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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Mar 23. 2022

청첩장을 돌리자 가해자가 되었다.



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요즘 청첩장을 돌리느라 퍽 바빠 보인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지인들은 물론 가족들마저 최소인원만 초대하기로 했다. 그래도 참석하실 분들에게는 직접 찾아뵙는 것이 예의 아니던가. 두 예비부부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열심히 약속을 잡는 중이었다. 


그런 동생이 최근 '청첩장을 건네는 일'에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나와 달리 어렸을 때부터 심성이 여렸다. 매사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기만 해왔던 아이다. 그래서인지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만 했다. 여러 상황이 퍽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며칠 전에는 전화가 한통 왔다. 가만 들어보니 동생 목소리가 다소 가라앉아있다.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어 보인다. 잠자코 기다리자, 곧바로 사연이 들려왔다.


형, 청첩장을 돌리다 보니까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

그 많지도 않은 초대손님들…. 그중에서도 기어코 동생을 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오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지난주,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들은 모두 같은 학교 동창이었다.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청첩장을 나눠줄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생은 얼마 안 가 느닷없이 날아든 화살을 대책 없이 맞게 됐다. 무리 중 한 녀석이 동생에게 불만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이유까지 명확하게 또박또박 설명해가면서. 


당사자는 10년 남짓 시험(고시)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였다. 때문에 30대 중반인 대다수의 또래들과는 처해진 상황이 달랐다. 동생 무리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채 출발선을 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 같이 만나는 것도 싫다'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점도 생각 못하냐'는 비난까지 이어지자, 동생은 퍽 섭섭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저 오랜 친구에게 축하받고 싶었던 동생에게는 무거운 생각만 덜컥 남았다. 들뜬 마음으로 전했던 소식은, 괜한 무안함과 미안함만을 뒤엉키게 했다. 결혼식으로 설레는 감정을 뒤로 숨겨가면서 동생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스스로의 행복이 친구에게는 불행함을 느끼게 했을까?' 녀석은 한 동안 깊은 걱정에 빠졌다. 




그런가 하면 작년이었나. 친구 PD하나가 결혼 소식을 알리며 찾아온 적이 있다. 두 내외는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사과를 했다. 그들의 청첩장에는 재작년부터 계획했던 결혼식 날짜가 적혀있었다. 그런데 일정이 다가올 때쯤, 회사에서 커다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심지어는 공교롭게도 결혼식 날짜와 정확히 겹쳤다. 그 후, 그는 회사 식구들에게 청첩장을 돌릴 때마다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물론 과반의 사람들은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도 몇 높으신 분들께서는 "넌 꼭 잡아도 이런 날을 잡냐"며 축하 대신 눈치를 줬다. 결혼식 전후로 잡힌 촬영 스케줄에는 선배를 배제시켰다. 그러면서도 "아, 너 때문에 진짜 일정이 피곤하다."라며 비꼬는 말이 종종 나왔다. 


"이런 상황에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청첩장을 내미는 그는 퍽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예비 신부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두 손을 모으고는 '죄송하다'는 말까지 덧붙여가며, 그들은 나에게 '축하'를 요청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기로서니 그들의 결혼식이 '사과'해야 할 일인지... 영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래도 가까운 사람들은 다 축하해 줄 테니 너무 미안해하지마."라 말하며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씁쓸했다. 같은 파트 사람들이 '이 시국에 굳이 우리 다 참석할 필요 없죠?'라며 에둘러 초대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찻잔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힐끗힐끗 내 반응을 살피는 예비부부의 모습은 꽤 안쓰러웠다. 흔쾌히 참석을 약속하자 배시시 웃는 얼굴이 짠하다. 




'사과'는 보통 배려심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된다. '죄책감'도 마찬가지다. 남을 신경 쓰는 사람일수록 더 큰 미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자들에게 굳이 힐난을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놓여진 상황이나 시기가 좋지 않았을 수는 있다. 사실 동생이 했던 말도 이해된다. 작금의 코로나 상황이나, 직장에서 너무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혹은 기타 가정적인 일 등으로 우리는 타인의 경조사를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언젠가는 무턱대고 날아오는 청첩장이 '가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무분별한 초대가 아니고서야 과한 비난까지는 불필요해 보인다. 미안함을 가득 머금은 채 조심스러운 초대의 말을 건네는 모습. 그런 그들에게 난 데 없는 따끔한 가시들은 넣어둬도 좋지 않을까. 왕창 가시를 날려줘도 시원찮을 사람들은 다른 곳에도 도처에 널려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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