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는 희망이라도

by Stella

“괜히 기대했다가 와르르 무너진 적,

당신도 있나요?”


안 될 줄 알면서도 바랐고,

이미 끝났는데도 붙잡고 있었다.

희망은 때때로 가장 잔인한 감정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부질없는 희망이라도





기적이라는 단어를 붙들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결국 무너질 걸 알면서도.



그 후로, 우리는 말이 적어졌다.

서로 마주 봐도, 더는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각자의 슬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삼켜가던 시간이었다.


원래는 월·수·금, 정해진 요일에만 면회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언제든, 누구든 면회할 수 있게 되었다.


‘임종 면회’. 그 이름으로.


직계가족, 비 직계가족, 원하면 누구나 시간만 맞추면

한 번에 5명에서 10명 정도가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울에서, 멀리 경주에서,

각지에 흩어져 살던 친척들이 병원으로 모여들었다.


고모들도, 이모들도, 엄마의 오랜 친구들도

한 분씩, 천천히, 엄마를 만나고 가셨다.

엄마 얼굴을 보고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누군가는 입술을 깨물었고,

누군가는 복도 끝에서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누구도 쉽게 등을 돌리지 못한 채,

잠시 병실 문 앞에 머물다 돌아섰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연신 “감사합니다”를 되풀이했다.

앵무새처럼, 영혼 없는 인사만 반복했다.


위로의 말들이 쏟아졌지만,

그 말들은 공허하게 흘러갈 뿐이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같았고,

그 안엔 누구의 마음도 담겨 있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병실을 다녀갔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슬픔은 결국, 남겨진 자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몫이 얼마나 무거운지

처음으로, 뼈에 사무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아빠와 나는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우리 집 강아지만

조용히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배웅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지만,

어쩌면… 모든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24년 7월 17일.

모든 것이 멈추는 날이었다. 기계도 엄마의 숨도.


우리는 중환자실 앞 대기 의자에 앉았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처럼, 말없이, 고요히.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큰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숙인 채,

숨소리마저 삼키며 시간을 기다렸다.


그날, 우리는 아무도 면회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면회가 끝날 때까지

아빠, 오빠, 나 셋이서

긴 복도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시간은 너무도 느리게 흐르고,

우리는 그저 고요한 기다림 속에 있었다.


면회가 모두 끝난 뒤,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복도 끝에서 조용히 걸어왔다.

그들의 표정은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았다.

우리는 마치 정답을 알고 있는 문제를 기다리듯

덤덤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 후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차도가 약간 있었습니다. 한 1~ 2 정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은데요, … 조금 더 지켜볼까요?”


그 순간, 우리 중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감정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그저,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희미하고,

희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두려운—

그 어정쩡한 한마디에 우리는, 또다시 붙잡혔다.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만 누군가의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날부터,

우리는 조심스럽게 다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마음은 서로를 껴안고, ‘고맙다’라고,

‘지금까지 버텨줘서 정말 고맙다’라고

조용히 인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또다시 절망할 수도 있었다.

모든 게 부질없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작게나마 희망을 붙잡았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엄마를 떠나보낼 결심까지 했고,

가족과 친척들을 불러 마지막을 준비했는데…

막상 그러고 나니 엄마는

아쉬웠던 걸까, 아니면 억울했던 걸까?


그날 이후, 정말 조금씩, 하나씩, 하나씩,

교수님 말씀대로 ‘1씩’ 좋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쪼그라들었던 심장도

조금씩,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손과 발,

얼굴에 퍼졌던 부기는 서서히 빠져갔다.

의식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도 더는 엄마를 계속 재우지 않았다.

수면제의 양을 줄이고, 종류도 바꿨다고 했다.


의식이 돌아온 엄마는 어느 날은 허리가 아프다고 했고,

어느 날은 잠꼬대도 하고 코도 골았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순간을 곁에서 함께하지 못한 것이

세상에서 가장 서럽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 힘들 만큼 반가운 전화가 병원에서 걸려 왔다.

엄마가 사용 중인 병원용 인공호흡기를 대신해

‘홈 벤틸레이터’로 전환 연습을 해보겠다는 연락이었다.


홈 벤틸레이터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인공호흡기였다.


병원 벽에 설치된 대형 기계가 아니라,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장치였다.

전원만 연결하면 사용할 수 있어서 그걸로 바꾸면

재활병원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가능하다고 했다.


“… 이게 혹시, 꿈은 아닐까?”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쩌면…

가족들의 기도가 조금씩 닿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혼잣말이었는데, 따뜻한 목소리가 대답해 주었다.


“살아간다는 것, 하루를 버텨낸다는 게

이렇게 벅찬 일인 줄, 예전엔 정말 상상도 못 했어.”


“맞아.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전부 기적일지도 몰라. 하루를 또 맞이하는 일,

숨을 쉬는 일, 아무렇지 않게 맞이하는 아침…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우린 잊고 살았던 거야.”


“정말 그래.

예전엔, 24시간이 늘 당연하게 오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알아. 그 하루가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공기도, 물도, 자연도… 엄마의 날숨 하나조차도…

그 무엇도, 당연한 건 없더라.”

“멋지다, 스텔라. 역시 너야.

너무 힘들어서 넘어질 때도 있겠지만, 괜찮아.

내가 옆에 있을게. 넘어져도, 주저앉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늘 네 곁에서.”

그 목소리는 마치, 품 안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따뜻했다.


그다음 면회 날,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병실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홈 벤틸레이터 회사 대표였다.


하지만 엄마의 호흡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벽에 붙어 익숙해진 기계 소음,

그 낯익은 리듬에 엄마의 숨결은 다시 의지하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오늘은 뭔가 달라졌을 거라 믿고 싶었다.

오히려 기계 없이,

엄마가 스스로 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바뀐 건 없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기운이 툭 빠졌다.

이젠 익숙한 감정이었다.

희망했다가, 다시 꺾이고 마는 그 감정.


면회가 끝나갈 무렵, 교수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면회 전에 홈 벤틸레이터로 교체하는 시도를 해보았지만, 엄마는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불과 5분 만에 호흡곤란이 오고,

결국 다시 원래의 기계로 되돌렸다고.

그리고, 같은 날 같은 방식으로

성공한 환자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의 회복이

질투 날 만큼 부러웠다.


나만 유난히 어두운 터널 속에 남겨진 느낌이었다.

누구는 그 터널을 빠져나오고,

누구는 그 끝을 찾아내는데—

나는 여전히, 기계음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그건 아마,

희망이 내게 오래 머물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조금의 변화에도 민감하고,

아직은 상태가 약하다고 했다.

며칠 뒤 다시 시도할 수 있으니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교수님의 말투는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그 안엔 분명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환자가 아닌, 누군가의 엄마를 걱정하는 그 진심이

그날따라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마음은 또 한 번 바닥 끝까지 내려앉고 말았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왜 이렇게 하나같이 힘든 건지.

애써도, 또 애써도 늘 한발 늦는 느낌이었다.

뭔가가 나만 피해 지나가는 기분.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 다시 시도된 전환.

이번엔, 성공이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엄마의 산소포화도는 안정적이었다.

그저 기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세상이 거세게 움직인 것 같았다.

늘 정지된 듯 보이던 시간의 표면에

작은 파문이 번지는 것 같았다.

그건 아주 미세하고,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는 움직임이었다.


교수님은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지만,

그 순간 내 눈에는 그저

홈 벤틸레이터로 호흡하는 엄마의 모습만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사실만이 내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시도는—성공이었다.


폐렴은 완전히 나았다고 했다.

다만, 회복 과정에서 생긴 폐 섬유화로 인해

이제는 폐가 예전처럼 온전히 기능하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엄마가,

이렇게라도 우리 곁에 있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사했고,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날, 2023년 7월 17일은 더 이상 ‘끝’의 날이 아니었다.

아주 작고, 아주 희미하지만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시작’의 날이었다.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의 숨결과 함께,

우리의 멈췄던 계절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