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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Nov 28. 2020

배려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



고등학교 시절 ‘도움반’이라는 것이 있었다. 


정신지체 혹은 여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각 반에 2~3명씩 배치하여, 일반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게 하는 그런 제도다. 지금은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된 터라 아마 많은 학교에 정착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당시에는 우리 학교가 시범운영학교로 지정됐었고, 교내에서도 딱 두 개의 반에서만 운영이 되었었다.   

   

첫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반에 도움반 친구들이 세 명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낯이 익어 살펴보니 중학교 봉사동아리에서 3년 내내 주말마다 만나던 A였다. 반가운 마음에 A와 짝을 자처하기도 하며, 나는 꽤 즐거운 시간을 함께 공유했다. 고1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 배려가 A를 괴롭힐 줄은 몰랐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른들의 만류가 시작되었다. 


A에게 잘해주는 것을 적당히 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의 나는 어쭙잖은 도덕심에 그들의 이야기를 마냥 나쁘게만 들었다. 아니, 잘해주는 걸 적당히 하라니 이게 무슨 궤변인가? 그러나 역시나 어린 시절의 치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끄러워지는 법. 여전히 나는 그때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음에 약간의 후회를 가지고 있다.


한 번은 선생님까지 나를 따로 불러 말씀을 하셨다. A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유인즉슨, 고3으로 올라가게 되면 내가 A를 예전만큼 살펴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 그러면 A 같은 아이들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점 등이었다.


실제로 내가 고3을 앞두고 한참 도서관을 전전하던 시절, A가 점차 힘들어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언제고 집에 전화하면(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개인의 휴대폰도 드물던 시절이다.) 내가 받고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게 되자 A는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줄곧 우리 집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또, 우리 집을 무작정 찾아와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일쑤였다. 고3 무렵에는 야간 자율학습 이후에도 학원이나 독서실을 다녀와야 해서 귀가가 제법 늦은 편이었는데, 분명 위험해 보이는 일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가 집을 찾아오거나, 밤마다 음성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겨두던 것을 학급 친구들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철없던 그 시절의 아이들은 A가 무섭다며 피하기도 했고, 같이 어울리기 꺼려하는 분위기마저 생겼다.


배려, 함부로 해선 안 되는 이유 

아마 당시의 어른들은 알고 계셨던 걸까. 선생님의 말씀을 조금 더 귀담아 들었더라면 조금은 더 현명한 방법으로 A를 도와줄 수 있었을까? 이런 일로 한참을 수렁에 빠져있던 내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부모 마음도 똑같지. 마냥 예쁘고 사랑만 주고 싶어도, 올바르게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단호한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거 아니겠니. A 같은 아이들은 오죽하겠어. 아마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다 부모님 마음일 거야, 그러니 선생님도 너한테 그렇게 얘기하셨겠지. 너는 어리니까 점차 뭐가 더 A한테 도움이 되는 일인지 생각해보고 행동하도록 해.”               


스스로를 자책하던 시간이 흘러갔고 그런 일들마저 무뎌져 갔다. 돌이켜보면 무책임한 배려만 마구 쏟아놓고, 내 행동이 불러온 상황에 나는 온전히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이윽고 졸업이 다가왔고, 군대와 유학 등 다양한 시간을 거쳐왔다. 그 속에서 나는 ['선의'라는 내 오만이 가져오는 좋지 못한 결과]에 대해 늘 곱씹으며 지냈다.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불현듯 요즘 찾아오는 후배들이 많다. 하나같이 귀엽고 예쁘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주 부지런한 청년들. 그런 아이들이 먼길 나를 만나러 오는 이유는 조언을 얻고자 하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바라기도 해서다. 그러나 나는 예전처럼 함부로 선의를 베풀지 않는다. 조언도 마찬가지로 최대한 자제하고, 대신에 그들의 힘겨운 경주를 들어준다. 


나의 말이나 행동, 배려 따위가 주변 모든 것들에 작은 파동이 되어 서서히 영향을 미친다.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을 겪었다. 


해서 지금의 나는 후배 녀석들에게도 별다른 조언이나 가이드보다는, 그저 그들이 택한 길에 응원의 박수를 건넬 뿐이다. 조언도 내 주관적 견해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건데, 내까짓게 뭐라고 저들의 삶에 가이드를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누구도 비난받을만한 길을 걷고 있지는 않다. 각자의 경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워지는 게 많다.

이제는 '배려'와 '선의의 행동'도 한 번쯤 생각을 해보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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