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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선생 Oct 27. 2021

낯익은 건물을 만든 낯선 사람들의 삶 이야기

김소연의 <경성의 건축가들> 리뷰


1910년, 우리에겐 뼈아픈 역사로 기록되는 해입니다. 이후 36년 동안 한반도는 일본 제국의 통치 아래 놓이죠. 하지만 그 와중에 살 사람은 살아야 하고, 일본이 가져온 신식 근대 문화는 일본 통치와 함께 우리 삶 곳곳에 녹아들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공간을 만드는 건축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 곳곳엔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소재와 공법을 이용한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섭니다.


그 중심에는 경성고공, 경성고등공업학교가 있습니다. 조선에 근대 건축물을 세우는 현장에서 일할 실무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총독부가 세운 교육기관입니다. 재학생 상당수는 일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도 섞여 있었죠. 이들은 졸업 후 총독부에 취직해 관 주도의 프로젝트에 대거 참여합니다. 이런 프로젝트, 그리고 여기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한국 근대건축의 선구자로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문화콘텐츠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건물들. 그들의 이름은 낯익지만, 그 건물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은 낯섭니다. 바로 그 이름들을 다루는 책, 김소연의 경성의 건축가들입니다.



경성고공은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가 만들었고, 1922년에 경성고공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우리나라가 광복되기 직전 잠깐 경성공전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경성고공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오래 유지됐습니다. 이 학교의 설립 목적은 분명한데, 이른바 ‘근대’적인 서양 건축물들을 조선 곳곳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스펙터클’을 전시하며 일본의 통치를 선전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고, 한반도의 전통적인 ‘전근대적’ 건축문화를 바꿔 근대 문화를 이식하려는 목적도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경성고공에 진학해 공부한 조선인들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과연 우리가 이 학교에서 배우는 그 건축 기술과 방식과 문화가, 한반도에 적합한가?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죠.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인기 없는 건축물이 될 것이고, 반면 전통을 너무 고수하면 합리적이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죠.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건축가들은 이 고민의 결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합니다. 큰 건물에서 마당을 없애버리고 복도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근대적 전환’을 추구하는가 하면, 철도 역사에 한옥 지붕을 도입해 멋을 내기도 합니다. 서양의 역사에서 유행했던 온갖 건축 양식을 뒤섞어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시기에 ‘근대 학문의 수입처’ 역할을 담당했던, 특히 서울 지역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등학교나 대학 건물들에 이 실험의 흔적들이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세력 확장에 따라 이들의 손길은 조선을 넘어 지금의 중국 동북부 지역,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곳에 지어지는 건축물에까지 배어있습니다.


이런 실험으로서의 건축이 지니는 다양성만큼이나, 이 책에 등장하는 건축가들의 삶 속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에게 동시에 의뢰를 받았지만 본인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건축가 박길룡이라든가, 조선 민족운동의 중심이었던 종교인 천도교의 본당을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라든가, 경성고공 출신은 아니지만 선교사 인맥을 통해 맨몸으로 건축을 시작해 이름을 남긴 강윤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건축가들은 침략자 일본 대 저항자 조선이라는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각에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일제강점기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한 덕수궁 현대미술관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종로 걷기입니다. 현재 종로는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고 옛날 건물이 이미 많이 사라진 상태이지만, 개발이 덜 된 지역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이색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건물들 중에 상당수는 종로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들 중 일부는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건축가 김세연이 설계한 미츠코시 백화점과 조지아 백화점은 각각 지금의 신세계 본점과 롯데 본점이 대표적이겠네요. 건축가들이 자기 사무실을 내고 주로 활동했던 종로 일대 조계사 쪽 건물들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개발되지 않고 그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옥마을이라고 부르는 북촌이나 서촌, 익선동에 있는 건물들 상당수도 사실은 이때 지어진 ‘한양절충형’ 한옥이고요. 요즘 트렌드는 복고라는데, 진정한 복고는 이른바 ‘모던 보이’ ‘모던 걸’ 아닐까요? 종로를 거닐면서 직접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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