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왕고래 Feb 03. 2022

명절, 스타벅스에 들어간 청각장애인 어머니

정말이지 스타벅스는 안 망할 것 같다.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북새통이니 말이다. 명절 연휴에 들른 우리 동네의 한 점포에서도 웨이팅은 엄청났다. 음료 몇 잔 주문했는데 족히 20분은 걸렸다. 오랜 기다림 뒤 나의 대기번호가 호출되고, 가족들과 나눠마실 음료와 작은 케이크가 나왔다. 얼른 양손 가득히 바깥으로 나서려는 순간, 한 광경이 눈에 들어와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 어떤 어머니의 고군분투를 보았기 때문이다.


주문 카운터 앞에 서서, 손짓 외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녀. 마스크 사이로 "아~", "어~", "으~"와 같은 소리만 뒤엉켜 들리는 걸 보고 바로 알아챘다. 저분은 청각장애인이었다. 남일 같지 않아 결국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녀의 첫 시도는, 스마트폰을 들어 직원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기프티콘인 것 같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검지 손가락 하나를 '척~!' 치켜들었다. 직원이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맞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뒤쪽에 보이는 커다란 '시즌 음료' 그림을 가리켰다. 직원이 다시 대답한다. "뉴 이어 시트러스 티 말씀이신가요?"라 묻는 그 말을, 아마 그녀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어림잡아 '맞겠거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 분명했다.


이윽고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더 들었다. 이번에는 '검지'뿐만이 아니었다. '중지'까지 총 두 손가락을 펼쳤다. 직원도 그녀를 따라 손가락을 두 개 들었다. "저걸로 두 개 추가하는 거 맞으시죠?"라며 따스히 말하는 직원에게, 괜히 내가 고마웠다.


이 주문을 하기 위해, 그녀는 분명 줄을 서기 전부터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기프티콘을 준비했을 것이고, 스마트폰 메모장에 혹시 모를 주문 내역도 적어뒀을 것이다. 대화가 어려우면 글자로 보여줘야 하니까.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카운터까지 다다랐겠지…. 그 노력 덕분인지, 주문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내 도움도 필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안심하며 바깥으로 나서려는데,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는 그녀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역시 어느 상황에서든 변수는 생기나 보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녀가 내민 것이,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이었기 때문이다. 주문한 것은 총 세 잔. 기프티콘으로 구매한 아메리카노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 잔을 사기 위해서는 결제가 필요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몇 개가 보였다. 점원이 말했다.


"손님, 너무 죄송하지만 저희 점포는 현금이 없는 매장입니다."


스타벅스 일부 점포에서는 현금결제가 안 된다는 걸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나보다 훨씬 더 당황하고 있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이 보인다. 직원들도 그녀가 농아인이라는 사실을 대강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말' 말고는 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손짓밖에 없었다. 스마트폰 메모장을 활용하자니, 뒤켠에 있는 전화기를 가져와야 했을 것이고, 손에 착용하고 있는 위생장갑까지 벗어야 했을 테니, 그 짧은 순간-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는 현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엑스' 표시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들릴지 모를 목소리 고지도 함께해서 말이다. 별안간 현금을 받아주지 않는 이 사태에, 그녀의 표정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곧바로 그녀는 만 원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혹시나 '내가 돈 계산을 잘못하지는 않았나'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점원들은 다시 같은 방법으로 '엑스' 모양을 취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뒤로 수십 명의 인파가 보인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야 대강 이 상황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뒤쪽은 달랐다. 워낙 길었던 대기줄 탓에, 먼발치의 사람들은 조금씩 매서운 눈길을 보내왔다. 그녀의 초조함도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켜보던 나는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나서려는데, 두 손 가득한 음료와 케이크가 장애물이 됐다. 이제야 깨달았다. 수화는 양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언어였다. 그걸 여태 몰랐던 거다. 연휴의 스타벅스는 인산인해다. 자리 역시 만석이어서 두 손의 이것들을 잠시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매우 따뜻하게 그녀를 보호해주었다. 스타벅스의 직원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 명이 종이와 펜을 가져와 글자를 적는 동안, 다른 직원들은 카운터 밖으로 나와서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바로 뒤쪽에 있던 대기라인의 사람들도 "괜찮아요~!"라며 두 손을 좌우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저 멀리 뒤편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연이 미처 닿지 못했다.

여전히 무섭도록 따가운 시선들.

수많은 가시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온갖 날카로운 가시를 덤덤하게 받아내는 중이었다.




드디어 그 어머니의 주문은 끝이 났다.


그리고는 픽업 카운터 앞에 있던 내쪽으로 다가왔다. 대기번호 호출 소리를 듣기는 어려울 테니, 안내판에 나타나는 숫자들을 보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음료들이 나왔다. 점원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이건 제가 끼워드릴게요~"라 말하며 세잔에 모두 슬리브를 꽂아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직원이 애써 끼워준 슬리브를 다시 빼내더니, 이윽고 조각조각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점원의 시선과 사람들의 눈빛이 그녀를 향했다. 뒤에 음료를 가져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던 터다. 그녀는 아랑곳 않고 이내 큰 잔용 새 슬리브를 꺼냈다. 그리고는 주문한 작은 컵에 장착시킨 뒤, 커다랗게 생긴 빈틈으로 조각낸 종이들을 사이사이 끼워 넣었다. 아무래도 슬리브를 조금 더 두껍게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비로소 그녀는 스타벅스를 떠났다.


저만치 길 건너에 작은 아이들이 보였다. 간밤에 내린 눈을 한가득 두 손에 담아, 하늘로 흩뿌리고 있었다. 그 어머니는 난간에 음료를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곧 두 아이가 성큼 다가왔다. 경사진 곳에 털썩 주저앉아 눈높이를 맞추는 그녀가 보였다. 곧 아이들의 손을 가져와 호-호- 입김을 불었다.


이윽고 겨우 얻어낸 음료를 하나둘 꺼냈다. 그리곤 뚜껑 위 구멍으로 다시 호-호- 불어주며, 그들에게 쥐어주었다. 겨울이라 굳게 닫힌 빌딩의 이중문 너머로, 소리 없는 그 장면만이 눈에 들어왔다. 설사 문 바깥으로 나갔다 한들 그들에게서 '소리'를 들을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북새통으로 시끌벅적한 이곳 스타벅스에도, 깊은 고요함이 감싸는 듯했다.


바깥의 눈 내린 고요한 풍경이 어딘가 모르게 처량하다.

저들의 명절은 행복했을까.

이전 02화 포장마차에 '유튜버 출입금지'가 붙어있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