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은 날,
당신도 있었나요?”
어린 시절, ‘얼음땡’이라는 놀이가 있었다.
술래가 다가오면 “얼음!”하고 멈추고,
누군가 “땡”을 해줘야만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놀이.
지금의 이 시간은, 마치 그때의 ‘얼음’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멈춤의 날
출근도, 일상도 멈추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 하루를 버텨낸 날.
7월 초. 여름은 길었다.
무더운 날의 시간은 질척이고 느리게 흘렀다.
그 느릿한 하루가 오히려 내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5월 16일,
엄마가 중환자실에 들어간 날로부터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내 안의 시간은 이미 몇 해를 넘긴 듯했다.
매일 면회가 끝나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무너졌고,
시간이 아니라, 체력이 하루를 조금씩 잠식하고 있었다.
그날도,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내게
담당 교수님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말씀드릴 내용이 있어 가족분들 모두 계실 때 뵙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말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중환자실 앞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말은 없었지만, 무언가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말이 없다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라 말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이미 일어나 버렸다는 뜻이다.
우리는 각자의 정적 속에서,
부서진 마음의 파편을 하나씩 주워 담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하나둘 면회를 마치고
병원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기다림은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더 무서웠다.
한참이 지나서야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함께 다가왔다.
두 분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회복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엄마의 폐에 붙었던 불은 다 껐다고 했다.
하지만—
“폐가… 이미 잿더미가 되었어요.”
그게 우리가 들은 전부였다.
“회복은 어렵다.” 단지 그 한 문장이, 우리의 하루를,
우리의 일상을, 시간 전체를 무너뜨렸다.
그 한 문장이 닿는 속도보다,
마음이 무너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말보다 먼저 무너지는 감정은… 늘 그렇게 조용했다.
교수님은 덧붙였다.
중환자실에는 보통 2주 이상 환자를 두지 않는다고.
대부분의 환자는 그 안에서
삶과 죽음, 둘 중 하나를 ‘선택받는다’라고.
엄마는 평소 지병도 없으셨고 건강하셨던 분이라,
그래서 의료진도 유난히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정말 많이 버티셨다고—
몇 번이나 흔들리고도, 다시 숨을 이어오셨다고.
하지만 이제는… 보내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건 기관절개를 할지 말지를 묻는,
선택의 종류가 아니었다.
상의가 아니었다. 그냥, 그게 최선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유일한 선택지.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울 수도 없었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모두가 조용히 멈췄다.
그건 일시적인 멈춤이 아니라, 완전한 정지였다.
2024년 7월 17일.
우리는 모든 기계를 멈추기로 했다.
호흡기를… 빼기로 했다.
“삐——” 하고 기계에서 울리는 소리조차,
이제는 멈출 거라고 했다.
그 삐 소리가 멈추면,
나는 다시는 엄마를 부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마지막 소음이, 내 안에서 가장 오래 남은 희망이었다.
그날을, 우리 가족은 ‘멈춤의 날’이라고 부른다.
결정은 한순간이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데는
남은 생의 절반쯤은 필요할 것 같았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그 장면이
마치 비명처럼 머릿속을 울리고 있었다.
누구도 살릴 수 없었던 그 순간.
단 한마디밖에는 할 수 없었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그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말은 입이 아니라,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게였다.
‘미안해’라는 두 글자가
마치 내 안에서 피멍처럼 퍼져갔다.
모든 걸 다했지만,
끝내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
그 마음은… 아직도 그날에 멈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