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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카피 Oct 22. 2023

충족의 가능성을 언급하라

여전히 신입 딱지를 떼지 못하던 시절의 일이다. 거의 퇴근 무렵이 다 되었을 때 갑자기 새로운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5시쯤 미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이실장이 내일 오전까지 광고 시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허겁지겁 제작팀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오랜만의 칼퇴를 기대했던 우리 모두는 순간적으로 실망이 컸지만, 불평할 겨를도 없엇다. 당시 나는 아파트 광고를 두 번 정도 기획하고 라이팅했을 때였는데, 이번에 수행해야 할 일은 오피스텔 광고여서 도대체 어떤 차별화를 해야할 지를 생각하니 진땀이 나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턱없이 촉박했고, 시안은 세 개안을 만들어야 했다.

  제작팀 모두는 각자 자료수집을 한 뒤 30분쯤 후에 회의실에 모여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로 했다. 오피스텔 광고를 처음 맡게 된 나로서는 아파트와는 다른 오피스텔의 특성도 파악해야 했고, 우리가 광고를 해야 하는 오피스텔의 특성도 파악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었는데, 다행히 수석 디자이너가 오피스텔과 아파트 광고의 차이에 대해 대략 설명해 주었고, AE가 광고해야 하는 여의도 오피스텔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를 브리핑해 주었다. 다만, 광고주가 이 오피스텔의 무엇을 특히 더 강조해 달라거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어떤 방향으로 가져가야 할 지 등에 대한 의견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제품에 대한 광고 방향성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자, 이제 광고 시안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후 5시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는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광고 시안은 무조건 3가지를 뽑아내야 한다. 이제 카피라이터인 나는 오피스텔의 특장점에 대한 3가지 다른 관점을 제안하고, 각각의 방향성에 맞는 광고 컨셉과 그 광고 컨셉에 맞는 크리에이티브 컨셉을 뽑아낸 후, 각 크리에이티브 컨셉에 맞는 서로 다른 세 가지 헤드카피를 도출해 내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물론, 이 전체 과정을 카피라이터 혼자 수행하는 건 아니다. 제작팀 모두가 이 프로세스를 함께 헤쳐 나간다. 모여서 아이디어 발상을 하며, 각자 떠오르는 이미지나 키워드, 다양한 사례나 연관된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말하고 공유한다. 공유하고 발전시키며 광고하고자 하는 제품과 나누던 다양한 이야기들과의 독창적인 접점을 찾아 나간다. 적은 시간에 집중적인 자료수집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유로우면서도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나가는 게 광고 작업의 핵심 과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카피라이팅은 개별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함께 아이디어 발상을 하며 의견을 펼치고 모으기를 반복하며 현재 우리 브랜드나 제품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협동작업임이 자명하다. 그래서 타인의 의견에 대한 경청과 그의 관점에 대한 명확한 공감과 이해가 광고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이다. 


 아무튼 위의 과정을 거치며 여의도 오피스텔 지면광고 아이디어를 도출해 냈다. 아이디어가 적절한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언제나 소비자의 관점이다. 광고가 궁극적으로 말을 걸고자 하는 대상이 곧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피스텔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오피스텔에 기대하는 기본적인 니즈, 즉 임대료 수익이라는 부분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기본 전제들 중 우리 제품이 어떤 부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을 명확히 제안해야 한다. 


 심리상담사를 떠올리면 이 제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쉽다. 여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인지하기 어려워 하는 내담자가 있다고 하자.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끄는 질문을 하게 된다.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면서 내담자는 자신의 내밀한 욕구, 결핍, 나아가 스스로의 사고나 행동 패턴 등을 깨달아 가게 된다. 광고 역시 이런 차원과 비슷하다.

  광고는 타깃으로 하는 주요 소비자가 광고하는 제품을 통해 정확히 어떤 욕구를 총족하려고 하는지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충족할 수 있는지 그 내용이 명확하면 타깃은 그 광고를 보고, 즉각적으로 깨닫게 된다. "그래,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저거야!"라고. 이 지점이 소비를 일으키는 결정적 소비자 심리 타점이다.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의 니즈에 대해 선명하게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그 니즈를 바로 이 제품이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충족의 가능성을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이것이 광고의 처음이자 끝이며, 모든 설득의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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