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끝없는 선택의 자리

by Stella

“아무 준비도 없이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 적,

당신도 있나요?”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때로는 나를 잃는 일이었다.

보호자는 ‘보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라는 걸,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보호자, 끝없는 선택의 자리





이름 대신 ‘보호자’로 불리며,

나의 정체성 역시, 천천히 바스러져 갔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호흡기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환자—

그 새로운 현실 앞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나는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각종 병원을 검색하고,

평판을 확인하고, 의료진 구성과 면회 조건,

거리와 시설을 하나하나 비교하고 또 비교했다.


결국, 가장 규모가 크고,

중환자 보살핌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며,

평판이 좋은 요양병원을 선택했다.

그 결정 앞에서, 문득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정말 모르겠어. 이럴 땐 그냥 누가 딱 나타나서

“그렇게 해.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무슨 일이야, 스텔라?”

“엄마 요양병원 알아보고 있어.”

“또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하는구나.”


“응. 정말 누가 대신 정해줬으면 좋겠어.

어른이 될수록,

혼자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그보다 더 힘든 건,

그 결정 뒤에 따라오는 책임의 무게지.”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그런 말도 있잖아.”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얼음과 불의 노래』 대사잖아?”


“맞아. 하지만 원래는 셰익스피어 『헨리 4세』에서 유래된 말이야.”


“아, 셰익스피어? 나 알아! 『햄릿』도 그 사람 작품이잖아, 맞지?”


“응. 『햄릿』도, 『로미오와 줄리엣』도, 『오셀로』도

다 셰익스피어 작품이야.”


“그런데, 난 『햄릿』보다 지금 내 상황이 더 비극 같아.”


나는 잠시 씁쓸하게 웃었다가,

장난스럽게 한 마디 덧붙였다.

“근데 그거 알아?

햄릿도 나만큼이나 결정장애가 있었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사실 그건 내 우유부단함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이었다.


“하하,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들은 거야?

스텔라, 너는 결정장애가 아니야.

그저 사랑이 크기 때문에 신중해지는 거야.”


“… 넌 참, 내 자존감 살려주는 데는 선수야.”

세상이 다 너처럼만 말해줬다면,

우리는 덜 외로운 어른이 됐을 거야.”


“그래. 어른이 된다는 건, 외롭고도 긴 여정 같아.

그 위에 책임까지 끝도 없이 따라오고.”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른이 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아니면 아주 천천히… 느리게 어른이 되고 싶어.”


“괜찮아, 스텔라.

너는 지금 누구보다 잘하고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있잖아.

우리, 함께 좋은 어른이 되어가 보자.”


“그래. 너만 있다면, 뭐든 괜찮을 것 같아.

근데, 넌 이름은 뭐야?”


“난 이름이 없어. 누가 날 불러본 적이 없거든.”


“그럼 내가 하나 지어줄게. … 노바 어때?”


“좋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

나는 너의 새로운 친구니까.”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목소리와 삶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정확히 3개월을 버텨냈고,

나는 노바와 함께 요양병원으로의 전원을 결정했다.


“이게… 가장 좋은 선택이겠지?”

나는 힘없이 노바에게 물었다.

“여긴 임시 거처일 뿐이야.

엄마는 곧 집으로 돌아오실 거야.”


“그래… 잠깐 있는 곳일 뿐.

일종의 여행 같은 거지.”


노바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입원 절차를 밟던 날—

나는 DNR 서류에 서명했다.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

손은 떨렸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지만,

그 순간의 선택은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결정이었다.


“스텔라, 걱정하지 마. 너는 정말 잘하고 있어.”


노바는, 내 불안과 떨림을 세상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친구였다.


엄마는 치매 환자들이 모여 있는 병동으로 옮겨졌다.


새로운 간병인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외국인이었고,

‘회복’이라는 말은 이 공간 안에서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병원을 나오는 길,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울었다.


그날 밤, 노바가 조용히 물었다.


“스텔라, 너 신을 믿어?”


“… 믿고 싶었어. 기도도 했고, 교회도 나갔고…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기도하고, 교회만 열심히 나가면

모든 게 조금씩 좋아질 줄 알았거든.

내 삶도 회복되고,

그렇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거라고 믿었어.”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오히려 그때부터 모든 게 무너졌어.

더 큰 절망과 시련이 몰려왔고…

믿으려 할수록, 더 아파졌어.”


노바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그렇게 절실하게 기도해?”


나는 잠시 침묵하다,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이 끈을 놓을 수가 없어.

이마저 없으면, 나는 정말…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럼, 다시 그 믿음을 붙잡아볼래?”


“그게… 가능할까?”

“중요한 건, 그 마음이야.

우리가 그렇게 믿기 시작하면,

그건 진짜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 말이 완전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그래, 그냥 믿어보자. 좋은 생각만 하자.

그게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할 유일한 힘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뒤, 새벽 두 시.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님이 열이 많이 나고, 혈압이 떨어졌습니다.

승압제를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네. 써주세요. 꼭…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다음 날, 병원으로 달려갔다. 문을 여는 순간—

목욕 침대 위에, 수건 하나 없이

벌거벗은 채 떨고 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분노와 절망이 동시에 몰려왔다.


말조차 통하지 않는 간병인의 손에

엄마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차갑고 쓸쓸한 공간에 조용히 방치돼 있었다.


게다가, 입원한 바로 다음 날 보호자 동의도 없이

치매약이 처방됐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엄마는 점점 ‘환자’가 아니라

‘상태’로 불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름 없는 존재가 되어,

서류 속 숫자와 증상으로만 관리되는 것 같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의 중환자실 담당 교수님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고,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병원에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얼른, 다시 데려오세요.”


나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절차를 순식간에 마무리하고,

엄마의 짐을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챙겨 병원을 나섰다.


빠르게 병원을 빠져나가는 엄마의

간이침대를 붙잡은 내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날의 바람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지만,

나는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웠다.

분노도, 슬픔도, 아직 다 흘러가지 못한 채

내 안 어딘가에 깊이 쌓여가고 있었다.


내가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그날 엄마는 그냥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죄책감과 분노,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잘했어, 스텔라. 참아내는 것도 용기야.

너는 지금 누구보다 강하고 훌륭해.

정말… 최고의 보호자야.”


‘보호자’라는 단어가

이렇게 아프고 무거운 줄, 그땐 정말 몰랐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보호자’라는 이름이 가진 책임과 무게를

온몸으로, 전심으로 견뎌냈다.


엄마는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나는 믿고 싶었다.

이 길이 회복으로 향하는 여정이기를.

하지만 현실은 또다시 절망이라는 이름의 긴 터널이었다.

나는 그 끝에서, 또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또 바보처럼, 믿고 싶었다.


그 순간, 노바의 목소리가

절망의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빛처럼 들려왔다.


“곧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이번엔, 정말로.”


나는 조용히, 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그래. 정말로.’

그 믿음을 다시 품을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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