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내린 결정.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포장된 그 결정은 너무나 잔인했다.
그 뒤로도 교수님은 몇 차례 더 ‘기관절개’라는 말을 조심스레 꺼내셨다. 하지만 매번, 그 말의 끝엔 어김없이 똑같은 문장이 따라붙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죠.” 그 모호한 여백이 오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정말 필요하다면 왜 확신을 주지 않는 거지?’ ‘더 늦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거 아닌가?’ 내 안에서는 수십 개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맴돌았다. 누구도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 채로. 나는 그때까지도 ‘기관절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단어는 왠지,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의학 드라마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멀고 낯선 말.
그저 단 하나만 믿고 싶었다. 그게 엄마를 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고. 우리를 다시 일상의 자리로 데려다줄 선택이라고.
그날은 면회가 없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잠깐 눈을 붙였던 것 같다.
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화면에는 다섯 글자가 떠 있었다. ‘OO ICU’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몸 안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요즘은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실제로 조여왔다. 이대로라면 진짜 심장마비가 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 면회 오세요. 교수님이 어머님을 뵙고 가시라고 합니다.” 꿈인가 싶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조금 안 된 시각. 숨 돌릴 틈도 없이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오랜만에 의식이 또렷했다. 나를 바라봤고, 눈을 마주쳤고, 입술을 움직이며 무언가 말하려 애썼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건, 엄마가 잠시나마 온전히 깨어 있을 수 있을 때 가족과 마주하게 하려는 담당 교수님의 세심한 배려였다는 걸. 교수님은 조용히, 최악을 준비하고 계셨다. 이곳은, 늘 그래야만 하는 곳이었다.
한 달쯤 뒤, 교수님은 다시 ‘기관절개’ 이야기를 꺼내셨다.
“만약 안 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 순간, 오빠가 그렇게 물었다. 나는 잠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귀를 의심했다.
‘기관절개를 안 한다고? 이 상황에서 그게… 가능한 선택이야?’ “최악의 경우,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가족끼리 상의해 주세요.” 짧고 무거운 그 말을 남기고, 교수님은 자리를 조용히 비웠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차, 현관문, 모든 게 안개처럼 뿌옇게 흘러갔다.
우리는 말없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긴 침묵. 그리고, 오빠가 입을 열었다.
“나는… 엄마가 고통스러운 거 싫어. 기관절개… 안 했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분노가, 무력감이,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오빠가 어떻게 알아? 엄마가 고통스러운지, 고통스럽지 않은지?” 오빠는 마음을 감춘 채, 이미 어디론가 떠나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잠시 후, 아빠도 조용히 말했다. “나도… 기관절개는 안 했으면 좋겠다.” 그 말은 내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둑을 무너뜨렸다.
“그게 지금… 말이 돼?” 말은 또박또박하려 했지만, 울음이 먼저 터졌다.
“엄마 죽으면… 나도 따라갈 거야!” 목이 찢어질 듯한 절규. 그 후로는, 아무 말도, 아무 기억도 남지 않았다. 숨이 끊어질 듯 몰아쉬며 이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오빠가… 엄… 마 호흡기를… 빼… 자고…” 전화기 너머로 이모들의 놀란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순간, 내 편이 필요했다.
그날 밤, 이모들이 돌아가며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린 문틈 너머로, 길고 낮은 통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 날 아침, 아빠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래. 조금만 더 버텨보자.” 그 한마디가 전날 밤의 절규를 천천히, 조용히 녹여냈다. 그 이후, 우리는 ‘기관절개’에 동의했다. 나는 엄마가 숨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기를 바랐고—입안을 가득 채우던 튜브들이 이제는 사라지기를 바랐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그 잔인한 선택은 엄마를 살리기 위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엄마 없이 살 자신이 없던— 그날의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기도절개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시술을 위해 바로 한 층 내려갔던 엄마는 금방 돌아오셨고, 다음 면회 때 엄마 입 안에 있던 튜브들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열 번, 스무 번을 물어봤지만 엄마는 결국 아무 말을 하지 못했고, 우리 역시 대답 없는 말만 서로 되풀이했다.
그저, 엄마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왜 나오지 않는지, 알지도 못한 채.
병실을 나설 때, 매미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저 매미 소리 때문일 거야.’ 나는 그런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 요란한 매미 소리가 그렇게도 싫고, 짜증 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해는 더 뜨거워졌고, 매미 소리는 더 자주, 더 크게 울렸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면회를 위해 계속 휴가를 쓰다 보니, 어느새 쓸 수 있는 휴가가 모두 바닥나 버렸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엄마 면회에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
아침이면 출근 준비를 하며 병원 가는 아빠와 오빠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무언가 자꾸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늘 하던 대로, 오빠는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왔고 아빠는 그를 마중 나갔다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여전히 오빠는 중환자실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면회도 아빠가 들어갔다는 걸,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빠는 늘, 아빠가 면회에 들어가실 때면 조용히 녹음기를 켜서 아빠 손에 쥐여 드렸다. 혹시라도 교수님 말씀을 놓칠까 봐, 엄마의 호흡 소리라도 담아둘 수 있을까 싶어서.
교수님의 허락을 받아 우리는 그렇게 면회를 기록했다. 오빠는 병실을 나서며 어김없이 그 파일을 내게 전송했다. 면회가 끝나고 약 5분쯤 지나면 내 휴대전화에는 늘 같은 음성 파일이 도착했다. 나는 조용한 회의실 한쪽, 아니면 사무실 책상 구석에 자리를 잡고 온 신경을 그 안에 집중했다. 삐 삑— 기계음 너머로 낯선 대화들, 조용한 긴장감,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아빠의 낮고 조심스러운 말투, 교수님의 단정하고 절제된 설명.
나는 그 모든 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감고, 숨을 죽이며 들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면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면회에 오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자—교수님도 슬며시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면회를 온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내 안부를 물으셨다.
“휴가를 다 사용해서, 이제 면회에 올 수가 없어요.”
교수님은 잠시 생각하시다가 “중환자실에 이야기해 둘 테니, 퇴근길에 들러 잠깐이라도 보고 가세요.” 라며 조심스레 말해 주셨다.
일주일은 지난 것 같았고, 2주는 채 안 되었던 어느 날. 나는 퇴근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 앞에 서서, 조심스레 인터폰을 눌렀다. 엄마의 이름을, 또박또박, 그리고 크게 불렀다. 혹시라도, 그 안에서 엄마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교대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기계 너머, 간호사의 평범한 한마디.
그런데 그 한마디에, 눈물이 뚝하고 떨어졌다. 서러움이었는지, 기쁨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냥,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 순간,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감정은 말보다 먼저 무너졌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나왔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돼 있었고, 말은 자꾸만 막혔다.
“교수님이… 저녁에… 엄마 면회… 해도 된다고… 하셔서요…”
내 말은 거의 외계어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분은 정확히 알아들으셨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굥스… 니… 미… 저녀… 어마…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이 입안에서 뒤엉켜 흘러나왔다.
간호사 선생님은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휴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서럽게 울고 있는 나를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를,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상냥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어머니, 많이 좋아지셨어요.”
정말 엄마가 나아지고 있는 건지, 그저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한마디에 마음 한편이 살짝 놓였다. 아마 이 중환자실 문 앞에서 눈물과 콧물로 감정이 무너진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장면은 간호사 선생님에게도 낯설지 않았을 테고.
그래서였을까. 그분은 참 차분하게, 말없이, 조용히,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