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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Dec 11. 2020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열심히 따라 하는데도 불행한 이유



딸내미 하나를 열심히 키우고 있는 친구 하나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있잖아, 요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냥 폰 하나 만지다 보면 세상 사람들 정말 예쁜 것도 많이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그러잖아. 나도 친구들 인스타에 나온 맛집도 와이프랑 다 다녀보고, 여행도 다녀와봤어. SNS 보면 다들 육아 휴직하고 아이들과 시간 보내면서 행복해하길래 작년부터 육아휴직도 냈어."


말없이 듣고 있는 나에게 친구는 잔을 들어 건배를 청했다. 

녀석은 단숨에 원샷을 때리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금방 들이킨 잔이 미처 테이블에 닿기도 전에 그는 다시 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한 움큼 들이키고 난 뒤 다시 술을 가득 잔에 담고서야, 마침내 손에서 잔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작년에는 주변 동창들이며, 와이프 회사 사람들도 해외 한번씩 다녀온다길래 그것도 다녀왔지.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해외로 못 나가고 사람들 다 제주로 몰린다고 하더라? 그것도 여행이 아니라 한 달 살기, 보름 살기 이런 게 유행 하드만. 그래서 우리 가족도 한 달 살기를 했어. 


애도 너무 예뻐. 보면 정말 막 감동받고 그래. 그래서 매일같이 애기 사진도 올리고, 열심히 기록하고 그래. 근데 있잖아."


하고 싶은 말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나 왜 이렇게 불행하지? 


너도 들으면서 웃기지? 근데 나 되게 막, 뭐라 그래야 되지. 진짜 행복하지가 않아. 남들 행복하게 사는 거 다 따라 해 봤는데, 나는 숨이 턱턱 막혀. 맛있는 걸 먹으러 갔을 때도 기분이 안 좋았고 제주도에 한 달 있는데도 여유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더 심란했어. 거기서 돌아오니까 회복은 되지도 않았어. 그냥 답답함만 커지더라. 


이게 딸내미한테도 가는 것 같아. 내가 행복하지 않으니까, 애랑 있는데도 뭐랄까. 이게 행복한 건지 잘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정신이 확 드는 거 있지.


곰곰이 생각해봤지. 진짜 남들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거 다 지켜보면서 나도 다 따라 하는데... 대체 왜 나는 불행할까! 엄청 고민 많이 했거든. 근데 따라 해서 불행한가 봐. 


내가 먹는 걸 엄청 좋아해도 막 만들어먹거나 소소하게 영화나 축구 보면서 먹는 게 좋은 것 같아. 어디 TV에 나왔다고 가서 먹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나 봐. 먹는 건 좋아도 가서 기다리고 북적거리는 건 더 싫었어. 제주도도 그래. 내가 거길 왜 갔을까. 거기 가려고 집 알아보고, 렌터카 알아보고, 가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하고 한 달 지내고, 그냥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어. 가기 전부터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는데, 제주도에 도착해서는 하루하루 여행 계획을 매일 세워야 했던 거야."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가슴에 두 손을 갖다 대더니 깜짝 놀란 듯 표정을 지었다.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던 곰 같은 친구는 눈 앞의 안주에 관심도 없어 보였다. 오직 고개만 끄덕이는 나를 향해 이야기만 줄곧 늘어놓을 뿐. 본인의 감정을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내게는 퍽 신기했다.


"너무 남들 하는 거 다 따라 하고 살았나 봐. 졸업이 얼마 안 남았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 남들 다 가는 회사, 나도 가려고 노력했었고... 그냥 거의 모든 걸 따라 했지. 근데 그러다가 내가 뭘 발견했는지 알아!?


내가 '남들 좋아하는 것'까지 따라 하려고 했던 거야! 되게 웃기지? 


호불호는 개인마다 다른 거잖아. 근데 나는 남들 좋다는 걸 나도 당연히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다른 집 애기들이 뭘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난 우리 딸내미한테 다 해줬었거든? 근데 그것도 잘못된 거였어. 걔네 집 애는 걔네 집 애고 우리 집 애는 우리 집 애인데. 


나도 남 좋아하는 거 따라 하고 있었는데, 딸내미한테도 남의 애기들이 좋다는 거 그대로 해주고 있던 거야. 그게 너무 미안해. 아빠가 되어가지고 나도 불행하다 노래를 부르고, 딸내미한테도 그냥 그게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야."


이제 정말 우리도 나이가 든 건지…. 

얘기하다가 눈물을 글썽이는 녀석이었다. 

먹태 하나에 소스를 듬뿍 묻혀 한입에 우겨 넣었다. 

질겅질겅 씹으면서 나는 잠시 다른 곳을 바라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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