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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Sep 16. 2020

현충원에서 만난 소녀

남겨진 것들에 대하여



이곳에 오기 시작한건 정확히 대학교 1학년 때부터다.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 15년 전부터 나는 시간만 나면 이곳을 찾아왔다. 그 당시 대학 친구들은 북적거리는 홍대라던지, 신촌이나 강남 인근을 매일같이 다녔다. 하지만 나는 시끄러운 분위기가 영 질색인 성격이었다.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드넓은 공원…. 언덕배기를 조금 오르면 저만치 넓은 반경으로 한강이 펼쳐지는 고요한 현충원. 이곳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완벽한 아지트였다.


『'국가와 민족의 성역, 국민과 함께하는 호국추모공원' - 국립서울현충원』


현충원의 소개글에서도 느껴지듯 이곳은 경건한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넓은 땅에 수많은 호국 영웅들이 잠들어 있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들리는 것이라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뿐이다. 만나는 사람도 드물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다 보면 이따금 자원봉사를 하러 온 학생들이나 유가족 분들 말고는 인적도 찾아볼 수 없다. 15년 째 주구장창 방문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스친 그 누구도 선명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딱 한 명, 그 소녀 빼고.




그 소녀를 만난 건 군대를 다녀오고 난 직후였다. 


전역 후의 나는 입대 전과 비교하여 딱히 다를 게 없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고, 늘어나는 학자금에 대한 탄식으로 하루하루 보내던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러다보니 민간인이 된 즐거움도 잠시…. 또다시 북적거리는 곳들과 자연스레 거리가 멀어졌다. 그리고는 현충원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나와보니, 주변 모든 것이 달라져있었다. 학교 선후배도 처음 보는 사람들 투성이었고, 교내 풍경, 문화 등 많은 것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현충원은 예전 모습에서 단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주저없이 이곳을 다시 아지트로 삼았다. 필독서를 읽으러도 왔고, 과제 기획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때에도 수첩 하나 챙겨 한강변을 따라 현충원으로 왔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었다. 전공서를 번역 후 자필로 써서 내야하는, 그야말로 끔찍한 과제를 받은 날! A4용지 몇 장과 받침판, 펜을 들고 현충원 중앙에 있는 언덕배기를 올랐다. 그곳 역시 양 옆으로 많은 분들이 잠들어 있었는데, 왠일인지 그날따라 교복 차림의 소녀 한명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눈 앞의 소녀는 매우 분주해보였다. 등에는 커다란 책가방이 있었고, 어깨끈을 양손으로 질끈 잡은 채 총총거리며 뛰어가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윽고 그 소녀는 발걸음을 더 재촉하더니 대각선 앞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빠!"



소녀의 종착지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때 아마도 나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막 여름이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아직은 더위가 남아있는 9월 초의 어느날이었다. 한 눈에 봐도 교과서 가득한 듯 무거워보이는 책가방을 메고서 소녀가 뛰어 도착한 곳…. 그곳은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의 앞이었다. 어깨의 끈을 양옆으로 벗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털썩 주저앉던 소녀의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잊혀지지 않는다. 


|"아빠, 잘 있었어!? 나 완전 힘들어!!!"


그 소녀가 무어라 얘기하는지 더 듣지 못하고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다만 오르던 중에, 종종 뒤를 돌아 한강을 보는 척 하며 저만치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는 그 아이를 바라봤다. 쫑알쫑알거리는 입모양을 보고 내용이 참 궁금했지만 둘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소녀가 내게 보여준 그때의 장면은 고스란히 내 눈에 담겨 여전히 깊은 색으로 남아있다. 그때의 그 수다스러웠던 아이가, 아마도 나보다 훨씬 더 자주 다녔을 이곳 현충원…. 


이따금 현충원에 올 때 마다 떠오르는 그 소녀를, 나는 온 힘을 다해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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