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왕고래 Dec 07. 2020

'검은 개(Black Dog)' 죽이기

한 평생 '검은 개(Black Dog)'가 나를 따라다녔다.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위인 '윈스턴 처칠'이 한 이야기다. 처칠은 어렸을 때부터 심한 우울증을 앓아왔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91세라는 나이까지 생존해 있었지만 항상 우울감과 공존해야 했다. 노년에 다다랐을 때에는 혹여 자신이 뛰어내릴까봐 강 근처에도 가지 않고, 배도 절대 타지 않았다는 일화까지 있다. 그가 명명한 '검은 개(Black Dog)'는 그로 인하여 줄곧 우울증의 상징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현대인이 '검은 개'를 만나는 일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 같다. 일전에만 하더라도 '우울감'에 대해 논하는 경우가 매우 부족했는데, 최근에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각 곳에서 많은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심지어 주변을 찾아봐도 이 소용돌이에 휩싸인 많은 지인들을 본다. '산후우울증'에 걸린 남편을 비롯, 일반인들에게도 빈번히 나타나는 '공황장애', 직장에서 겪는 대다수 사람들의 보편적인 '우울감'도 말할 것 없다. 




▲ '검은 개(Black Dog)'와 공존하는 법


바야흐로 '검은 개'와 공존하는 사회가 온 것 같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보폭은 더욱 짧아지고, 걸음의 속도는 매우 분주해졌다. 이속에서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병이 생겨 고통받고 있다. 특히 최근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로 인하여 더 그래 보인다. '코로나 블루(코로나로 인한 우울증과 무기력감)'라는 단어까지 나왔으니, 이제 '검은 개'는 희귀종이 아니라 보편적인 견종이 된 것이다.


처칠은 이 '검은 개'를 가끔씩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규정했다. 그는 비록 오래 전의 인물이지만, 현대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마음의 불청객에 대하여 진작부터 분명하게 통찰하고 있었던 것 같다(여담이지만 바로 이런 모습이 내가 처칠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스스로의 마음을 잘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문데, 그는 그 이 어려운 일을 매우 효과적으로 해냈다. 


그렇다면 '검은 개'를 죽이기 위해 처칠은 어떤 방법을 택했을까?


그가 그림을 그리며 '검은 개'가 떠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당시의 후일담이 많다. 실제로 처칠은 취미가 그림이라고 누차 밝혀왔다. 게다가 그의 그림은 높은 평가를 받으며 곳곳에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나는 '글을 쓰는 것'과 '말을 하는 것' 역시 그에게 매우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윈스턴 처칠이 남긴 글들 중 아주 극소수만 번역본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는 그의 수많은 생각들이 어마어마한 양으로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것들을 천천히 읽어보면, 그에게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글쟁이 처칠은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되는데, 의외로 이 사실까지 아는 지인은 많지 않았다).


처칠의 방법을 살펴보며 미루어 보건대, 그는 '검은 개와의 공존'을 택했던 것 같다. '수없이 쏟아지던 번뇌'와 '끝을 모르고 몰아치는 감정', '심연의 철학적 고민과 선택'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 그가 가진 고민을 나누고 어떤 이야기든 들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 처음 만나는 시민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모습은, 그를 다룬 글이나 영화 및 다양한 후일담에 줄곧 등장한다.


결국은 '올바른 분출'이 '검은 개'와 함께하는 법이 아닐까 싶다. 


살펴보면 결국 건강한(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컨디션을 잘 유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관리에 능했다. 육체적으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본인의 상태를 잘 진단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몸이 아플 때에는 약을 복용하든지, 병원을 다니거나 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마음속에 찾아온 '검은 개'를 현명하게 다스릴 줄 아는 사람들은 결코 많지 않았다. 


처칠은 '검은 개'를 죽이지 않기로 했다.


그는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검은 개'를 모른 척하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거나 외면하지도 않았다. 본인 앞에 성큼 다가온 '검은 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것과 공존하는 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 '검은 개'에게 물리지 않기 위하여 되려 그 '검은 개'를 파악하고 대처방법을 강구하게 된 현명한 사례다. 




BBC에서 실시한 '자랑스러운 영국인' 국민투표. 윈스턴 처칠은 '아이작 뉴턴'은 물론, 영국인들이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던 자부심의 상징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다. 그렇게 9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수많은 발자취를 남긴 그이지만, 어김없이 우울감은 자리하고 있었다.


그 '검은 개(Black Dog)'는 요즘 가까운 사람 모두 한 마리씩은 마주하는 그런 흔한 감정의 덩어리가 된 것 같다. 누구나 저마다 불현듯 찾아오는 '검은 개'를 마주하며 산다. 그 거무튀튀한 무서운 개에 대처하는 법 역시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방법이 옳고 그른지는 누구도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저 녀석을 무작정 때려잡기 보다, 적당한 거리에서 공존하는 법을 배워보려고 한다. 

마치 처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저 개의 탄생 비화는 나와 내 주변의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