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차이와는 관계없이 편한 어른들이 있다. 어렸을 때에도 그랬지만, 중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훨씬 연배가 많은 분들 중에서도 그렇다. 이상하게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분들이 종종 나타난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이토록 예민한 나조차 이리도 편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러다가 최근 '내가 어른들에게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나 쭉 생각해봤다. 곧바로 답이 나온다.
첫째, 젊은이를 하대하지 않는 어른.
지난주 차량 정기점검을 맡기러 인근 센터에 갔다. 3시간 정도 소요된다길래 안쪽으로 들어가 기다릴 참이었다. 그중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 한분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다짜고짜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커피를 요청했다. 그러고는 줄곧 반말로 다양한 요구사항을 늘어놓았다.
"가서 차량 뒷좌석에 있는 쓰레기도 좀 버리고."
"내 차 깔끔하게 탔으니까 어디 또 이상하다는 말로 뭐 속일 생각일랑 말고."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커피나 차 요청도 그래, 뭐,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지나치게 짧은 그분의 말들은 오래 듣기 거북했다. 나이 차이가 너무 크다면, 반말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하대하듯 깔보는 뉘앙스의 반말은 그런 것과는 분명 다르다. '친근함'과 '배려'만 담겨있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괄시받아야 할 명분은 절대로 없다.
둘째, 불편한 질문을 함부로 하지 않는 어른.
특히 호구조사가 그렇다. 거주하고 있는 곳의 위치 등 집안을 샅샅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나 동물이 있는지,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지, 그 집이 전세인지, 혹은 월세인지, 여러 가지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뿐이랴. 여전히 윗 세대 분들에게는 '출신'도 꽤 중요한 것 같다. 비단 지역만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고향뿐만 아니라 출신 학교, 대학에서의 전공 등 너무 디테일한 질문을 이어간다. 여기에 더해, 가족들에 관한 것까지 질문을 해대는 어른들 역시 꽤 있었다. 이를 테면 부모님의 직업도 그들에게는 매우 큰 관심사였다.
나와의 커뮤니케이션에 가족들의 호구조사까지 이어지는 지경이라니... 회사에 이력서를 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까지 질문을 하는 어른들을 만날 때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특히 스스로를 천천히 드러내는 편인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정말이지 고단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만나면, 사뭇 다르다. 그들은 질문을 하더라도 온전히 서로에게만 포커스를 맞추는 편이었다. 이건 아마 오래된 문화인 것 같다. 어째서 이런 것들이 생겼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다만, 점차 사라져 간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셋째, 독촉하지 않는 어른(들들 볶지 않기).
이건 내가 가장 주의하려 노력하는 것 중 하나다. 직장에 근무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독촉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일이 느리거나 딜레이 되어서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버릇처럼, 혹은 그것이 본인의 권력을 어필하는 것이라 여겨서, 참 난 데없이 독촉이 계속되었다.
일을 하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하라고 옆에서 들들 볶는다. 편안하게 일을 해야 더 신속하고 꼼꼼하게 할 수 있을 텐데 옆에서 매의 눈으로 자꾸 감시한다. 수시로 보고를 요구하거나 피드백에 정돈이 없다. 그들이 내킬 때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가야 한다. 변덕스러운 그들의 의견을 매일같이 반영하다 보면 쉽게 지친다.
살면서 느낀 건 '좋은 가이드'일수록 짧고 명료하다는 것이다. 굳이 길거나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임팩트 있게 가슴에 꽂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이 진짜 삶을 위한 조언이고 도움이 된다. 되려 구구절절 귓속에 냅다 꽂히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지치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부터는 말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어른들에 대한 공경은 필요하다. 특히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의 경우 사회적으로 배려해드려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차치하고, 왜인지 대면에서 거북스럽게 만드는 어른들이 있다. 존경과 예의는 기본으로 갖춰야 하겠지만, 나이가 인간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모두가 계속 '더 높은 어른'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누군가는 깊은 존경을 받겠지. 나는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적어도 젊은이들을 괴롭히거나 불쾌하게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