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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Feb 24. 2022

'가벼운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좋더라

그래서 저는 무거운 사람이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던지는 아주 사소한 약속들이 있다. 이를테면, "밥 한번 먹자"가 그렇다. 그 외에도 파생된 것들 역시 많다. "그동안 너무 애썼다. 조만간 술 한잔 살게."라거나 "다음에는 저희가 대접할게요.", "꼭 갚을게요." 등 여러 가지 '가벼운 거짓말'들이 삶 속에 난무한다.


어렸을 때는 저런 말을 하나하나 믿는 '순진했던 나'였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저런 멘트들을 불신하고 있다. 그렇다고,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의 됨됨이나 성격을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그저 하나의 인사말처럼 되어버린 저 '사소한 거짓말'에 지친 방어기제다. 


그러다 간혹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따금, 불신 가득해진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근래의 나는 "조만간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말을 듣고서, 대수롭지 않게 "응, 그러던가~" 따위로 대충 답해버린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덜컥 메시지와 전화 따위로 구체적인 약속까지 잡아버리는 인물들이 있다. 


'뭐지, 이거!?' 생각을 하다가 신기해하며 그들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교류를 지속하다 보면, 이들은 퍽 굉장한 정화작용을 보여준다. 남들이 숱하게 던져놓은 '가벼운 거짓말'을 희석시켜주는 것이다. 


나는 무거운 사람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수록 '가벼운 약속들을 잘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체감된다. 소소한 것들을 무겁게 해내는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참 놀랍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한없이 가벼워지는 때가 오는 것일까?'


이유가 있다. 이상하게도 연령이 높아질수록, 저런 가벼운 거짓말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서다. 소위 말하는 '인사치레'라고 하면 맞을까. 혹시 이 '가벼운 거짓말'은 그들에게는 그저 '인사'이자 '예의'일까? 그런데 그 매너에 왜 거짓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지? 


비록 '매너와도 같은 인사치레' 따위일지라도, 난 그것이 '사람의 무게감'을 보여준다 생각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퉁명스런 나의 대답에서 조차, 신의를 증명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신기해서 교류를 이어가다 보면 재밌는 경험을 참 많이 한다. 뱉을 때는 여느 누구와 다를 바 없이 가벼워 보였던 말의 무게가, 그들의 후차적 행위들로 인해 무거워 보인다는 점이 그렇다. '반복되고 계속된 행위와 노력'이 그들의 말에 점차 무게를 싣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들이 하나의 필터인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저런 '가벼운 약속'들을 마구 맞으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가벼우면 흘러 내려보내면 그만이다. 질감이 남다른 무거운 사람들이야 우뚝 남아있겠지. 필터에 고스란히 덩어리채 남아서.


아무래도 나는 무거운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도 최대한 '가벼운 거짓말'을 해보지 않으려고 한다. 얇은 필터의 틈 사이로 새어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무게감 있게 걸러지는 그런 관계로…. 나 역시 그렇게 누군가에게 남겨지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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