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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Mar 08. 2022

짝퉁 가방을 들고 다니는 교수님

그 대학 강 교수는 왜 짝퉁 가방을 들고 다녔을까

교수님이 평소 '가방'을 들고 다니시는 편은 아니었다. 손에 쥐어진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 서류나 책 뭉치, 혹은 휴대폰뿐이었던 것 같다. 이따금 커피 한가득 텀블러도 있었다. 복장에서는 늘 주장해오시던 '미니멀리스트'의 면모가 잘 드러났다. 교수님은 늘 단색, 그것도 무채색 복장만 선호하셨다. 어떤 분야에서든 '간결함' 내지 '명료함'을 강조하시던 분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교수님에게서 변화가 보였다. 그 단조로웠던 모습 한가운데에 휘황찬란한 것이 하나 더해졌다. 그것은 누가 봐도 '짝퉁'이라고 할 수 있는 에코백 크기의 커다란 가방이었다. 로고는 분명 '구찌'인데, 겉을 둘러싼 천은 '버버리'의 패턴으로 되어있고, 위쪽 끈 라인에는 '샤넬'로고의 지퍼까지 박힌….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말 부인할 수 없는 '짝퉁'이었다.


교수님의 가방을 본 주변의 반응도 뜨거웠다. 처음 동료들은 '와, 강 교수님 오늘 가져오신 저 가방 뭐지!?' 하고 웃어넘겼다. 우리 모두는 그게 교수님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잠시 누군가의 것을 들고 계셨던 거겠지- 누가 맡긴 거겠지- 등의 추측들만 해댔다. 그런데 그 가방은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교수님의 어깨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무려 학기초부터 연말까지 1년이나 이어졌다.


한 번은 동료가 지나가는 말로 "교수님, 이 가방은 왜 계속 메고 다니시는 거예요?" 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교수님은 "왜! 이거 예쁘지 않아?" 라며 호쾌하게 답하셨다. 그리곤 별달리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누가 봐도 다분히 의도가 있는 질문이었으나 딱히 개의치 않으셨던 것이다. 동료도 악의를 갖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그저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었던 데다가, 명색이 '교수님'이다 보니 일부 학생들의 쏟아지는 시선을 대신 걱정해준 측면도 있었으리라 본다.


교수님의 짝퉁 가방 사랑은 계절이 바뀌어도 계속됐다. 아주 매일 드신 것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그 화려한 가방을 볼 수 있었다. 늘 맨손으로 들고 다니시던 온갖 잡동사니들은 여전히 꾸역꾸역 담긴 채로. 얼마나 극기훈련을 시켰는지 가방끈이 금방 너덜너덜해졌다. 두꺼운 대학서적에, 텀블러며, 매일 내용물 한가득이던 그 가방. 되려 나중엔 대견해 보일 지경이었다.




가방의 출처를 알게 된 것은 한 해가 채 지나가기 전이었다. 저녁시간, 학교 앞 즐비한 식당가를 누비다가 노상 앞에 우뚝 서있는 교수님을 만났다. 본래 누구와도 허물없이 지내는 양반이란 것을 알고는 있었다. 역시, '참 단골이 아닌 곳이 없구나~' 생각했다. 인사도 나눌 겸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가까워지는 대화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엔 1년간 유명해진 교수님의 가방, 그것들의 형제자매가 도처에 널려있었다.


'이곳이구나!' 생각하며 함께 있던 지인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주인장은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도와줘서 고마워요. 나는 교수님한테 이런 것 밖에 주지 못하네. 가방은 바꿀 때 안 됐어요? 핸드폰은 뭐 써요? 이 핸드폰 지갑도 꽃들이 많아서 되게 예쁜데!"


그러자 교수님이 화답한다.


"아유 정말, 나는 아저씨 덕분에 평생 공짜로 가방 들게 생겼지 뭐예요! 일단 가방은 주신 걸로 더 들어볼게요. 좀 해지면 다른 튼튼한 걸로 또 주세요. 저 휴대폰은 갤럭시예요. 근데 되게 오래된 거라가지고... 이거 맞는 거 있으시면 케이스도 하나 주세요! 제가 거절을 못하거든요. 호호호."


도대체 어떤 걸 도와줘서 고맙다는 것일까. 사실 굉장히 궁금하긴 했다. 그러나 물을 순 없었다. 지난 1년, 우리 중 누구도 '교수님이 짝퉁 가방을 든 이유'를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다. 헌데 이번에도 질문하지 못한 것은, 그런 사연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교수님이 처음 저 가방을 들었을 때의 오묘한 시선들을 기억한다. 가방과 함께 강단에 올라섰을 때, 주변은 어수선했다. 교내를 활보하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은 빈번하게 집중됐다. 그 시선을 보내던 인파 중에는 나도 있었다. 모종의 호기심과 함께, 분명 의문 섞인 눈빛을 보냈다.


아직도 교수님이 짝퉁 가방을 들고 다니시는 이유를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교내 여러 '평가'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그 당시의 내 시선이 그다지 올바르지는 않았다는 것쯤은 알게 된 것 같다. 지금도 교수님의 어깨에 걸려있는 저 가방이, 이제 예전과 달리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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