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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카피 Oct 11. 2023

그 엘리베이터는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까?

  눈치 챈 독자들은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이번에도 바로 그 엘리베이터 이야기다. 브랜드를 대면 알만한, 그 혁신적인 엘리베이터를 만든 기업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기술력으로 완전히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냈다. 모나리자의 머리에 뿔을 달게 하고, 모든 도시의 빌딩에서 엘리베이터 기계실이 비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던 바로 그 엘리베이터는 신입 카피라이터인 나를 통렬하게 트레이닝 시켰다. 종종 100가지의 광고 제안을 받아보고 싶어 하는 광고주를 만날 때가 있는데, 운 좋게도 나는 첫 출근을 하자마자 그런 광고주님을 모시게 되었고 그 덕에 제품 중심 광고카피를 어떻게 써야할지 3개월 동안 혹독하게 시달리며 감을 잡아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문제의 엘리베이터는 그때는 지긋지긋했고 지금은 고맙다.     

  광고해야 할 제품은 한 가지인데 관점이 다른 광고를 제안해야 할 때, 제품의 특징을 겹치지 않게 나열하고 특징 하나 하나마다 다른 컨셉을 부여하는 게 제품중심 광고전략의 핵심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①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기존의 엘리베이터보다 ㅇ배 더 속도가 더 빠릅니다.

  ②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합니다.

  ③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더 빠른 시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④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높은 건물일수록 유용합니다.

  ⑤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별도의 기계실이 필요 없습니다.

  ⑥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건물의 1층을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⑦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건물의 스카이라인을 마음껏 설계할 수 있습니다.

  ⑧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건물의 임대수익을 높여줍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라! 여덟 가지나 되는 특징을 나열한 것 같지만, 본질은 두 가지뿐이다.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빠릅니다’라는 특성과, ‘이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별도의 기계실이 필요 없습니다.’라는 특성이다. 즉, 1번~4번까지는 ‘속도가 빠르다’에 대한 이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고, 5번~8번은 ‘별도의 기계실이 필요 없다’라는 이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본질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관점의 메시지를 도출할 수 있다. 핵심은 이 문장의 ‘주체가 누구냐’이다. 즉, ‘누구의 관점에서 말할 것인가’라는 말이다.     


  살다보면 정말 요상한 순간들을 만난다. 분명히 나와 친구가 함께 같은 영화를 봤는데, 영화를 보고난 후 밥을 먹으면서는 ‘정말 우리가 같은 영화를 본 게 맞아?’ 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때가 있다. 가령, 당신은 <라라랜드>를 한 마디로 무슨 영화라고 소개할 것인가? 누군가는 ‘젊은 남녀가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라 하고, 누군가는 ‘꿈을 좇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중년이 된 주인공의 회상’이라고도 말한다(이건 정말 실제다. 내 주변의 지인들의 의견을 물은 결과다). 이 중 무엇이 맞는가? 결론은 ‘모두 맞다’이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으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를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는 각자의 관점은 자아 개념을 기반으로 형성되기에 모두 다른 자기만의 시선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카피라이터는 이 지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의 관점에서 느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엘리베이터의 주요 특성은 두 가지이지만 여덟 가지의 핵심 메시지를 도출해낼 수 있었던 것은 관점을 달리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메시지를 모두 고려하여 다르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속도가 빠르다’는 건 생산자의 관점이다. 소비자의 관점이 되려면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이 소비자에게 어떤 이점(Benefit)을 가져다주는지를 살펴야 한다. 실제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 하는 ‘사용자’의 관점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 된다’가 이점이 된다. 이 엘리베이터가 도입된 건물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관점에서는 ‘일의 시작을 빨리 할 수 있다’는 이점을 찾아낼 수 있다.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높은 건물일수록 빠른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

  ‘(옥상에)별도의 기계실이 필요 없다’는 또 다른 사실 역시, 생산자의 관점이다. 특별한 이점을 명확하게 서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물주’의 관점으로 풀어보면, 옥상에 별도의 기계실이 필요 없으니 ‘건물 1층을 더 올려 임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강력한 이점을 드러낼 수 있다. 이렇게 관점을 달리하면 주체의 입장에 맞는 명확한 이점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에 서술한 여덟 가지 이상도 가능하다. 얼마든지 더 세분화하고 구체화시킬 수 있다. 그것은 카피라이터의 관점을 전환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그러나, 관점을 전환하는 능력에서 그친다면 좋은 카피라이터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 중 어떤 관점이 이번 광고 프로젝트에서 가장 유효한지, 즉, 이번 광고목적을 달성하려면 ‘누구의 관점’을 채택해야 하는지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이 엘리베이터는 누구에게 가장 말을 걸고 싶을까?’를 가려내야 한다는 말이다. 카피라이터는 ‘가장 먼저 광고하는 제품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말은 여기서 기인한다. 광고하고자 하는 제품 혹은 기업, 브랜드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때, 그것이 ‘누구’에게 가장 필요한지, ‘누구’에게 가장 강력한 이점을 제공할 수 있는지, 혹은 그것이 ‘누구’를 가장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된다. 이 인식의 과정과 이를 문자로 표현하는 일이 카피라이터의 일이다.     

  한편으로 이 논리는 ‘나’와 ‘나의 삶’에도 정확하게 겹친다. 내가 나를 지키며 원하는 방향으로 온전히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결핍된 존재이고, 이를 어떻게 채우며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하여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나를 표현하고, 매력을 느끼도록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라 한다.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은 ‘문제를 해결하는 소통’으로 풀어서 쓸 수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을 기획하고 이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카피라이터의 일이다. 그리하여 카피라이터는 끊임없이 제품과 브랜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스스로의 관점과 인식을 명확히 짚어내기 위해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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