다.
사실은 선물을 받은 뒤, 감사 인사 역시 결국 우리 부자 스타일로 대충 넘겼다.
다만, 거기에 꾹꾹 눌러쓴 아버지의 무뚝뚝한 진심이 한 동안 나를 참 편하게 해 주었다.
아버지의 알고리즘에는 '트롯'만 가득했던게 아니었다는 사실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