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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Sep 25. 2020

2인 1조

신년 즈음. 술 모임이 잦을 때였다. 그날도 기분 좋게 술 한잔을 한 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리기사님을 불렀다. 그런데 이윽고 도착한 대리기사님의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20대 초반이었다. 많이 쳐줘도... 절대 20대 중반 이후로는 보이지 않는, 그런 앳된 모습의 기사님.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함께 집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오늘'- 지나온 모든 기억을 잊게 만든 장면들의 시작. 


내가 주차했던 곳의 출구는 총 두 개였다. 오른쪽에 하나, 또 왼쪽에 하나가 있는 구조다. 내가 집으로 가는 방향을 설명하며, '오른쪽 출구로 나가자'고 했더니 그가 머뭇거리는 눈치였다. 그렇게 한 동안을 우물쭈물하더니만, 이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저... 죄송한데, 제가 '2인 1조'로 움직이고 있어서요….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이 계시거든요. 근데 그분이 핸드폰을 놓고 오셔서... 왼쪽 출구에 잠깐 들러서 말씀드리고 가면 안 될까요?" 


잠깐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왼쪽 출구로 돌아 나가는데, 이윽고 우리를 기다리던 저쪽의 '2인 1조' 중 다른 1명의 차량 창문이 내려갔다. 


"엄마!" 


그의 어머니였다. 두 글자, 짧은 그분의 호칭이 불린 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곧바로 창문을 올렸다. 건너편 저 차량 속 얼굴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를 이쪽으로 향했다. 아마 이토록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그가 빨리 나타나지 않아 걱정이 가득했던 모양이다. 창문이 내려가는 순간에 얼핏 보였던 그분의 표정이 그렇게 얘기하는 듯했다. 


이윽고 우리 집으로 다시 출발한 두 대의 차량. 

집으로 오는 내내 나는 그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지금 눈 내리기 시작하잖아요~. 제가 아까 뉴스를 보니까요. 내일 중부지방에 눈이 꽤 쌓일 거래요! 그러니까 내일 운전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일기예보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내게 퍽 고마운 정보도 제공해주는, 그런 고마운 기사였다. 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백미러로 그의 어머니가 따라오시는 광경을 종종 확인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도착한 우리의 차량. 그는 조심스레 주차를 마친 뒤 내게 인사를 건네며 뒤돌아섰다. 


"엄마!" 


다시 들린 두 글자, 짧은 호칭. 


저만치 멀리 기다리고 있는 조그만 차량... 그 안에서 손을 흔드는 어머니와, 내리는 눈 사이를 명랑하게 뛰어가는 츄리닝 차림의 그 기사. 


이 두 사람이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이 늦은 시간. 

앞에서, 뒤에서, 함께 했던 그 둘의 장면. 


그가 창문을 내리던 모습, 또 내게 들려주던 이야기들. 

그런 그의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차량. 


술 마신 누군가와 함께, 

이 추운 날 눈길을 헤쳐나가며, 

미숙하게 액셀을 밟고 있는 앳된 남자. 


그런 아들을 바라보았을, 

그 조마조마했을 차 안 속 어머니의 눈동자와 표정이, 

왠지 짐작이 가더라. 


날씨는 참 더럽게 추웠지만 오랜만에 미세먼지도 없이 맑았던 하늘.

눈까지 내렸던 밤. 


그 '2인 1조'와 함께 집에 오는 길은 참 좋았다. 참.




* 2019년 1월 17일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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