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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선생 Oct 21. 2021

노벨상 수상자에게 듣는, 과학자와 사회의 올바른 관계

마스카와 도시히데의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리뷰


혹시 최근에 뉴스를 보셨다면, 노벨상 수상자들이 차례로 발표된 것을 보셨을 겁니다. 올해는 어떤 분야를 연구한 누가 상을 탔다, 업적은 이렇다, 이런 기사들 말이죠. 과학 연구에 상을 준다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도 많고 저도 상당 부분 공감하지만, 그래도 우리 인류가 세운 과학적 업적이 어디까지 와 있나 가늠하는 데는 또 노벨상 만한 기준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상자들은 수상 연설을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 가져온 책은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 과학자 마스카와 도시히데의 책입니다.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나는 영어로 연설할 줄 모릅니다’라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연설을 시작한 것으로도 유명한, 일본의 이론물리학자입니다. 그가 수상자 연설에서 꺼낸 주제는 뜻밖에도 ‘전쟁 반대’였습니다. 그는 일본 내에서도 ‘일본은 군대를 갖지 않는다’는 평화헌법 수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과학자가 전쟁을 말한다? 하지만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전쟁과 과학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과학에서 연구한 현상이 기술적으로 응용돼 전쟁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데 활용된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화하고 있죠. 이런 일을 막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과학자들은 이런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국가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 대가의 목소리를 한 번 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과학의 자율성, 단어만 봤을 땐 어려운 용어이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과학이 다른 영역과 얽히지 않는, 특히 사회로부터 독립적인 지위가 있다, 또는 그런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학 연구는 연구 성과, 그러니까 발견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또 그렇게 해야만 정말 과학으로서, 자연을 탐구하는 활동으로서 진정한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희망사항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일본의 과학자로서 그리고 물리학이라는 과학의 한 분과의 대가로서, 현대 세계로 올수록 과학의 자율성이 점점 침해되고 우습게 취급받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결과가 바로 과학-기술과 전쟁의 결합, 전쟁에 동원되는 과학입니다. 그는 이 책 안에서 살상 기술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거나, 적극적이진 않았더라도 자신의 발견이나 기술이 살상 기술에 이용되는 현상을 방관한 과학자들을 여럿 소환합니다.


마스카와는 이런 일이 점점 심각해지는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합니다. 첫째는 과학 연구가 지나치게 대형화돼서, 과학자 개인들은 전체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또 자신의 연구가 그 프로젝트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알 수 없게 된 환경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이 마치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 마냥 볼트만 열심히 조이는 탱크 공장의 노동자 같은 처지가 됐다는 것이죠. 그는 마르크스의 용어를 빌려와 이것을 ‘연구로부터의 소외’라고 부릅니다.


둘째는 과학자들에게 실용성을 강조하며 연구비를 지급하는 사회 문화와 국가정책 때문입니다. 과학자들도 결국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디선가 연구비를 받아와야 하는데, 연구비를 주는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들은 때로는 나쁜 짓을 저지르기도 하죠. 더군다나, 잘 드는 칼이 주방장의 손에 쥐어지면 훌륭한 요리칼이 되지만 살인범의 손에 쥐어지면 범죄 도구가 되는 것처럼, 특정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쓰일지 결정하는 것은 과학자 자신일 때보다는 돈을 주는 국가 기업 개인들인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렇게 과학자들은 전쟁을 포함한 범죄에 연루됩니다.


마지막은 과학자들 스스로의 무관심입니다. 연구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기여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첫째와 둘째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이런 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저항해야 합니다. 마스카와는 그러기 위해 역설적으로, 작은 범위의 ‘과학의 자율성’에서 뛰쳐나와 평화를 위한 사회적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내 큰 맥락에서 ‘과학의 자율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자체가 전쟁기술은 아니지만, 그 옛날 황우석이라는 과학계의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도, 특히 미래에 과학자가 되길 꿈꾸고 있거나 그런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이 책을 읽으시면서 과학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꼭 한 번 고민해보시면 어떨까요.



이 책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콘텐츠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입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동의를 얻어 초안을 작성한, 핵에너지를 전쟁에 사용해선 안된다고 호소하는 과학자들의 연서명 문서입니다. 이 책 내용에도 일부가 실려있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시면 영어 원문과 한글 번역본을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대량 살상무기의 상징이 되어버린, 사용한 뒤에 남는 영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직 방법도 찾지 못한, 하지만 탄소중립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원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는 핵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담고 있는 고민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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