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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음료 Jan 15. 2023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엄마는 내가 5살 무렵, 가스레인지가 없고 연탄아궁이에 밥을 해 먹던 우리 집에 피아노를 들이셨다. 그리고 나에게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게 하셨다. 7살이 되자 바이올린을 시키셨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한 집사님이 운영하시는 단체 레슨으로 시작했다가 2학년이 되었을 때 개인레슨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셨다. 당시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시고 사업(이라고 하기엔 거창한 작은 가게)을 하셨는데 잘 되지 않았고 그래서 거의 엄마가 벌어오시는 돈으로 네 가족이 생활을 했던 때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엄마가 자식에 대해서 지극히 관심이 많으셔서 그러셨던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채우지 못한 갈망을 나를 통해 보상받고 싶으셨던 건지, 아니면 그냥 허영심이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불행히도 난 바이올린이 싫었다. 엄마는 학교에서 방송 조례시간에 내가 전교생 앞에서 바이올린을 하도록 시키셨다. 그리고 콩쿠르에도 내보내셨다. 나는 그 모든 것이 너무너무 싫었다. 너무 싫어하는 나에게 떠보듯 그럼 그만두겠냐고 화내는 엄마에게는 정작 그만두겠다고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내 바이올린 레슨에 이미 많은 돈을 들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만두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꽤 오랜 시간 배워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결국 내가 4학년 때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 배운기 시작한 지 4년 만이었다. 4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나는 바이올린이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정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후 30년 동안 바이올린은 만지지도 않고 살았다. 내 인생에 앞으로 바이올린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독일로 온 후 어느 일요일, 교회 예배 시간에 앉아 있었다. 내 앞에는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독일에는 음악공부를 하러 유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우리 교회에서도 갖가지 악기를 공부하기 위해 온 유학생들이 많았던 탓에 오케스트라 실력이 훌륭했다. 이제껏 그저 다들 잘하시는구나 생각하고 말았던 것과는 달리, 내가 저기 오케스트라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내 생각에 내가 깜짝 놀랐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그 생각이 들고 6개월이 지난 후 난 오케스트라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고, 그것이 범죄가 아니라면 후회가 남지 않게 해 보자는 주의이다. 그래서 그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오케스트라 팀장님과 의논을 하고, 개인 선생님을 구하고, 악기를 구입하고 연습을 하여 올해 1월 1일 첫 예배부터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마음이 있다고 해서, 내가 원한다고 해서 오케스트라에 맘대로 앉아 연주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처음엔 먼저 바이올린 악기를 빌려 내가 과연 소리를 낼 수 있나부터 확인해 보았다.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하기도 하지, 30년 만인데 소리가 났다. 어색하긴 했지만 손가락을 현 어디를 짚어야 어느 음이 난다는 것도 몸이 기억을 했다. 그렇게 난 전문 연주자들 틈에 앉아 못하지 않는 척하기 위해서 연기하듯 바이올린 연주를 한 지 2주가 되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교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못하게 되었다. 교회 활동도 하지 않고 예배만 왔다 갔다 하는 데다 나의 모습이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기엔 좀 어려운가 보았다(어렸을 때부터 새침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ㅠ). 그러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오케스트라에 앉아있으니 사람들이 너무나 놀라시는 것이었다. 갑자기 친근감을 표현하시던 많은 분들 중 한 분이 나에게 곧 음악회가 있는데 같이 하자고 적극적으로 권하셨다. 다른 두 분이 또 권하셨다. 약간의 고민 끝에 알겠다고 했다. 혼자서는 나가지 않을 진도를 누군가 등 떠밀어 주었을 때 시작한다면 나에게도 발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다.


어제가 처음 음악회 연습날이었다. 그날 오전에 레슨 선생님과 만나 조금 연습을 해 보았지만 요즘 이모저모 바쁜 일이 많아 악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냥 연습하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이내 후회했다. 역시 여기는 내가 감히 낄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찬송가나 찬양은 간단한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면 되지만 이번에 내가 연주해야만 하는 곡들은 우리가 진짜 연주회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악기가 함께 어우러져 제각각의 소리를 제때 박자에 맞추어 정확히 내어야만 하는 그런 오케스트라 연주였던 것이다. 첫 곡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대로 일어나 집으로 가고 싶었다. 박자를 맞추기는커녕 바이올린의 활을 현에 가져다 대어 제대로 된 바른 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자괴감에 빠지고 너무나 프로페셔널하게 연주하고 있는 주변의 다른 분들에게 민망했다.


어찌어찌 겨우 연습을 마치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암담했다. 사실 30년 만의 연주이므로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텐데도 스스로가 하찮게 여겨졌다. 냉정히 상황판단을 해 보았다. 연주회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요즘 많이 바쁘고 바이올린 연습에만 매달려있을 시간이 전혀 없다. 다른 분들이 잘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은 참 감사하지만 그러한 위로의 말이 나의 실력을 향상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마음은 지금 당장이라도 못하겠다고 하고 싶다. 하지만 한다고 해놓고 한 번만에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마지막 최후의 수단으로 내가 해야 하는 바이올린 2 파트 음원요청을 했다. 듣고 외우기 위해서였다. 어느 천사 같은 집사님께서 컴퓨터작업으로 해 보내주셨다. 그 옛날 엄마는 음악을 듣고 악보 없이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날 보며 천재인 줄 알고 그렇게까지 시키셨다는데 결국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이번만은 남은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한번 들으면 그대로 외울 수 있는 절대음감이 될수있길 기도하는 심정이다.


바이올린 덕분에 며칠간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서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사실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 자리에 앉아 멋지게 연주해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너무 허황된 생각 같아서 버킷리스트에 올릴 수도 없던 꿈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오케스트라에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연주를 해 보라고 하는데 대학 수준의 연주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나는 초등학교 수준의 연주를 하고 있다. 자칫하면 음악회에 큰 해를 끼칠 것 같다. 그런데 일주일은 내 수준을 끌어올리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하겠습니다 하고 깔끔하게 그만두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나와 함께 하고 싶다고 예쁘게 말씀해 주시는 착하신 분들의 말을 믿고 내가 낼 수 있는 소리만이라도 작게 내면서 그 자리에 함께 앉아 공연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완전히 그만두게 되면 공연의 자리에 올라가 보는 꿈같은 일을 경험해 보지 못하게 되니 아쉬움이 남을 것이고, 같이 하게 되면 잘 못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내가 내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허영덩어리로 느껴질 것 같아서 싫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 중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웬만하면 이루면서 살아갈 작정이다. 하지만 하고 싶음과 할 수 없음의 비중이 얼마만큼 되어야 할 수 있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열린 결말로 남겨 두어야 맞는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일이냐에 따라 하고 싶음 9 할 수 없음 1 정도는 되어야 달려들어볼 수 있을 수도 있을 테고, 어떤 일은 하고 싶음 5 할 수 있음 5만 되어도 시도해 보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론 할 수 있음 10일 때만 이룰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그때그때 상황 판단을 잘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출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우선 당장은 따로 떼어 들어보니 맥락이 전혀 없어 보여 외우기가 암담한 바이올린 2파트의 7곡을 잘 외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오케스트라를 시작하고 두 번째 예배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작은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바이올린이 싫었어요? 난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어렸을 때 바이올린이랑 엄청 싸웠거든. 지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면서 바이올린과 화해하고 있는 중이야.


결국 나의 인생에서 바이올린과의 인연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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