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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Jan 06. 2021

꼰대 = 요즘것들



평균 나이 30대 중반이었던 나와 동기들은 서로를 참 '애매한 위치'라 말하곤 했다. 

아주 패기 넘치는 젊은이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엄청 짬이 되는 팀장급 직원도 아닌... 뭐랄까... '중간 정착지' 같은 느낌이었다. 더 이상 '신입'이란 타이틀로 모든 것을 용서받는 초짜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관리자급의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지도 않았다. 진짜 말 그대로 '애매한 위치'다. 


우리는 20대 후배들에게도, 또 팀장님들과도 온전히 섞이지 못했다.

말마따나 당시 경유지에서 믿고 의지할 곳이라곤 동기들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이 '중간 정착지'에 도래했을 무렵 양 세대들에 둘러싸여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어린 친구들 중 일부는 팀장급 직원에게 '꼰대'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욕설이 뒤엉킨). 또 어떤 팀장님은 새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요즘것들'이라며 혀를 찼다(이 역시 비난이 뒤엉킨). 동기들과 내가 위치한 이 애매한 포지션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서로 우리들을 자신들과 더 가깝노라 제각각 생각했던 것 같다. 줄곧 이런 얘기를 쏟아내며 '공감'을 갈구했으니 말이다.


정작 우리는 윗사람들에게도 / 아랫사람들에게도 속해있지 않은 '회색분자'가 아니었다 싶다. 그러던 중 어느 회식자리에서였을까. 동기들과 얘기하다가 우리는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서로를 지칭하는 단어는 달라도 그들의 언행이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몇 해전부터 '꼰대'라는 단어가 밈(meme)이 되어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너도 나도 숱하게 이 단어를 사용했고, 일상에서는 물론 미디어에서도 앞다퉈 내보냈다. 마치 '유행' 같았다.


어느 회사나 다 똑같겠지만, 유독 방송국이나 미디어 사는 OB와 YB의 대립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한정된 예산과 시간으로 적합한 기획안을 단기간에 짜내야만 한다. 그것으로 제각각 1년 성과를 평가받기 때문에 보통 회의에서는 대단한 의견 충돌이 오간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기획안에 접근하는 시각부터가 세대별로 서로 너무 달랐다. 추구하는 내용 역시 차이가 났다. 이럴 때면 각 세대에서 '극단을 달리는 대표주자'들은 늘 애매한 위치의 우리들에게 의사표현을 원했다. '어느 곳에 동의하느냐'에 따라 각 곳의 분위기는 냉온탕을 오갔다.


그들의 갈등이 매우 심했던 탓에 이런 기이한 모습이 펼쳐지기 일쑤였다. 중간에 있는 우리들에게 마치 '결정권'이 주어진 듯 보였으니 말이다. 문득 지금 돌이켜보건대, 아마 30대 중반 우리들은 각각 선택에 따라 '꼰대'란 소리도 들었을 것이며 '요즘것들'이란 말도 분명 뒤에서 한번 이상은 들었을 것 같다. 


한 번은 회사에서 종무식이 끝나고 전 직원이 회식자리에 갔을 때였다. 다소 삭막했던 1차가 끝이 나고 2차 장소로 이동했다. 으레 다른 곳들도 그러하듯 2차부터는 자리를 눈치 보지 않고 조금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편이다. 동기들과 나는 외진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 후배들 중 늘 불평이 많았던 녀석 하나가 우리 테이블로 와서 건배를 청했다. 그리고는 저 멀리 테이블에 앉은 부장님을 가리키며 또다시 '꼰대'라는 말을 안주 삼았다. 그 날것의 이야기를 글로 적기는 민망하지만 당연히 긍정적인 부분은 전혀 없었다. "선배님, 저 진짜 이 부장 저 꼰대 때문에 회사 다니기 너무 싫어요. 진짜 어떻게 저런 꼰대가 있지." 정도의 멘트가 약했다면 약한 것이었을 정도다. 


그러다 이 친구는 또 한참 자신의 동기들을 찾아 헤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공교롭게 얼마 후 그가 떠난 자리에 이 부장님이 오셨다. 화장실을 다녀오시다가 이쪽에 냉큼 앉으신 것이다. 그리고는 당신이 앉으시기 전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난 후배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셨다. 역시 긍정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야 니들이 쟤 좀 어떻게 해봐라! 사수면 저렇게 나대는 애들 교육도 제대로 시켜야지, 너네도 문제야! 요즘 것들이 하여튼 당당한 것과 건방지고 오만한 걸 구분을 못해." 따위의 말들이었다. 그리고는 부장님 역시 유유히 다른 곳으로 사라지셨다.


그러자 불현듯 동기 중 하나가 빵 터져서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다들 비슷한 표정이었다. 


"야! 뭐야 둘이 얘기하는 것 좀 봐! 완전 똑같네, 진짜! 하하하!!!"


우리는 박장대소했고 식당 내 모든 선후배 직원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후배와 부장님이 떠나고 난 뒤, 동기들과 나는 한참 우리들의 위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10년 전쯤엔 어땠었는지 되짚어 보다가, 우리의 10년 뒤는 또 어떤 모습일까 그려보았다. 다들 참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공통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저 유난스러운 몇 명 말고, '꼰대'나 '요즘것들'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는 사실. 그렇기에 우리가 때에 따라 누군가에게 '꼰대'나 '요즘것들'이라 지칭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호칭을 누군가에게 부여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 설사 어떤 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든, 적어도 우리는 그러지 말자- 라는 게 골자였다.

'꼰대'라고 상사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요즘것들'이 되자.

'요즘것들'이라며 혀를 끌끌 차지 않는 '꼰대'가 되자.


그 약속 같은 다짐을 술에 취해 수차례 반복하며, 우리들은 계속해서 잔을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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