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있어 '성숙해졌다'는 말 만큼 오만을 떠는 일도 없는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서 가까워진 무리들이 있다. 학교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것이다. 늘 통학을 함께하며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지게 됐다. 종강파티가 끝나고 만취해 집에 돌아오는 길도, 함께 돈을 모아 택시를 타는 등 거의 모든 일상이 함께였다. '중,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였다면 엄청 좋았을텐데'라는 말도 서로 자주했다. 학교를 가는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빈번하게 만났다. 같은 동네이다 보니 취미 생활을 즐기기도 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냥 어렸을 때부터 함께 크고 자란 동창들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청소년 때였다면 집에도 무턱대고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기도 했을 테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의 우리들은 좀 달랐다. 서로의 집이나 가족에 관한 질문 따위도 전혀 한 적이 없었다. 그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공통점 외에 우리와 연관된 키워드들은 서로 캐묻지 않았다. 그렇게 나름 무르익은 친구사이를 유지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던 중 한번은 선거철이 되었다. 요란한 선거유세차가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시절이다. 집 앞 지하철 역사나 상가에서는 정치인과 그의 보좌진들이 홍보물을 나눠주며 인사를 하기 바빴다. 그러다 친구녀석과 서점을 향하고 있는데, 저만치 이번에 출마한 후보 한명이 확성기로 선거유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 정말 시끄럽네, 저 사람들 과연 일이나 하긴 하는걸까."
나는 시끄럽다는 듯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그리곤 계속해서 짜증섞인 멘트들을 날렸다. 그러자 그 친구가 돌아가자며 유세차를 피해 뒷골목으로 나를 이끄는 것이다. 시끄럽긴 했어도 서점은 바로 앞 가까운 곳이었다. 굳이 돌아가자고 하는 친구를 보고 나는 또 헛소리를 해댔다. "너도 어지간히 꼴보기 싫었구나" 따위의 말이었다.
그 친구가 훗날 '그 정치인이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은, 서로 입대를 목전에 둔 술자리에서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사실 그 정치인 우리 아버지다!" 라고 했다. 나는 사과는커녕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과거에 내가 내밭은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 후, 우리는 각자 훈련소에 입대했다. 며칠 뒤 우울감에 젖어 한참 천장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불현듯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났다. 나보다 훨씬 최전방에 근무하고 있던 녀석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아버지까지 생각이 이어졌는데, 아차!! 내가 했던 멘트들이 그제야 모두 기억난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가 입대 전 나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밝힌 사실을 되짚어보았다. 정말이지 여간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 이후 만난 인간관계들. 그 사이에서 '이제는 나도 성숙했겠거니' 하며 나는 참 교만을 떨어댔구나. 그들의 사생활을 캐묻지 않거나, 집안이나 부모님 등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뭔 대단한 배려라고. 쓸모없는 오만으로 내 과오에 대해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부끄러웠다.
인간관계에 있어 성숙해졌다는 말만큼 오만스러운 말도 없는 것 같다.
인간관계는 국민학교 시절에도 어려웠고, 사춘기를 지나 고등학교 때에도 고난이도의 과제였다. 대학시절은 물론 군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무뎌진다는 말에는 어느정도 동의하겠지만, 결국 인간관계에도 정답은 없는 법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반대로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정답일 수도 있는 그런....
대학시절, 이제 막 성인이 되었다는 어떤 도취감에 스스로 굉장히 성숙했다고 착각에 빠져살던 그때.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변한 거 없이 그때와 마찬가지인 건 아닐까 매 시간 반성을 거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