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왕고래 Oct 06. 2021

포장마차에 '유튜버 출입금지'가 붙어있는 이유

'블로거'부터 '유튜버'까지



친한 친구 녀석의 어머님은 포장마차를 운영하신다. 우리 대학시절에도 방학 때마다 갔던 기억이 있으니,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분명 꽤 오래된 시간이다. 작년부터는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가장 피크 시간대였던 새벽 장사를 못하게 되어 타격이 심하진 않으실까- 멀리서 이따금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꾸준한 걸 보니, 단골이 많으신 모양이다. 아무래도 여기 포장마차 거리가 나름 유명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간혹 출장 때마다 들러보면 인파가 제법이다. 


그런 친구 부모님의 가게에 얼마 전 작은 현수막이 하나 붙었다. 


유튜버 입장 금지

그리고 아래에는 '사과문'까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저희 가게는 유튜버 입장 금지입니다.」 다른 손님들의 항의가 너무 많아서 부득이 유튜버님들의 촬영을 금지합니다. 단순 식사 이용이신 분들은 가능합니다. 개인방송 및 녹화의 경우는 불가능합니다. 광고와 홍보 요청 및 무료 시식 요청도 사양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게 첫 번째 현수막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부터 이곳의 작은 안내문은 때때로 변해왔다. 예전엔 '블로거 입장 금지'였다. 최근 들어 '유튜버'로 바뀐 것이다. 


아주머니가 손님들의 음식 사진 촬영이나, 일행들끼리의 즐거운 추억 만들기를 방해하진 않으신다. 다만, 방문 목적 자체가 보편적이지 않은 그 이외의 것일 경우에만 매우 긴장을 하게 된다고 한다. 앞선 '사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최근 개인방송(아프리카, 유튜브 등)이 보편화되면서 촬영자 역시 굉장히 늘었다. 문제는 행인이나 가게를 방문한 다른 손님들의 초상권(얼굴)은 물론, 편하게 갖는 술자리에서의 대화/모습들이 고스란히 노출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거치대나 촬영 장비가 보이면 손님들이 하나둘 경계를 시작한다. 그리곤 이내 나가버리는 경우까지 허다하다는 게 아주머니 말씀이다. 


그뿐이랴. 오래전엔 '블로거지'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던 때가 있다. 지금은 그 말이 '유튜버'들에게도 적용되어가는 듯하다. 촬영과 함께 콘텐츠를 제작해 업로드해줄 테니, 서비스를 달라는 요구까지도 비일비재하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친구와 술 한잔 하고 있을 때 방문한 한 무리는 들어오자마자 삼각대 장비를 세팅하더니, "저희가 잘 찍어드릴 테니 가장 맛있고 비주얼 좋은 음식을 내와달라"라고 거리낌 없이 요청했다. 설마 계산하지 않고 갈까 싶었는데, 그들은 끝내 일부 비용만 지불하곤 사라졌다. 되려 내가 주제넘게 나서려 했지만, 친구도 말리고 아주머니도 말렸다. 


'왜 돈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않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은 다소 서글펐다. 


그러다 나쁜 내용이라도 올리면 어쩌려구..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거리에 놓인 수많은 포장마차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다. 조그만 간판이나 현수막으로 그 이름을 내걸고 오랜 기간 장사를 하고 계셔서 상호등록도 잘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주머니 말씀을 듣고 혹시나 싶어 여러 사이트에 가게 이름을 적어봤다. 어렵지 않게 혹평 영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맛이 없다느니, 내부가 지나치게 춥고, 자리가 불편했다느니, 수많은 평가들이 즐비했다. 아주머니는 이것들을 분명 보셨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맛이 없었을 수도 있고, 의자가 유난히 불편했을 수도 있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잘 드는 위치라 유난히 추웠다고 느꼈을 가능성 역시 없지 않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주관적인 것인데 마치 객관적인 평가인 양 점수를 매기는 것이 영 불만스럽긴 하다. 그리고 "여기 절대 가지 마세요!"라는 지나친 문장 따위를 굳이 영상에 넣어야 했을까. 


너도 나도 유명해지기 좋은 사회라고는 하지만 정의로운 척, 공정한 척하는 사람들은 영 별로다. 자신들이 정의의 사도가 된 양 조두순 집 앞으로 달려가던 개인방송인들도 여전히 눈에 선하다. 잘못 없는 경찰들을 밀치고 다치게 하거나, 고성방가로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 여기에 지자체 시장까지 나서서 유튜버들보고 제발 그만하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던 얼마 전의 일은 생생히 남아있다. '유튜버 뒷 광고 논란'까지도 그렇고 논란은 참 많다. 


물론 순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블로거든 유튜버든 정말 좋은 정보를 제공하거나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대단한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다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남용 가능한 허영적 권력'을 손에 넣는 것 같다. 그것에 대한 보호조치도 미흡한 것 같고,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이런 보통의 소시민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 아주머니 가게에서 마시는 소주에서는 괜스레 더 묵직한 맛이 난다. 

그게 나 때문인지, 바깥의 환경들 때문인지.


이전 01화 짝퉁 가방을 들고 다니는 교수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