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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Oct 30. 2020

'은퇴 예비자'들의 '은퇴 교육' 후기

내리막길에도 열렬한 응원이 필요합니다.



국장님의 은퇴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술자리에서는 우리 국장님이 얼마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학교 이야기를 참 많이 하신다. 국장님은 최근 '은퇴 예비자 교육'을 시작하셨다. 경기도의 한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 강좌에는 다양한 참가자들이 매일 열심히 참석 중이라고 한다. 무려 총 6개월짜리 과정이다.


같이 입학한 동기들은 전부 비슷한 나이라고 하셨다. 도청 근무 중인 공무원, 모 기업의 과장, 학교의 교직원 등 다양하다고 했다. 교육의 '제1목적'은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찾아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대다수의 예비자들은 코로나-19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경제상황이 나빠졌거나- 물가 상승, 자녀 교육 등의 열기에 치여 은퇴 후에도 소득이 꼭 있어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국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의 교육이 여간 강력한 게 아니었다.


처음 은퇴를 앞둔 예비자들을 모아두고 강사는 "여러분은 이제 바깥에 나와도 허드렛일 말고는 하실 게 거의 없습니다. 그 사실을 반드시 인정하셔야 합니다."라고 얘기했다 한다. 이후 많이 벌어봤자 100~200만 원 정도면 정말 여러분은 성공하신 거라는 둥의 말이 계속됐다는 후문이다. 


나는 국장님이 저런 후일담을 털어놓으실 때마다 걱정이 가득했다. 듣는 입장에서 얼마나 기분이 좋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국장님은 그 강사의 말을 철석같이 신뢰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대체 왜인지 파이팅이 넘치시는 모습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5,000명이 넘는 조직에서 우리 국장님은 10명 안에 드는 고위 간부다. 여러모로 나와 후배들이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다. 그런 분이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은퇴'라는 전환점에서, 급격히 떨어질 당신의 상황을 너무나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국장님. 진짜 그렇게 목표치를 낮게 잡으신 거예요? 국장님이 왜요!?" 

또 못 참고 내지른 막내의 질문에 역시나 호탕하게 대답해주신다. 


"지금 내가 너 같은 줄 아냐! 나는 '오르막'이 아니라 '내리막'이잖아. 천천히 조심히 가야지. 원래 내리막길이 더 위험한 거야. 나는 그나마 국장이나 달고 은퇴도 늦췄는데, 내 동기들은 지금 만나보면 마음이 아파. 그래도 30년을 넘게 근무했던 곳인데, 현업에서 떠나는 순간 진짜 아무것도 없다더라. 술 한잔 하자고 보고 싶은 후배들 모아보려 해도 10명 중 1명 나오면 다행이래. 현직에 있을 때는 먼저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은퇴하면 끝인 거야. 친구 놈 하나는 공무원 생활만 30년을 했는데, 경비 면접장에서 '공무원'은 안 된다고 하더란다. 꽉 막히고 답답한 데다 고지식할 것 같다는 말을 면전에다 하길래 이놈은 이제 이력서에서 공무원을 빼야 되나 싶대. 아, 그건 그렇고 네놈들은 나 은퇴해도 꼭 나보러 와라!"




결국은 우리 모두 언젠가 은퇴를 할 텐데…. 

영 마음이 어려워지는 이야기들을 잔뜩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 국장님은 나름 현명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오고 있으신 것 같다. 정상에 올라 주변에 펼쳐진 모든 풍경을 두 눈과 가슴에 담고, 이제 미련 없이 산행을 마무리짓는 듯 한 모습. 내 눈에는 초연한 국장님의 모습이 참 깊어 보였다.


우리 국장님의 하산길. 

말씀처럼,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오셨으면 좋겠다. 


'나의 오르막길'을 국장님이 늘 응원해주셨던 것처럼, 

'국장님의 내리막길'을 내가 늘 응원할 것이다.


그래, 내리막길에도 응원이 필요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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