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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Sep 19. 2021

명절, 모질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명절은 참 힘들다.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비슷한 이유다. 이 시기 많은 이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것은 보통 이야기하는 그것들과 사뭇- 결이 다르다 말하고 싶다. 


그것은 여전히 모질지 못한 나의 마음 때문에 그렇다. 이 문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고 내 이름 앞에 달린 직급이 높아질수록 더 고단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중년쯤 되면 이런 문제들에 더뎌지겠지~'하고 마냥 편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되려 반대였다. 갈수록 더 하다.


지금의 회사에서 내가 챙겨야 하는 식구들의 수는 정말 많이 늘었다. 고작 3명 남짓의 팀원을 책임지던 몇 년 전이 아련하다. 그러다 재작년에는 1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을 이끄는 파트리더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수십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나의 뒤에 서 있다. 




바야흐로 명절이다. 


이제 명절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오거나, 찾아온다. 내일모레가 추석인데 이미 지난주부터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과 집으로 왔다. 당장 명절 당일에는 후배들도 인사를 오겠다고 한다. 최근 일이 너무 늘어서 시간이 없다 했더니, 몇 후배들은 주말 아침 일찍 몇 시간이 되는 거리를 찾아와 커피 한잔만 하고 돌아갔다. 협력업체의 한 이사님은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늦은 밤 우리 집 앞을 찾아오셨다. 밤 11시에 도착한 그분은 "덕분에 우리 가족, 정말 오랜만에 모여서 웃으면서 명절 보내게 됐다."면서 거듭 감사인사를 건네시곤 다시 먼길을 달려 집으로 향하셨다. 얼마 전 이분과 큰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밤을 새웠다. 이때 꽤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아마 그 이후로 퍽 내가 가깝게 느껴지시는 모양이다. 이따금 밤새 여러 작업을 마치고 술 한잔을 할 때면, 뭇 많은 가장들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이야기들. 그것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문득 명절 어귀에서 많은 생각들이 겹친다. 


떠밀리듯 여기까지 올라온 것 같다. 그래도 대충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참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한다. 식구들에게도 좋은 리더가 되고 싶어 노력했다. 그리고 여전히 모자란 부분을 채우려 고군분투 중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들을 식구들에게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나는 퍽 애써온 것 같다. 차분하게 여러 문제들을 처리하고 해결하면서. 꾸준하게. 직급이 올라가도 늘 나는 현장을 누볐다. 새벽 5시까지 현업 작업자 분들과 땀 흘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그들과 아침 공기를 마시며 국밥과 소주로 피곤함을 망각하는 일. 그것은 사실 나에겐 기쁨이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마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 같다. 식구들의 속사정은 당사자들이 직접 꽤 털어놓는 편이었다.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이따금 동료들은 내게 꽤 많은 말을 들려주었다. 여기에 다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층층구만층(層層九萬層) 모든 이들에게는 사연이 참 많았다. 심지어 나의 식구들 중에는 불치병에 걸린 팀원도 있고, 사고로 장애판정을 받았지만 가족들이 있어 조직 내에는 꾹꾹 숨기고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가장까지 한 분 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퍽 괴롭다. 그들의 이야기 자체가 괴로운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 어쭙잖게 피어오르는 나의 불필요한 감정들로 인해 힘들다. 그들은 내가 더 가깝게 느껴지고 편해져서 털어놓은 것일 게다.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많고, 그럴수록 유대감 역시 깊어진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저씨들 역시, 보통 으레 그러하듯, 그 연세에 할 수 있는 그저 가벼운 대화 소재를 던진 걸 수도 있다. 반주를 하다 늘어놓을 수 있는 가장들의 그런 것들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내 가당치도 않은 동정심이나 연민 따위는 퍽 나를 다양한 감정 속에 휘말리게 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어렸을 때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많은 관계를 맺으려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 과거의 내 성격이, 현재의 나는 물론 추후 주변까지 고단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지금의 공감'이 당장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순 있어도, 미래의 그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되려 냉철하게 듣고난 뒤 그저 현재에서 그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내가 정신 차리고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여 나 역시 사사로운 내 근심이나 걱정 따위들을 털어놓지도 않는다. 이런 모습이 분명 누군가에게 또 다른 피로와 근심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명절.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유대감에서 비롯되는 수많은 감정들에 혼란을 겪는다. 고마움과 동시에, 냉철하지 못한 스스로를 부여잡느라 살짝 힘이 든다. 


차가워지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에 이따금씩 스스로 조금 지쳐간다. 

온전히 따뜻함만 보여주기엔 턱없이 모자란 현재의 내가 아프기도 한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찰나의 냉철함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순간이 반드시 오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꼭 모든 이들에게 이런 자책 없이 온전히 귀 기울여주고 싶다. 


해가 갈수록 무거워지는 것이 비단 몸무게뿐만은 아니다.





조금 힘든 감정도 들지만은, 

그래도 여전히 '층층구만층' 여러분들 덕분에 힘이 나고 행복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바깥에서는 표현하지 못해도 덕분에 힘이 나긴 납니다.


별안간 희한한 생각들이 겹치는,

바야흐로 명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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