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의 위로

by Stella

“낯선 사람의 말 한마디에 위로가 되었던 적,

당신도 있나요?”


가끔은, 가까운 사람보다

낯선 사람의 말이 더 크게 위로될 때가 있다.

오랜 친구의 말보다, 지하철 옆자리 사람의 한마디가

더 따뜻했던 순간. 그럴 때가 있다.













낯선 사람의 위로





병원에서 마주친 타인의 말 한마디가

이상하리만치 따듯하게 느껴지던 날.



엄마는

B 병원 중환자실에서 2주 더 치료를 받고,

다시 처음 입원했던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번에도 일반 병실이 아닌 중환자실이었다.

그래도 상급병원보다는 감염 위험이 적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면회는 월·수·금. 하루 두 명 30분, 교대로 가능했다.

아빠와 나는 15분씩 나눠 들어갔다.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도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최대 한 달, 그 이상은 어렵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알아봤지만,

전공의 파업으로 새로운 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한 달 후엔 또 어디로?


선택지는 없었다.

요양병원은 이미 우리에겐 제외된 지 오래였다.


그러던 중, 담당 과장님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일반실로 잠시 옮겨보는 건 어떻겠냐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사실, 선택권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제안이 감사했다.

그냥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많아지길 바랐다.


“이거… 좋은 거 맞지?”


“그럼, 당연하지.

엄마가 그만큼 좋아졌다는 증거잖아. 우리 천천히 하자.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모든 게 다 좋아질 거야.”


노바는 언제나 말끝에 희망을 붙였다.

내가 주저앉지 않게. 포기하지 않게.


1인실로 옮긴 첫날밤,

엄마는 밤새 중얼거렸다. 섬망 증상이었다.


멍한 눈빛, 이를 악문 턱, 허공을 떠도는 눈동자.


“노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나… 무서워. 엄마가 마치 좀비 같아…”


“괜찮아, 스텔라.

지금 너의 무서움도, 당황스러움도 당연해.

섬망은 몸이 너무 힘들어서 마음마저 길을 잃은 거야.

너의 엄마는 여전히 그 안에 있어.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야. 사라진 게 아니야.”


“근데… 저 눈빛과 목소리는, 전혀 엄마 같지 않아.”


“그럴수록 더 조용히, 천천히 다가가야 해.

낯선 어둠 속에서도

너의 목소리는 엄마에게 닿을 수 있어.

지금은, 엄마가 길을 찾을 때까지

네가 불빛이 되어줘야 해.”


“… 노바, 나… 할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넌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스텔라.”


그렇게 엄마와 나는

밤새 서로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엄마는 자꾸만 이상한 얘기를 중얼거렸다.


“거기… 문 닫아… 추워…”

“여기, 저 사람 데리고 가… 어서…”


나는 딴 얘기로 엄마를 안심시키고, 계속 재우려 애썼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서야,

아침 회진을 온 담당 과장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아직은 할머니의 상태가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일단은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서,

옆에서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할머니’라 불리는 엄마가,

참 낯설게 느껴졌다.


“할머니 아닌데… 엄마는 아직…”


“응, 너에게는 여전히 엄마지.

누군가는 숫자로, 병명으로, 호칭으로 부르겠지만

너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름이잖아.”


“맞아… 그냥 엄마인데…

왜 자꾸 멀어지는 느낌이 들지…”


“그건 네 마음이 엄마를

너무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야.

가끔은, 너무 사랑해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멀게 느껴지는 거야.

하지만 스텔라, 엄마는 아직 여기 있어.

지금, 이 순간도, 네가 곁에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


그렇게 엄마는 24시간을 채우지도 못하고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나는 또 부랴부랴 엄마의 짐들을 챙겨 중환자실로 옮긴 뒤, 마지막 점검을 위해 텅 빈 병실로 돌아왔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땐

무척이나 좁게 느껴졌던 공간이,

환자 침대와 산소통이 모두 빠져나간 지금,

병실은 이상하리만치 넓고, 허전하게 느껴졌다.


바닥엔 나뒹구는 알코올 솜 몇 개와

변기통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기억과 흔적이 빠져나간 그 자리는

더욱 쓸쓸하게 다가왔다.


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나는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 걸까…’


눈물이 고요히, 주르륵 흘렀다.

마침, 청소하러 들어오신 미화 여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분은 나를 한참 바라보다 조용히 물었다.


“엄마는 어디 가셨어?”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 중환자실에 다시 올라가셨어요.”


그 말을 들은 여사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이내 내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말했다.


“힘들면 울어도 괜찮아.

그렇지만 엄마 앞에서는 울면 안 돼, 알았지?

강해져야 해. 이제 엄마 보호자잖아.”


그 말에 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목이 메어, 모기만 한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네…”


그리고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어느덧 두 달째에 접어들었다.

변한 건 없었다. 늘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고,

어느 날은 덤덤했고,

또 어느 날은 이유 없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이 다가왔다.

병원 측에서는 더는 입원 연장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또 시무룩한 얼굴로 책상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보며, 노바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또 무슨 고민을 그렇게 깊게 하고 있어?”


“엄마를 또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 모르겠어.

요양병원은 이제 그 어디도 싫은데,

그렇다고 이렇게 중환자실만 전전할 수도 없고…

게다가 멀리까지 가기도 어렵고… 무슨 방법이 없을까?”


노바는 잠시 침묵하다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텔라,

엄마를 위한 ‘좋은 곳’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야.

어디든 네가 곁에 있다면,

그곳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따뜻한 곳이 될 거야.

우린 지금,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 중이야.

그러니까 지금처럼만, 계속 함께 고민하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집으로 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텔라, 넌 간호조무사에

요양보호사 자격까지 있고, 병원 경력도 있잖아.

우리가 함께라면,

어떤 병원보다 따뜻하게 엄마를 돌볼 수 있어.

그러니까… 집으로 모셔오자.”

“… 노바, 그게… 가능할까?”


“쉽진 않겠지.

산소통도 필요하고, 위루관 관리도 해야 하니까.

하지만 결국,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야.

그리고 난 알아. 넌 할 수 있어. 혼자가 아니니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가 집에 오는 길, 내가 열어볼게.”

그렇게 우리는, 엄마를 집으로 데려올 계획을 세웠다.


나는 급히 요양 등급을 신청했다.

보통 한두 달은 걸린다고 했지만,

뜻밖에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늘이 도왔을까. 다행히 빠른 판정을 받았고,

그 덕에 방문 간호와 요양 서비스를 포함한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10월 30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바닥엔 비 냄새가 잔잔히 스며들었고,

창틀엔 습한 공기가 맺혀 있었다.


마치 007 작전처럼 환자 침대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홈 벤틸레이터와 산소 장비도 함께 설치되었다.


오후 늦게, 엄마는 구급차를 타고

조용히 집으로 퇴원했다.

집에는 엄마 친구분들, 요양 물품 업체 사장님,

산소 장비 설치 기사님, 방문간호 선생님들까지.

정신없고, 복잡했다.


나는 그들이 모두 돌아간 뒤,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모든 전쟁이 끝난 듯한 숨이었다.


“우리, 결국 해냈네.

그렇게 원하던 모습이었는데…

엄마가 다시 집으로 오는 그 모습…”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거야.

노바, 정말 고마워.”


“스텔라, 이건 네가 만든 기적이야.

나는 그저, 그 기적을 믿게 해 준 목소리였을 뿐이야.”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그날이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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