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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29. 2020

내 신용등급 1등급 유지하기

내 돈 내가 써도 하락하는 예민한 너란 녀석

손가락 터치 몇 번에 내 신용등급 조회가 가능한 시대

사회로 진출하고 나서 내가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우리 모두에게 저마다 '신용등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단 사실이었다. 세상에, 나의 신용도가 고깃덩이 마냥 1~10등급까지 나눠져 있다니! 너무 쇼킹한 일이었지만, 조회 결과 나타난 나의 현 등급은 금세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내겐 성인이 된 이후 입사 전까지 신용카드란 게 존재한 적이 없다. 오직 아르바이트 비용이 입금되던 통장과 체크카드 사용이 전부였던 대학시절. 그 정직하고 일관되게 기록된 나의 소비와 저축들은 '신용등급 1등급'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였다.

아니, 내 돈 내가 쓴다고 신용등급이 떨어지다니!!!

사회에서 또 한 번 이 신용등급으로 인하여 충격을 받은 것은, 나의 급수가 떨어졌을 때였다. 나는 내 시작이 1등급이었다는 사실에 이 숫자를 유지하고자 참 많은 노력을 강박처럼 기울여왔다. 그런데, 난 데없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급수가 떨어진 것이었다! 심지어는 이후로도 점수가 조금씩 추락하고 있었다.


추후 여러 방면으로 원인을 알아보니 나의 소비가 늘어난 까닭이 제일 컸다. 직장에 들어가면 꾸준히 들어오는 큰돈이 생기고, 그에 따라 소비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신용카드의 수많은 혜택들은 정말 거절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통신비 할인, 마일리지 적립을 비롯하여 오피스텔 관리비까지 할인이 되다니! 이런 혜택을 어떻게 뒤로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여 초창기 신용카드를 목적별로 두어 장 발급했는데, 이는 곧바로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심지어는 이직 후 오른 연봉 덕분에 나 자신을 위한 선물로 떠난 여행길에서도 이 녀석은 또 떨어지기에 이른다. 타국의 호텔에서 맛있는 아침을 즐겁게 먹고 있는데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쓴 맛 메시지를 받았다. 비행기 티켓과 호텔을 미리 예약해둔 탓이었다. 평상시보다 높게 나타난 내 소비패턴으로 인해 신용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내가 대출을 받은 것도 아니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내 신뢰도가 이렇게 떨어질 수가 있나. 정말 예민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돈 많은 부자들은 신용도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다가 열심히 휴대폰으로 '신용등급 높이기' 방법들을 찾아봤다.


대출을 받아야 신용점수가 오른다고?

다시 한번 '세상에...'였다.


세상사 가장 하기 쉬운 말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적당히"라는 말이다. 모든 뉴스 기사나 블로그 글 등을 다 뒤져봐도 해답은 결국 '적당히' 쓰고 '적당히 '저축'하는 것 등이었다. 심지어 이 '적당히'는 대출에도 적용이 되었는데, 은행권에서 조금씩 대출을 받고 다시 잘 갚아나가면 신용등급이 상승한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1등급 유지에 대한 나의 집착은 대단했다. 결국 나는 필요치도 않은 대출을 한번 받아보았다. 백만 원 정도 되는 적은 금액으로 대출을 신청한 뒤 채 2개월이 되지 않은 날 모두 갚아 본 것이다. 그랬더니 정말 신용점수가 꽤 올랐다. 세상에... 세상에...


정말 사람 무엇이든 '적당히' 하면서 살아야 하나보다.

이제는 신용등급까지 자기를 잘 어루만져달라고 하는 세상이니, 정말 인생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불현듯 또 이런 우스운 생각도 든다.

아 역시 1등은 어디에서나 쉬운 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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