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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도 Dec 01. 2020

직장 상사의 아이들이 내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닌다.

만약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직장 동료 혹은 선후배 직원들의 아이가 다닌다면?

미연에 이런 일을 꼭 방지하라고 권하고 싶다. 성인이 된 각각의 인간에게, 어찌 보면 가장 큰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직장'. 직장의 계급 문화와 정치, 사람들 간의 감정싸움 등 그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갈 확률이 매우 높다.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는 우리 아버지 직장 상사의 아이 둘이 다녔다. 그들은 나보다 3살, 4살이 많았다. 고작 2학년이었음에도 당시의 기억은 강렬하다. 당시 학교에서 그 어린아이들이 마치 자신들의 아버지인 양 행동했기 때문이다. 비록 나이로 보나 뭐로 보나 내가 한참 더 어렸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왜인지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그 미묘한 행동에서의 차이가 느껴졌던 것 같다. 


당시 그들과 그 가족들이 난 영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동네 놀이터에서의 자리싸움이라던지, 교내 취미활동 반에서의 작은 신경전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자연농원(그 당시 에버랜드의 이름)'에서는 바이킹을 타는 데에 자리싸움까지 나고 말았다. 그들이 나를 안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내가 대기하고 있던 줄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 동안 벙 쪄 있던 나는 참지 못하고 그들을 윽박지르며 친구들과 함께 줄 밖으로 쫓아냈다. 적당히 대화로 풀어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이 자신들의 아버지와 직위를 꺼내들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물론, 아버지의 직장에까지 이 이야기가 귀에 들어갔다. 교내에서는 몇 학년 몇 반 누가 고학년 아이들에게 개겼다더라, 소리를 질렀다더라 등의 소문이 주를 이뤘다. 그들의 또래들이 우리 반에 찾아오는 일이 빈번해졌다. 교내에서의 일은 내가 저지른 것이니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교외 어른들의 귀에 쉽게 들어가는 법.


사실 아버지의 직장에서는 당시 어떤 소문이 퍼졌었는지 최근까지 알지 못했다. 

20~30년은 족히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의 소문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타이르듯 낮은 어조로 나를 나무라셨지만, 그건 꽤 많은 것들을 억누르신 뒤였다. 최근 아버지와 술 한잔을 하다가 그 과거 임원 가족들의 안 좋은 소식을 접하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평범했던 아버지와 그 임원의 관계가 어느 순간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건 나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도통 원인을 알 수 없어 '갑자기 저 선배가 왜 이러지?' 생각하며 꽤 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그때, 옆 과장이 다가와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자네 아들이 임원 애들하고 좀 싸웠나 보던데."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고 우스운 이야깃거리지만, 그 당시 아버지는 말 못 할 씁쓸함을 한 동안 가져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사태(?)를 여태 분출하지 못하고 참아온 아버지에게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마구 드는 순간이었다. 더는 그때의 일을 여쭙지 못하고 웃으며 술잔만 부딪혔다. 그러나 아버지가 겪었을 불편이 내심 짐작은 갔다.


20~30년 전에는 이런 상황과 사태가 많았다. 지금은 거주하는 집 근처의 직장을 다니는 일은 드물다. 서울에 위치한 직장을 다니더라도, 출퇴근자의 대다수가 수도권 및 서울 각지에 흩어진 경우가 많다. 허나 과거에는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는 게 미덕같이 여겨지던 사회다. 때문에 동네에서 직장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은 흔했다. 

 

그뿐인가.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민학교 때부터 고교시절까지 부모님의 직장은 물론 직책(직위) 등 모든 세부적인 정보를 적어내야 했다. 그로 인해 부모가 같은 직장을 다니는 아이들끼리는 으레 서로 각자 적어온 종이들을 돌려보며 적혀진 '직위'에 녹아들기 마련이었다. 왜 이런 쓸 데 없는 것들이 존재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 그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나를 키워내던 부모님의 나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때의 부모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종종 대입해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지금껏 살면서 이런 생각을 깊이 해본 적은 없다. 아마 그건 내색 않고 여태 버텨온 부모님의 역할이 클 것이다. 요즘은 사실 사회구조가 많이 변화되었기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직장 상사와 내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니는 일'은 흔치 않을 수도 있다. 주변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예전 우리 때는 흔했던 일이, 지금은 확실히 거의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 세월을 지내며 나로 인해 불편함을 겪었을 부모님께 가끔 짠한 마음이 든다.

감사함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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