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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23. 2020

힙합은 좋아하는데 클럽은 싫다구요.

아이러니, 말도 안 돼!

나는 힙합을 참 좋아한다.

사실 음악이라면 안 가리고 듣는 편이지만, 유독 플레이리스트에는 많은 힙합들이 있다. 그런데 난 클럽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힙합을 혼자 들을 때도 많고, 노래방에서 부르거나 공연을 보는 것도 즐긴다. 하지만 클럽에서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소리는 여간 내 취향이 아니다. '공연의 시끄러움'과 '클럽의 시끄러움'은 내게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말 그대로 그냥 내 취향일 뿐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클럽을 가본 적이 없다.

심지어 클럽이 없던 2000년대 초중반, 직장을 다니던 때에도 연로하신(?) 선배님들이 다니던 나이트나 단란주점 조차 근처를 가지 못했다. 막내였던 주제에 참 용하게 잘 도망쳐 다녔다.


여기서 더 공교롭게도(...) 나는 취미가 춤이다.

당연스럽게도 다른 음악보다 힙합 음악에 안무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추는 것 역시 좋아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 두어 번쯤 여행지에서 춘 짧은 안무 영상을 SNS에 올려보기도 했다. 같이 갔던 친구들과 워낙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탓에, 순간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때 꽤 많은 관심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내 SNS를 팔로우하고 있던 젊은 동료들이 수많은 질문들을 해댔다. 그래도 그 정도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매우 경직되어 있던 우리 조직에서 나는 '춤추는 애'라는 이미지가 하나 각인되었다.


물론 모두가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었으나, 일부에선 '내가 클럽 다니는 애' 내지는 '클럽을 좋아하는 애'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추측도 많았다. '힙합 음악에 춤추는 거 보니 금요일마다 클럽도 많이 다니겠다'고 얘기한 동기도 있었으니 말 다 한 것이다. 내가 올린 것은 강원도 산자락에서 찍은 여행 영상이었는데, 거기에 힙합과 빡센 춤이 녹아있다고 별소릴 다 듣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포털사이트의 연관검색어 같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춤이 다양한 키워드와 접목되더니, 그것들까지 마치 내 것 인양되어갔다.


고등학교 때 '투팍'이나 '에미넴', '드렁큰타이거'의 노래를 듣고 있을 때면 할머니가 이게 대체 무슨 노래냐며 황당해하시곤 했다. 어렸을 적엔 '그래, 힙합은 어른들은 이해 못하는 문화야!'라고 생각했더니만, 그게 아니었다. 다 커서 보니 또래들도 우리 할머니의 반응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내 나이가 50, 60이 되어서도 힙합을 즐긴다면 주변 반응은 어떨까 종종 생각해본다. 아찔하다.


구태여 "나는 클럽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뭐 어쩌겠나.

힙합을 좋아하는 자의 숙명이겠거니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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