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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Dec 07. 2020

사회에서 쌓인 '우정'이 훨씬 더 깊은 이유



다 커서는 친구 사귀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보통 나이를 먹을수록 깊은 '우정'을 나누기 힘들다고도 말한다. 

나는 이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살아오며 운 좋게 모두 같은(혹은 비슷한) 환경에 처해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성인이 되며 사람들은 수많은 낯선 관계 속에 놓인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상황들은 사람들 간 다양한 문제를 야기시키는데, 이로 인해 점차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관계에 조심하는 것이 많아지게 된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던 옛날과 달리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또 상황 속에서 타인들과의 유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도 하고-. 


조심성이 늘어나며 연애도 힘들어지고, 깊은 우정을 나눌 친구 역시 사귀기가 드물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로 더욱 깊고 끈덕진(?) 관계가 생기기도 한다. 


성인이 된 후 형성된 자아, 그 자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가 드물지만 본인과 꼭 맞는 관계를 찾게 되었을 때가 있다. 바로 그때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여 시작은 힘들지만, 한 번 스타트를 끊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는 게 성인들 간의 관계 같다.


성인들에게 마음을 연 관계라는 것은 수많은 필터링이 작용했다는 소리나 진배없다. 

그것은 본인의 기준 혹은 성향 등에 대상이 매우 부합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저 모든 관계가 자연스레 내 주위로 몰리던 과거와는 다르다.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는 동료, 혹은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꼭 맞아떨어져서 대화가 기가 막히게 잘 통하는 직장의 선/후배, 예전에는 그저 가볍게 알아가던 서로의 관계를 지나쳐- 이제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게 된 사랑에 빠진 연인들, 기타 등등 말할 것도 없다.

    

예전에는 '상황 속에 놓였기 때문에' 그저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이 되었지만, 자유의지가 생겨난 성인은 직장 내외의 곳에서 본인이 원하는 관계를 어느 정도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직장 내에서 불필요한 관계를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도 본인과 마음이 맞는 관계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과의 우정은 희한하게도 과거 학창 시절 철없던 우정과는 사뭇 다른 심연의 깊이를 가진 것 같다. 


나 역시 어렸을 적 불알친구들과 여전히 가벼운 만남과 추억 가득 담긴 우정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 맺게 된 수많은 우정들은 이상하리만치 깊은- 다른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뭐랄까, '전우애'에 가깝다. 


'전장에 놓인 상황에서 서로 등을 내어주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 말하면 조금은 설명이 될까.


각박한 사회의 수많은 전쟁터들. 그곳에 내던져진 채로 죽을 때까지 온갖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나. 그런 내게 누군가는 동료가 되어 늘 함께 최전선에서 적진으로 같이 돌파한다. 또 어떤 이는 내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지휘관이 되어주기도 하며, 다친 내게 의무병이 되어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이도 있다. 패배할 것 같은 불안감 속에 구세주처럼 등장한 동맹국의 증원군,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내가 갈 방향을 알려주는 신앙적 존재 혹은 멘토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이들이 '전우애'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피어난 이 '전우애'라는 것은 확실히 코 묻은 시절 나누던 풋풋한 '우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왜 성인이 된 후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보살핌을 받던 내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목숨을 내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적군'을 가려내기 위한 자신들만의 필터를 씌웠다. 그것은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이제 우리는 다른 군인들의 보호를 받던 약자가 아니니까. 

다들 소총 한 자루 들고 전쟁터로 나간 늠름한 군인들이기에. 


전장에서 만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아군'과 '적군' 어느 쪽인지 선별하려고 많은 이들이 발버둥 친다. 그리고 드디어 등을 내어줄 수 있는 '전우'들을 만나면, 우리는 그 수많은 '선별기준' 뒤켠에 있던 긴장감을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다.


그렇게 쌓이는 다양한 종류의 우정들은 정말이지 소중한 것이다. 

무려 '전장'에서 다져진 것들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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