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대중적인 콘텐츠라거나 SNS가 그렇다. 인스타나 카톡에서 따뜻한 말을 주고받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굳이 안 해도 될 독설을 억지로 주고받을 이유도 없다. 그런데 왜인지 최근 느껴지는 것은 「'위로'를 강요하는 것 같은 세태」다.
이게 미디어의 긍정적인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두가 지나친 '따뜻함'을 강요하다 보니, 결국 '객관적 사실을 미처 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가능성 중독'이 그렇다.
어느 만년 배우 지망생의 영상을 보다가, 댓글에 적힌 '가능성 중독'이란 말을 봤다. 만화가 지망생이든, 배우 지망생이든, 공시생이든, 아나운서 지망생이든,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나는 아직 성공점에 다다르지 못한 거지. 가능성은 있어.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 거야.'라는 것이다. 물론 하다 보면 언젠가 이뤄질 수는 있다. 그런데 기회비용으로 따져보면 어떨까. 맹목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곳을 후벼 파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성공의 여지가 있는 곳을 얼른 찾아 그쪽으로 투자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모두가 시간이든, 비용이든 한정적인 자원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가 하면 (초를 치고 싶진 않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에 목을 매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이런 사람들이 '가능성 중독'인 것이다.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나'에 중독된 상태. 그리고 주변의 객관적인 평가를 회피하고 오직 위로만으로 버텨나가는 상황….
나는 이따금 이 '가능성 중독자'가 세상에 질병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지나치게 예쁘고 따뜻한 꿈만을 꾸는 망상 사회. 냉철하게 사회나 본인을 돌아보지 못하고, 그저 오밀조밀 예쁜 꿈을 그려나가는 일에 중독된 건 아닐까. 그저 그 꿈이 언젠가 이뤄질 거라 믿기만 하느라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너무 관대하다.
'위선이 섞인 위안'만 잔뜩 받다 보니, 일부 사람들은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따뜻함을 강요하는 사회'가 과연 '온전히 따뜻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미지근한 사람, 차가운 사람, 뜨거운 사람, 그 모두가 제각각의 적합한 온도로 살아갈 텐데 말이다.
물론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다.
성장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게 많은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비단 높은 곳만을 향한다는 게 아니다. 그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고 싶어서 모두가 각자의 기대를 안고 산다. 그렇기에 '희망'도 갖게 되는 것이다.
식물이 자라나는 데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햇빛, 이따금 내리는 비, 비옥한 토양 등 얼마나 무수한 것들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일인가. 우리는 한낮의 따사로운 햇빛만 받아서는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위로의 편식. '좋은 말만 듣고 싶어하는 사회'가 옳은지 모르겠다. 스스로 자위를 잘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지 않을까. 타인에게는 보다 다양하고 넓은 의견을 듣되, 그 과정에서 나만큼은 나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생각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진심으로 어루만져줄 수 있어야 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혹은 나에게 전해지는 타인의 위로가 과연 모두 진심일른지는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